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 이른바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4시간 동안 지상파 방송 3사와 종편, 포털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생중계 됐다. 이는 사실상 규제완화를 선으로 치부하는 편향적인 토론이었지만 보수언론은 그 취지를 맹목적으로 지지했다.

<조선일보>의 21일자 사설 <규제 개혁, '件數 줄이기'로 가면 백전백패한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방침을 적극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나 대통령이 아무리 공무원을 다그치고, 청와대가 '끝장 토론'을 생중계하더라도 규제 개혁의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기 쉽지 않다. 정부는 이날도 작년 말 현재 1만5269건인 등록 규제를 2016년까지 1만3069건으로 2200건 줄이겠다고 밝혔다. 역대 정권이 규제 철폐와의 전쟁에서 실패해온 이유는 이렇게 규제 건수(件數)를 줄이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이다”라는 비판적 서술에선 ‘규제완화=선’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전적인 긍정이 드러난다. 다만 방법론의 측면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을 뿐이다.
<조선일보>의 사설 중에서 “기업 현장에는 '법보다 무서운 것이 시행령, 시행령보다 무서운 것이 시행규칙, 시행규칙보다 무서운 것이 고시(告示), 예규(例規)'라는 말이 있다. 국회나 중앙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하나 만들면 담당 부서가 시행령으로 규제를 몇 개 추가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고시나 예규를 만들어 더 까다로운 절차를 깔아놓는다”라는 지적마저 미덕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영역에선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규제완화=선’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궁극적으로 볼 때는 대통령도 정부도 필요가 없다. 결국 어떤 규제가 필요하고 어떤 규제를 없애야 하는가라는 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한 인식을 하길 거부한다.
▲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특히 <조선일보>는 “18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 중 의원 발의 법안은 1663건으로 정부 제출 법안 690건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 가운데는 공무원들이 자기가 앞장서기 난처한 법안을 의원들에게 갖다준 '청부(請負) 입법' 사례가 적지 않다. 의원들에게 청부 입법을 부탁하는 공무원은 가혹하다고 할 만큼 응징을 해야 규제 남발이 줄어들 수 있다”라고 까지 지적한다. 대통령의 발언과 더불어, 국회의원의 역할을 한심하게 보는 한심한 인식이다. ‘통치’와 ‘정치’를 구별하고, 국회의원을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소모적인 정쟁을 하는 대상이라고 경멸하는, 국민들에게 그러한 이미지를 줘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는 대통령의 ‘치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다른 보수언론은 <조선일보>처럼 의회의 입법활동까지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역시 ‘규제완화=선’이라는 대통령과 정부의 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중앙일보> 사설은 “중앙 정부 부처들의 규제 고삐를 푸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풀뿌리 규제까지 원스톱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규제의 정점은 지방자치단체 일선 공무원이다. 마지막 단계인 지자체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중앙부처 규제를 열심히 풀어봐야 헛일이다”라며 <조선일보>와 유사한 지적을 했다. <동아일보> 역시 <‘청와대 끝장토론’에도 규제혁파 못하는 장관 물러나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정부의 인식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한국일보>는 한국의 조간신문의 정치지형에서 흔히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고 평가받지만 정치문제에선 진보언론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잦고 경제문제에선 보수언론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잦다. 이 문제에서도 <한국일보>는 그러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한국일보>의 21일자 사설 제목은 <규제개혁 성패는 공무원의 '서비스 마인드>였다. “한번의 토론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지만, 규제개혁에 대한 공감대 확산에 기여했다고 본다. 문제는 실천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외쳐도 규제를 쥐고 있는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허사다”라는 서술에 담긴 인식은 보수언론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반면 진보언론은 대통령의 태도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21일자 <한겨레> 사설의 제목은 <규제 개혁, 옥석 가리기에서 출발해야>였다. 제목에서부터 규제완화가 만사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경향신문> 사설 제목 역시 <집단적 규제 완화 합창, 그 부작용을 경계한다>로 이러한 인식에 대한 경계를 드러냈다.
▲ 21일자 한겨레 1면 기사
<한겨레> 사설은 “이럴 때 꼭 필요한 규제가, 없애야 할 규제에 묻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대통령이 이른 시일 안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도록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관료들이 대통령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둔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규제의 당사자, 그중에서도 대기업의 민원을 이참에 별다른 검증 없이 들어줄 수도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라며 정부의 규제완화가 대기업 집중 현상을 도와주는 것을 경계했다.
<경향신문> 사설 역시 “우선 행사가 반쪽짜리였다. 규제 완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회의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담아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 ‘규제=손톱 밑 가시’로 등식화되는 양태도 바뀌어야 한다. 규제 중에는 비타민과 같은 것도 있다. 공공성,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는 지속적으로 갖고 가야 한다”라며 공공성과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한국 사회는 정부 기능은 막강한데, 그 기능이 소득재분배보다는 오히려 ‘대기업 밀어주기’를 위해 사용되는 특수한 상황이다. 어떤 정부 기능은 덜어내야 하지만, 시장에 대한 어떤 종류의 통제는 강화될 필요도 있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박근혜 정부와 보수언론의 강조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일말의 인지가 없이, 애써 외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규제완화의 강조가 ‘증세’를 포기한 대통령이 예산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개혁 비슷한 것’이 그것 밖에 없어서 나온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정책이 급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기업 민원’만 반영될 거라는 우려를 벗어나고 싶다면, 적어도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를 구분하는 기준이라도 제시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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