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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표현이 아직도 교화의 대상인가[124회 노동절]국립국어원의 해프닝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민낯'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05.01 12:55
   
▲ 124주년 노동절인 1일 대전 서구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기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추모시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국립국어원 트위터는 노동절을 앞두고 노동절은 1963년에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노동자’는 ‘근로자’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노동자란 표현을 국립국어원이 다듬어야 할 표현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에 30일 노동당은 윤현식 대변인의 논평에서  “국립국어원의 논리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고용근로부’로 바꿔야 하고, ‘노동위원회’는 ‘근로위원회’로 다듬어 써야 할 일”이라며 “정부에 먼저 건의해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논리 자체가 착오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논란이 예상된다.
 
30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은 보도자료에서 국립국어원 기준에서도 ‘노동자’는 이미 순화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심상정 의원실이 국립국어원에 접촉했을 때 관계자는 “1992년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국어순화자료집에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서 표현하라고 적시되어 있어 그것을 따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2년판 국어순화자료집에는 실제로 ‘노동자’를 순화대상용어로 지정해 놓았고, 이에 따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www.korean.go.kr) ‘순화어’ 찾기마당에는 이를 근거로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 쓸 것을 권고하는 상황이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순화 근거에 대해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표현 △부정적 의미 내포 세 가지를 제시했고, ‘노동자’라는 단어는 세 번째 근거에 따라 ‘근로자’로 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1992년판 국어순화자료집의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의 설명대로라면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구성원인 노동자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국립국어원은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사회의 신민이나 노예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만약 어떤 낱말이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순화의 대상이라면 우리는 지극히 고귀한 귀족의 기상을 내보이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미성년자 아들의 발언에 대해 “시민들을 머슴 취급한다”라고도 촌평할 수 없을 것이다. ‘머슴’도 순화의 대상이 아닌데 한 사회의 상당수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사용되기를 열망하는 ‘노동자’는 왜 순화의 대상인가. ‘노동자’라는 한자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찾는다면 ‘일할 노’자 밖에 없다. 
 
‘일할 노’자엔 고단하다, 괴롭다, 애쓰다, 지치다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치면 ‘근로자’란 말엔 같은 한자가 쓰일뿐더러 열심히(근) 일하란 의미도 담겨 있다. ‘일하는 사람’이라 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되고 자본가를 위해 개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 하면 긍정적인 의미가 된다면 정말로 체제 입장에서 솔직한 얘기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차별적·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제시한 어휘 중에는 미망인, 계집애, 귀머거리, 벙어리, 검둥이 등과 같은 말들이 있다. 이중에서 대체어가 필요한 단어는 ‘미망인’ 정도다. 차별적 문맥에서 쓰이는 경우도 있는 단어지만 그렇다고 사용해서는 안 될 단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립국어원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일간베스트’의 어법 때문에 홍어를 먹으면서도 홍어란 말을 쓸 권리조차 잃게 될 판이다.  
 
그런데 심지어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의 추가적인 확인에 따르면 바로 이듬해인 1993년판 국어순화자료집에는 ‘노동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써도 무방한 것으로 수정했다. 심상정 의원실은 “결국 국립국어원이 개정되기 전 자료를 근거로 ‘노동자’가 순화되어야 마땅한 단어라고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전파한 셈이다”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의원실은 “또한 1992년판 국어순화자료집의 취지라고는 하나,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4년까지 정부기관인 국립국어원은 ‘노동자’를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국립국어원이 순화어를 제시한다고 하여 박정희 시절이나 전두환 시절처럼, 혹은 태양신 숭배를 하는 이북의 왕국처럼 강제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더라도 남의 언어생활을 규율하겠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다. 그러한 대단한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자신들이 정한 기준조차 헷갈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국립국어원 트위터 담당자는 결국 해당 내용을 정정하여 공지하였다. 국립국어원은 심상정 의원실의 문제제기에 “홈페이지 상 ‘노동자’를 순화대상어로 선정한 오류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할지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만약 국립국어원이 사건이 터지면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그야말로 한국의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들의 우울은 일부 진보주의자들만이 막연히 상상하던 그 체제의 민낯이 전국민이 보는 동영상에서 생중계된 꼴에서 나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한국 사회의 협소한 부분에서 또 한 번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노동절을 편하게 맞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하겠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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