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8시 50분경 세월호 희생자 조문을 위해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단원구 화랑유원지를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날인 17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구조에 있어 정부가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위로한 바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관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을 규명할 것"이라며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엄벌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17일의 박근혜와 29일의 박근혜
열흘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추가로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결과만 나빴던 것이 아니라 과정도 나빴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 당국과 해경이 구조보다는 여론통제를 위한 상황통제에 더 신경을 썼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언론이 전한 29일 아침 유족들의 분위기도 싸늘했다. 희생자 영령과 위패 앞에서 헌화와 묵념을 했지만 뒤늦게 박 대통령의 조문 사실을 인지한 일부 유족들이 ‘분향소를 유족 몰래 왔다가 몰래 가느냐’며 거칠게 항의하는 상황이 있었다. 유족들과의 대화는 순탄치 않았고 일부 유족들은 대화 중에 대통령의 헌화를 분향소 밖으로 몰아냈다.
▲ 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설치됐던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정홍원 국무총리가 보내온 조화가 유족들의 요구로 분향소 밖으로 내보내져 있다. (연합뉴스)
17일 진도실내체육관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다른 책임자들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 방문에 대한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전한다. 이는 행정부의 수반,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의 재난 대처 지휘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후, 대통령은 다시 뒤로 물러섰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자신들은 재난 대처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 항의 방문을 하려다 실패했고 정홍원 국무총리는 중간에 끼어서 진땀을 뺐다.
계속 상황을 취재해 온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원래 해양수산부나 해양경찰이 힘이 있는 조직이 아니다. 특히 해경은 해양수산부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 국토교통부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 안전행정부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 자기들도 헷갈려 하는 조직이다. 그들이 전문가는 맞지만 이런 사태에 주도권을 쥘 수는 없고 위만 쳐다본다. 위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주고 지휘라인을 명확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 같다”라고 말한다. 조직이 ‘막장’인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런 상황을 방기했다면 책임은 온전히 행정부 수반에게 돌아간다.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청와대 자유게시판에서 50만 히트를 올려 화제가 된 박성미 감독의 “대통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몰랐다”는 비판이 타당함을 입증하는 정황이다.
그럼에도 27일 오전 사과하며 사의를 표명한 것도 국무총리였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임 기자회견문엔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란 구절이 끼어 있었다. 물러나면서도 주군을 걱정하는 ‘충의지사’의 모습이었다. 한국 사회의 ‘파워엘리트’에 해당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심성 자체가 ‘소신’이란 말 자체를 모르고 ‘굴신’의 자세를 ‘처신’의 기본으로 삼는 ‘가신’의 것이란 것을 정홍원 총리는 또 한 번 보여주었다(관련 기사 링크).
실종자 가족들에 의해 헌화가 추방당하는 수모를 당한 대통령은 이어서 국무회의에 참석한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주재 모두발언에서 ‘사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것만으로 ‘사과’니 ‘사죄’니 하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패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는 발언에선 대통령의 책임이 보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재난 대처에 대한 책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시절 해운 분야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들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하던 해운 분야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들에 대한 언급은 뺐다. 29일은 사건 발생 후 열나흘째인데 “17일이 지나고 있다”라고 말하는 ‘초딩’ 같은 실수도 했다. 머리좋은 사람은 모두 모여 있는 조직에서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사흘 후 발표하기로 하고 작성했던 걸 여론이 악화되자 앞당겨 발표하기라도 한 것일까.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의 비밀은...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본인이 뭘 하는지 아는 것도 없으니 뭘 잘못했는지도 알 턱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역량이 안 되는 지도자를 뽑은 것은 국민의 책임이겠지만, 지도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최소한의 소명도 보이지 않는다. 대중이 분노하면 포퓰리즘적 언사로 달래고, 직무는 외면하며, 책임은 다른 사람과 정권과 시대에 돌리는 것에 골몰한다. 청와대부터 시작해서 여당, 검찰과 경찰, 거대언론 등의 권력기관 등이 오로지 그 일만을 하기 위해 그 좋은 머리들을 굴려대는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시사in>의 만화가 굽시니스트 같은 이는 자신의 만화에서 “6공화국의 어느 대형 참사에서도 정권보위를 위한 이런 노골적인 움직임은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한탄했겠는가. “6공화국의 정부 수반들은 대형참사 앞에서 언제나 국민의 손가락 앞에 서야 했지만 이번 정부 수반은 뭔가 다르다”고 지적했겠는가.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로 고귀한 생명을 잃게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한 뒤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벌써 1년 전, 이른바 ‘윤창중 사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 기자는 이렇게 평한 바 있다.
