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사과를 한 것에 대해 30일자 신문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았지만 수위는 달랐다. 보수언론은 특히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지난 며칠 동안 제기한 ‘관피아’ 문제에 집중했다. 관료사회와 이권단체의 커넥션이 문제의 근본이란 뜻으로, 대통령의 사과가 미진해 보이는 이유도 이들을 해체하기 위한 수단이 강구되지 않았다는 식이다.

30일 <조선일보>는 <대통령 사과와 국가안전처를 보는 국민의 시선>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러나 대통령 사과와 국가안전처 신설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안전해지겠구나'라고 느끼는 국민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조직이나 장비와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핵심 문제다. 세월호 사태에선 이 조직과 장비, 인력, 매뉴얼이 다 따로 놀았다. 정부 부처부터 일선 기관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책임질 일을 일단 피해가고 보자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민간에선 어떤 정부 조직, 어떤 규정도 기발한 방식으로 빠져나가면서 비리를 저지르고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공무원들은 그런 세력들과 공생(共生) 관계, 이권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물론 가질 수 있는 관점이지만 국무회의에서 사과를 표하는 대통령의 태도에 대한 비판은 생략했다.
▲ 30일자 중앙일보 4면 기사
<중앙일보> 사설 역시 <'국가 개조'의 각오 있어야 위기 넘는다>란 제목에서 보이듯 비슷한 관점을 택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번 사건은 뿌리에서부터 발생·구조·수습 전 과정에 걸쳐 비정상적인 부실과 혼란·무책임이 드러났다”라며 정부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어서 “대통령은 정상화 개혁을 약속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정권 취임 1년2개월 동안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관료들이 제대로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역시 관료 사회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번에도 핵심 문제로 드러난 게 관료집단의 병폐다.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해경 등은 고질적인 무능과 무책임을 보였다. 관료사회를 포함해 사회의 중추세력은 새 정권이 등장하면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이 정권은 과연 다를 것인가?’ 정권이 강력한 개혁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적당히 눈치만 보면서 복지부동(伏地不動)의 무사안일로 회귀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이 관료 사회를 향한 강력한 개혁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이 사안에 대해 다소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그 정도 사과와 ‘셀프 개혁’으로 국가개조 될 것 같은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대통령의 사과가 경솔해서도 안 되지만 이번 경우 대통령은 사과의 시기를 놓쳤고 형식도 기대에 못 미쳤다”라면서 대통령의 사과 방식 자체에 대한 비판을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생략한 부분이다.
▲ 30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동아일보> 사설은 “참사의 1차적 책임은 세월호에 있다 해도 어린 생명을 구할 시간이 분명 있었음에도 국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못했다. 온 국민이 동영상으로, TV로, 카카오톡 메시지로 똑똑히 목격했기에 충격은 더 크다.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대통령은 희생자와 유족,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을 마주 보며 진심어린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고 다음 날인 17일 진도 현장과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들을 질타만 했지 공무원의 고용주인 국민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행정부의 수반도, 국정의 책임자도 아닌 듯한 모습이어서 일각에선 ‘유체 이탈’ 화법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라면서, 보수언론 사설 중에선 유일하게 대통령이 시민들에게 흔히 지적받는 ‘유체이탈’ 화법의 문제까지 거론했다.
반면 진보언론은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그 형식과 내용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겨레>는 같은 날 <시늉뿐인 사과에 ‘과거 타령’만 한 대통령>란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 제목부터 사과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한겨레> 사설은 “사과의 형식이나 내용을 보면 사과라는 말을 붙이기조차 민망하다. 박 대통령은 예상대로 국민에 대한 직접 사과 대신 국무회의를 통한 간접 사과 방식을 택했다.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고가 수습된 뒤 박 대통령이 다시 정식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런 발상 자체부터 이해하기 힘들다. 미증유의 국가적 대참사에 대해 대통령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면 안 되는가. 죄책감이나 책임의식 등의 단어는 아직도 박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라며 박 대통령의 태도를 비판했다.
▲ 30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또 <한겨레>는 “박 대통령이 사고의 원인을 ‘과거의 잘못된 적폐’ 탓으로 돌린 대목에 이르면 더욱 어안이 벙벙해진다. 박 대통령이 ‘죄송’하다고 말한 것도 실제로는 현 정부의 실책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과거의 적폐를 바로잡지 못해서’라는 이유에서였다. 박 대통령은 ‘내 탓’은커녕 사건의 책임을 철저히 과거 탓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라면서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의 내용적 모순을 비판했다.
<경향신문> 역시 “진정성 의심받는 대통령의 ‘간접 사과’ ”란 제목의 사설에서 “사실 이번 사과는 정부의 부실·무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대통령 책임론’이 비등해지자 내놓은 ‘지각 사과’이다. 늦은 만큼 피해자 가족과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절실성과 진심이 따라야 했다. 한데 사과의 형식부터가 부적절했다. 국민에게 사과를 하면서 국민 앞에 서지 않고 국무회의 발언을 빌린 ‘간접 사과’는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정작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은 “국민께 죄송스럽다”는 대통령을 볼 수 없었다. 결국 ‘책임 안 지는 대통령 필요 없다’는 글 하나에 조회가 폭주해 청와대 홈페이지가 먹통이 될 정도로 폭발한 민심에 떼밀려 ‘마지못해 하는 사과’라는 인상만 두텁게 했다“라고 사과의 형식을 비판했다.
▲ 30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또 <경향신문>은 사과의 내용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제시한 제반 대책이 실행되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뒤늦은 사과가 그 신뢰를 되찾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외려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의 조화가 치워지는 불신의 골만 더욱 깊게 한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사건처럼 체제가 총체적 무능을 증명한 사건에서 정부를 비판하지 않기는 힘들다. 민영언론인 신문들이 공영방송보단 나은 지점이 그것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성난 민심에 부적절한 형식의 사과를 당겨서 발표하는 대통령의 민망한 행보에 대한 지적을 회피하는 보수언론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허약한 보수를 지탱하는 카르텔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보수언론은 ‘관피아’를 욕하지만 그 관료들의 입장에서 그 언론들은 어떻게 보일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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