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김대중 당선과 2002년 노무현 당선으로 전개된, 한국 사회의 이른바 보수세력의 관점에서의 ‘잃어버린 10년’은 2007년 이명박의 당선으로 마감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재개된 보수정부는 1987년 군부독재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타협으로 성립된 ‘87년 체제’를 거추장스러운 것, 내지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 2007년 대선 승리를 이끌어낸 ‘중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이후 급격하게 ‘좌파세력 척결’의 길로 들어섰다. 권력기관들이 나서 ‘문화계 좌파인사 척결’, ‘학계 좌파인사 척결’ 등 각 영역의 인사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았고 총리실이 민간인 사찰까지 했다는 사실이 훗날 밝혀지면서 그러한 풍문들이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국정원과 군사이버사 등 권력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 등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에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존중의 자세는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래도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 이후였기 때문에 운신의 폭에 제한이 있었다면, 공중파방송이 사실상 정권에 의해 장악되고 보수언론들이 만들어낸 종편방송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박근혜 정부 시기 정권의 행보는 정치적 반대파들의 시선에서 볼 때 지나치게 담대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정부의 의도가 1997년 이전의 세상, 보수파가 권력 자원을 독식하고 있기에 정권 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 목표는 차근차근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지난 3월 3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비전선포식에서 정책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2008년 이후의 상황을 돌이켜볼 때, ‘저항’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축적된 한국 민주주의의 역량에서 나온 저항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2008년 여름의 촛불시위나 2013년 겨울의 ‘안녕들하십니까’와 같은 시민사회 진영의 저항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 저항들이 소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민들의 시위나 집단행동에 대처하는 방책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이전의 군부독재·권위주의 정부처럼 시민들을 폭압적으로 탄압하기 보다, 시위대가 많을 때는 ‘명박산성’과도 같은 것을 쌓아 우회하면서 숫자가 줄어들었을 때 잡아들여 벌금을 착실하게 부과하는 길을 택했다.
오히려 더 효과적인 저항은 권력집단 내부의 것이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의 내용을 정치권에 투입하여 정치권력을 통제하고, 그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경제권력을 통제하도록 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시민사회 운동 역시 시민과 유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의 시민들은 정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질 만한 시간적·물질적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형편이다. 1997년 IMF 이후 점진적으로 진행된 중간층의 붕괴가 민주주의의 잠재적 역량을 훼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권력집단끼리의 견제문제에 대해서라면 1987년 체제의 등장 이후, 그리고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모종의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법원의 판결에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에 대해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가 나름의 견제를 했다. 비록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부당한 ‘찍어내기’가 있었지만, 검찰은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임에도 청와대의 채동욱 사찰과 국정원의 간첩 증거조작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보수정부 출범 이후 보수정권의 발목을 잡은 또 하나의 ‘저항’은 여당 내부의 갈등이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야당인 민주당의 견제능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한나라당이 ‘친이’와 ‘친박’으로 나뉘어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 등에서 대통령과 각을 세운 박근혜는 야권이 내세운 정권심판론이 중도파에게 설득력 있는 정권교체론으로 진화하지 않도록 여론을 막아선 ‘보수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한 김황식 예비후보가 지난 3월 31일 서울 여의도 캠프사무실에서 일자리 및 주택과 관련한 정책공약을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으로 임기 2년차를 맡은 박근혜 정부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을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잘 통제하는 편이다. 계파갈등이랄 것도 없고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비교적 활동이 있었던 소장파들의 움직임도 미미하다. 국정원 선거개입 국면 등에서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당 지도부의 전술을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2012년 총선의 공천권을 손수 행사한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카리스마를 원인으로 찾는 분석이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와 현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상당 부분 포개지기 때문에 아직 레임덕이 올 시기가 안 되었다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새누리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통제력은 다른 방식으로 당내 갈등을 낳고 있다. 새누리당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고 새누리당이고 대통령만 보일 뿐 다른 ‘사람’의 역할은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지방선거에서 친박 후보들을 띄우려고 해도 사람들이 그들이 누군지 모르는 실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방선거에서 ‘(대중적이지 못한) 친박후보’와 ‘(비교적 대중적인) 비친박후보’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언론에서 널리 다뤄진 김황식 전 총리와 정몽준 의원원의 갈등은 그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김황식 전 총리는 경선 불참은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대중공업 광고비 급증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몽준 의원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김황식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총리를 지낸 만큼 본래부터 친박으로 구별되는 이는 아니다. 하지만 당내 비주류이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정몽준 의원이 아닌 그에게 ‘박심’이 있다는 논란은 꾸준히 있어왔다.
김황식 전 총리의 장점으로 꼽히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그가 이명박 정부의 인사 중에서 민주당 등 야권에서도 인정받는 정치력과 인화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닫. 두 번째는 그가 호남 출신 인사로서 민주당 후보와의 경쟁에서의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들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이라도 이명박 정부의 인사를 굳이 박근혜 정부가 중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또, 제법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라도 김황식 전 총리의 출신지역이 어디인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정치권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여의도 주변의 자칭 관계자나 전문가들이 ‘박심’이 김황식에게 있다고 떠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경선에서 정몽준이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판단과 시민들의 판단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릴 경우, 전자가 현실화되었던 경우는 본 적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박심’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지만, 설령 ‘박심’이 김황식에게 있다 하더라도 결국 지방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정몽준 의원에게 힘이 실릴 거라는 예측이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김황식 등 ‘박심’이 있다고 여겨지는 친박후보와 기타 후보들의 갈등은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새누리당의 미래를 보여주는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 관계자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을 워낙 철저하게 지배해 보수정당의 구조가 공고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박근혜 이후엔 누구도 여러 계파가 섞인 새누리당을 통째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 관계자는, “새누리당 역시 박근혜 이후에는 지금의 민주당이 겪고 있는 리더십의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면서 “민주당의 전술과 상관없이 새누리당의 분열 때문에 야권에게 기회가 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관계자 역시 “새누리당 입장에선 되도록 경선을 줄이고 전략공천을 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측이 훗날 이명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 되는 모든 사안을 제기했듯이, 경선이 치열해지면 온갖 것들이 다 나온다. 새누리당이 가장 골치아파 하는 지점이 경선의 과열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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