(...)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흔히 ‘레임덕’이라 부르지만 정권 초의 측근들이 박 대통령을 업신여겨 이리 행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문제는 반대로, 측근들이 박 대통령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사실을 늦게 보고하고 문제가 터지면 면피용 사과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거나 오히려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졌을 때 측근들이 바로 보고하지 않고 ‘알아서’ 대응책을 마련해 오는 것에 만족하고, 본인은 나중에 그게 문제가 되면 “적절하지 못했는데, 나와 상관없다”고 품평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한국인들은 원래 대통령을 군주처럼 생각하는 데다, 박 대통령의 경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미지가 있으니 그런 ‘전략’이 마냥 실패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처럼 수구언론이 물어뜯지도 않으니 측근들의 실수는 유권자들에게 ‘박근혜의 실수’가 아닌 ‘측근 개인의 실수’ 정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유리한 민심과 언론환경에 자만하여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면 ‘가랑비에 옷 젖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내외적으로 경제민주화 문제나 북핵위기 등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사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러한 ‘측근 위임형 통치’를 지속할 경우 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어진다는 데에 있다. (...) (기사 링크)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는 우려하던 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측근들에게 ‘레이저빔’ 쏘며 책임과 업무를 떠넘긴 사이 시대정신을 담았던 경제민주화 공약은 ‘비정상의 정상화’란 타이틀을 단 광범위한 민영화 공세로 대체되었다. 국가의 공적 역할의 민간에 대한 위임이 어떠한 결말을 낳을 것인지는, 이 시간에도 진도앞바다에서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가 보여주고 있는 바다. ‘공공성’은 사라지고 ‘이권다툼’만 보이는 이 전방위적 공세는 ‘박근혜 정부의 4대강’, ‘보수정권의 재화 분배 방식의 일환’이라고까지 평가된다(관련 기사 링크).
처음부터 황새의 편인 ‘통나무 임금님’의 비극
역시 1년 전,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방식을 ‘통나무 임금님’에 비유한 바 있다. 이솝우화의 통나무 임금님은 나중에 등장한 황새에 비해 미덕이 있는 임금으로 여겨졌다면 현대 사회에선 그렇지 않다고 평했다. “과거의 야경국가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하는 현대사회의 국가의 경우 통나무보다 많이 움직이지만 황새처럼 개구리들을 잡아먹기는커녕 ‘황새가 개구리들을 덜 잡아먹도록’ 통제를 하는 역할을 한다”라면서, 박근혜 정부가 맞닥트린 한국 사회의 과제들을 지적했다(관련 기사 링크).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박근혜식 통나무 임금님’은 처음부터 황새와 개구리가 공존하는 연못에서 개구리들에게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황새의 사냥을 방치하는 ‘통나무 임금님’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냥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황새라기보다는 통나무다. 하지만 개구리들에겐 미사여구를 남발하면서, 황새를 결코 통제하지 않으며, 황새의 사냥에 대한 책임만 부지런히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는 그런 통나무다.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게 국가가 맞느냐”, “국가가 있기는 하느냐”라고 묻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행정부 수반이 이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경악스러운 심정을 공유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던지기 시작한 근본적인 질문은 물론 대통령 일개인의 책임만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임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 저렇다면, 사람들은 이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대통령을 먼저 머릿속에서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약한 상황이 된다. 사과하는 법도 모르고 사태도 파악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만난 국민의 비극이다.
▲ 28일 해양경찰이 공개한 세월호 사고 현장 동영상. 16일 오전 9시 38분께 모습으로 구명보트와 구조헬기가 세월호로 접근하고 있다. 갑판위로 승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해양경찰청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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