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인사청탁에 실패하고 ‘물먹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맥락을 살피자면 이렇다. 최연혜 사장은 2012년 총선 대전 서구을 선거에서 낙선한 후 지난해 10월 코레일 사장이 되기 전까지 이 지역 당협위원장이었다. 그런데 해당 지역구에서 자유선진당 의원을 지낸 이재선 전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건너오면서 지역구 사정이 민감해졌다.

최연혜 사장이 차기 총선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면 이재선 전 의원에 대한 견제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2012년까지 현역 의원이었던 이재선 전 의원이 당협외원장이 된다면 2016년 총선에서 자신의 출마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연혜 사장이 지난 16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자신과 사돈 관계이자 19대 총선에서 '최연혜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측근인 김영관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을 이 지역 당협위원장에 인선해 달라고 건의한 것은 그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17일 대전 시청을 방문, 염홍철 시장을 만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과거 지역구 새 당협위원장 인선과 관련해 불거진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만남과 대화는 언론보도로 흘러나갔고 황우여 대표 역시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을 해주는 상황이 되었다. 최연혜 사장의 입장에서 볼 땐 당협위원장을 자신의 측근이 맡게 되면 정치인으로서의 장래가 유지가 되지만 이재선 전 의원이 맡게 되면 사실상 밀리는 처지가 된다. 지난 총선 두 사람 모두 출마하여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당선된 상황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도 좋을 리 없다. 철도파업 때문에 챙기지 못했던 일을 이제 와서야 챙긴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당내에선 이재선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언론의 취재나 황 대표의 확인이 용이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새누리당은 20일 오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대전 서구을 당협위원장에 이재선 전 의원을 임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인사청탁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연혜 사장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원래 예정되었던 대로 이재선 전 의원이 당협위원장이 된 것이다. 이어서 최연혜 사장은 오후에 자신이 3년의 코레일 사장 임기를 채울 것이고 다음 총선에 불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코레일 최연혜 사장은 청와대 입장에선 ‘기특한 사람’이다. 정치부 기자들은 “청와대 사람들은 ‘최연혜 만한 장관이 한 명도 없다’고 한탄하기도 한다”라고 전한다. 본인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정부 시책을 과단성 있게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보기에는 평가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다른 각료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그들의 입장에 선다면 이해할 만하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선 섬뜩한 지점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최연혜 해프닝’은 제아무리 박근혜 정부라 하더라도 집권 여당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그렇기 때문에 최연혜 사장처럼 청와대가 보기에 흡족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관들처럼 어영부영 행동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 하 각료에게 현명한 자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누리당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유례없이 정권에 순치된 집권여당이나, 그렇더라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이해관계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청와대조차도 최연혜를 높게 평가하지만 따로 챙길 필요성까지 느끼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차피 단임제 정권이고, 다음 총선이 지난 이후의 충성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3년의 임기를 채워주는 정도만으로 그 '기특함'에 대한 보답이 된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뒤집어 말하면 새누리당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 눈치를 덜 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붕괴하지 않는다면 다음 총선 때까지는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통제를 따를 것이다. 그러나 총선까지 끝난다면 새누리당 의원이라도 대통령의 통제를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만일 대통령의 지지율이 붕괴한다면 그보다 더 일찍,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새누리당 의원들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일견 강력해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는 역설적으로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무슨 종류의 것이든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각료와 여당이 청와대 눈치를 보는 가운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도 대통령의 편이 아니게 될 테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은 그렇다.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성과가 빨리 나지 않는 쪽이 차라리 더 낫다는 것만이 이 시점에서 야권 지지자가 가질 수 있는 한 가닥 위안이라고 하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