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에 대한 연설을 하며 이른바 ‘드레스덴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후속 조치 검토에 들어가자마자 30일 북한은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남북관계는 난항이 예상된다.

북한의 대응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에 대한 반응은 아니다. 2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노동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언론 성명을 낸 것에 대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유엔 안보리의 입장을 ‘무모한 도발’로 규정하고 “우리는 정당방위할 권리가 있다”면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31일자 신문을 보면 보수언론들은 주로 북한 측의 ‘도발’에 주의를 집중하는 분위기다. 31일자 <조선일보>는 1면 기사와 3면 기사를 통해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핵실험’이 무엇인지를 추리했다. <중앙일보>는 1면과 5면 기사를 통해, <동아일보>도 1면과 6면 기사를 통해 해당 사안을 다뤘다.
▲ 31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특히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설까지 할애하며 북한의 태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31일자 <중앙일보>는 <북한의 4차 핵실험 막을 방도 시급하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연설을 통해 교류·협력을 통한 통일 기반 조성 의지를 천명했지만 북한은 이를 외면하고, 핵 카드를 집어 든 모양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또 <중앙일보> 사설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북한 핵 능력의 다종화, 경량화, 실전화를 의미한다”라면서 “4차 핵실험은 정권의 운명을 재촉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음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라고 북한을 비판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6자회담 당사국들이 모여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방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끝을 맺었다.
북한 당국을 설득하려고 한 <중앙일보> 사설과는 다소 다르게 <동아일보> 사설은 우리 정부 측의 대응을 주문했다. 31일자 <동아일보>는 <北의 새로운 형태 4차 핵실험 경고에 어떤 대비 돼있는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북의 핵 공갈은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밝힌 통일 구상에 대한 답변이라기보다 미국과 국제사회를 겨냥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북핵의 직접적인 위협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북의 ‘핵 공갈’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에서 제안한 북과의 교류 협력을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일단은 날이 갈수록 증대되는 북의 핵 미사일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철통같은 안보 태세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시급한 건 물론”이라며 한국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면서 “북의 위협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있으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반면 진보언론들은 북한 위협에 대해서 분석하기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의 한계를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이미 29일자 사설에서도 각각 <통일대박론의 한계 보여준 ‘드레스덴 연설’>과 <‘드레스덴 통일 구상’ 실천할 구체 방안 나와야>란 제목으로 그것의 문제점 및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 31일자 한겨레 6면 기사
31일자 <한겨레>는 6면에 <안보리 규탄에 반발... 북 “새로운 형태 핵실험 배제 안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그러면서 6면 하단에는 <“통일대박=흡수통일 우려 못 씻고 비핵화 로드맵도 안보여”>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북한의 경고를 기사화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부정적 평가를 함께 가져갔다.
31일자 <경향신문>의 경우 한술 더 떠 4면 상단에 <북핵-5.24 제재조치 해결 방안 언급 안 해... 현실화 험로 예상>이란 기사를 배치했다. ‘드레스덴 구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더 위에 배치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이념문제의 지형도에서 중도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한국일보>의 경우 1면과 3면 기사에서 이 문제를 다뤘는데, 3면 상단 기사를 <北, 호응없이 核위협만... 정부 ‘드레스덴 재안’ 후속조치 고심>이란 제목으로 가져갔다. 두 사건을 엮어 정부 당국의 곤혹스러움을 드러낸, 나름의 중립적인 관점의 서술이다.
‘드레스덴 구상’에 대한 진보적 사회비평가들의 의견도 다양했다. ‘드레스덴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해서는 이른바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에 근접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처럼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든 요소도 가지고 있으며 진일보한 부분은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을 적당히 참조한 것으로 새로운 요소가 없다는 단점도 분명히 있다. “모든 게 드레스덴부터 시작되었다 기억될 것”, “통일 후에는 드레스덴이 기억될 것”이란 공언이 민망한 수준이다.
▲ 31일자 한겨레 33면 칼럼
그렇기에 진보언론의 사회비평가들의 ‘드레스덴 구상’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이었다. 31일자 <경향신문> 31면에 기고한 정태인 새사연 원장의 경우 “한반도에도 봄이 오려나?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진정 훌륭하다”라며 전자의 측면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태인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사실상 ‘햇볕정책’이다. 죄수의 딜레마와 치킨게임을 번갈아 오가는 현재 상황을, 양쪽 다 협동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이다”라면서 북한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게임이론에 입각해서 설명하였다.
반면 31일자 <한겨레> 33면에 기고한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그 내용들은 대부분 10·4선언에 포함돼 있는 것들”이라면서, “보수언론들은 덩달아 대단한 통일 독트린이나 되는 듯 화려하게 보도했다. 그들이 10·4선언에 대해 퍼부었던 그 저주와 악담은 다 어디로 갔나 싶었다”라고 비판했다. 김보근 소장은 “10·4선언에는 있는데 드레스덴선언엔 없는 것도 있다. 이런 사업들의 실행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이라면서 보수정권의 통일정책이 민주정부의 그것의 ‘알맹이’는 취하되 방법론은 가져가지 않으면서 햇볕정책이 아닌 척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였다.
결국 ‘드레스덴 구상’에 대한 방송과 보수언론의 과대평가가 북한 위협 속에서도 진보언론으로 하여금 그 내용을 냉철하게 검증하게 하는 반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시대 언론의 지형도는 손쉬운 ‘박비어천가’와 그것이 쉽게 먹혀드는 대통령을 사랑하는 민중들 사이에서의 진보언론의 고군분투라고 요약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