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1일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에 대해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여성 징집 공론화를 주문하였다.

<중앙일보>는 13일자 사설 <여성 징집, 이젠 공론화를 고민해야 한다>에서 “결국 헌재의 결정은 남성만 징집할 것인지, 남녀 동등하게 징집할 것인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자가 결정할 일이지 헌재가 이래라저래라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헌재 결정은 효력이 즉시 법원·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에 미친다. 따라서 제도적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위헌결정이 나왔을 경우의 후폭풍은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렵다. 당연히 헌재는 이 점을 고심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의미를 정확하게 풀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이런 현실을 감안했을 때 현행 병역제도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또다시 사법적 판단을 구하기보다는 공론화를 고민하는 쪽이 맞다 (...) 여성 징집 여부는 사법적 판단에 미룰 일이 아니다.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라고 지적한다.
<중앙일보>의 지적은 아주 엉뚱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수준의 지적이라고 판단된다. 이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막 받아든 장삼이사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지,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을 꾸준히 고민해야 마땅할 언론사에서 주장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징병제의 존속 여부부터 고민해야
여성 징집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는데, <중앙일보> 사설은 이에 대한 초보적인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첫째, 통일 여부와 상관없이 징병제를 존속시킨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징병제가 존속하지 않는다면 남성 징병제를 해소하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할 뿐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12일 경북 포항 해병 1사단에서 해병대원들이 실탄으로 기동 간 교대전진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징병제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도 그렇고, 당위적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한국은 통일을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와 국경선을 맞대게 된다. 상대방을 자극할 필요는 없지만, 비슷한 인구의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육군 병력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또한 당위적인 차원에서 볼 때도, 징병제와 모병제 중 어느 쪽이 더 윤리적인지는 따져볼만한 문제다. 징병제는 국가 기구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을 모든 계층에게 열어둔다는 점에서 모병제보다 윤리적일 수도 있다. 모병제 체제에서 군대는 저소득층의 선택이 될 공산이 크고, 중간층 이상의 시민들은 군인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쉽게 파병에 동의할 수도 있다.
군내 인권문제 개선 논의되어야
둘째, 여성 징집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군대 내부의 인권 개선 문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모병제로의 전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다고 해도 시급한 문제다. 지금의 군대 내부의 인권 상황에서, 모병제 사병은 어지간한 급여를 지불하더라도 결코 선호 직종이 될 수 없을 것이고 군대는 필요한 만큼의 병역자원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정부 십년’ 동안 한국 군대는 ‘구타’를 근절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다. 단적으로 군 의문사 문제에 대한 군부의 대처는 아직도 ‘한국 사회의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성의 경우엔 성폭력 문제가 추가되는데, 진급을 위해 상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군의 특성상 제대로 고발하지도 못하고 고발하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처벌하는 희한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여군간부에 대한 군 내 성폭력 사례는 이미 몇 번 매스컴에 보도된 바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굳이 태어나야 한다면, 남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은 객관적인 여러 지표가 보여주는 바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군대가 남성 일반에게 가하는 엄청난 인권유린과 폭력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또한 군대가 받아들이기 시작한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과 성폭력의 가능성을 근절하려는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중앙일보> 사설은, 그저 “여성에게 국방의무를 지우려면 군대의 시설과 관리체계의 혁신, 문화환경과 의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또 여성의 신체적·생리적 특징과 출산시기의 결정 등 많은 문제를 고려해 적합한 업무를 발굴해야 한다”라며 이 문제를 뭉뚱그린다.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증거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 내 인권 문제는 기껏해야 사병월급 인상안과 복무기한 축소 정도로 치환되어 논의되고 있다. 물론 사병 월급 인상안은 인권 문제가 맞다. 하지만 징병제 군대가 복무기한을 한정없이 축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정부에서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했다가 약속을 어기거나 더디게 실행하는 일을 반복한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 등의 발의를 통해 열성적으로 추진되던 사병월급 인상안 역시 이명박 정부 이후 동결된 상태다.
이 논의지형을 깨뜨려야 한다. 복무기한을 축소하기 보다는, 비현실적이고 반인권적인 휴가 일수를 늘려서 군인이 정기적으로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대가 사람을 다루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모병제 전환도 꿈꿀 수 없고 여성 징집은 성폭력을 양산하는 재앙이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잊었는가
마지막으로, 여성 징집 문제를 논하려면 반드시 남성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여성 징집이 논의되지 않는다면, 텅 빈 담론이다. 남성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재는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부가하는 역차별을 증거하는 실존적인 사례다. 여성 징집 문제는 다수 남성과 소수 여성이 군복무를 할 때, 소수 남성과 다수 여성이 집총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의무를 다르게 이행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면서 제기되어야 한다. 여성도 징집하면서 남성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이 온당할까. <중앙일보> 사설은 이런 초보적인 문제에도 생각을 뻗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 13일자 중앙일보 사설
이러한 몇 가지 전제조건을 고려해볼 때, 공론화되어야 할 것은 여성 징집 그 자체가 아니다. 군내 인권문제 개선책과 함께, 참여정부 시절 잠깐 논의되다가 사라진 사회복무제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양극화와 고령화를 통해 돌봄노동이 필요한 빈곤층과 노년층이 늘어난 상태다. 적절한 교육을 받은 후 이들에 대한 돌봄노동을 시행하는 것이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의무가 된다면 남성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도 해소되고 군복무에 대한 오랜 역차별 논란도 해소될 수 있다. 물론 사회복무자들의 복무기간이 군복무자들보다 다소 길어야 한다는 식의 조정은 필요하다.
비록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추가적인 의무를 부가하는 것이 민망한 부분도 있으나, 여성들이 특정한 영역에서의 역차별을 시정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남녀평등을 요구할 수 있고 그것이 남성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
군복무를 포괄하는 큰 틀에서의 사회복무가 시행된다면, 교육은 동등하게 받지만 여전히 취업 영역에서 존재하는 남녀차별 문제, 그리하여 빈곤층 여성만 취업전선에 나서고 다수의 고학력 전업여성이 남편의 긴 노동시간을 바라며 자녀 교육에 자아실현을 투영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도 쉬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군복무에서 여성이 배제된 것이 오히려 차별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 이유를 성찰해 볼 필요도 있다.
결국 징병제의 존속 문제, 군대 내 인권 개선 문제, 남성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문제는 여성 징집 문제를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만드는 매우 초보적인 전제조건들이다. <중앙일보> 사설이 여성 징집을 운운하면서 이 문제들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얼마나 건성으로 고민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중앙일보>는 마땅히 자신들의 사설 수준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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