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는 김(경준)씨 송환에 대해 ‘국민의 돈을 갖고 도피한 김씨는 빨리 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 후보측 변호사들은 김씨에 대한 신문이 끝날 때까지 김씨의 항소 취하 결정을 미뤄달라는 청원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후보가 말로는 김씨의 귀국을 촉구하면서 실제로는 그 반대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성명서로 오인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내용은 조선일보 오늘자(15일) 사설 <김경준 송환에 대한 이명박 후보의 입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많은 신문들이 이 사안을 정치권의 공방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핵심은 이 후보의 이중처신이다.

▲ 조선일보 10월15일자 사설.
‘치고 나가는’ 조선일보 … ‘눈치 보는’ ‘비조선일보’

조선일보 사설을 좀더 들여다보자.

“이 후보는 김씨가 귀국해 하는 주장들이 거짓말이라면 국민에게 설명하고 판단을 구하면 된다. 이 후보 스스로 ‘김씨가 제2의 김대업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안 될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이제 국민들도 김대업식 폭로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김씨가 문서위조범에다 사기 및 주가 조작 혐의자라는 사실도 다 알려져 있다.”

김경준씨 귀국문제로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지만 ‘BBK 주가조작’과 관련한 김경준씨 귀국 문제에 있어 핵심은 이명박 후보의 이중플레이다. “빨리 와서 재판받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다른 쪽에선 이 후보측 변호사들이 김씨 인도가 늦춰질 수 있는 청원을 낸 것 자체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논외로 하고 “김경준씨는 빨리 (한국에) 와서 재판을 받으라”고 언급한 이명박 후보가 이 원칙대로만 가면 논란은 사라지게 된다.

언론보도의 방점이 찍혀질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조선일보처럼 “이 후보측 변호사들이 김씨 인도가 늦춰질 수 있는 청원을 낸 것은 당당하지 않게 비친다”고 지적을 하거나 아니면 한겨레와 같이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비비케이 사건 의혹 규명에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스스로 깨끗하다면 피하지 말고 정면에서 돌파하는 게 올바른 자세”라고 질타할 수 있어야 한다.

▲ 한겨레 10월15일자 사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철저히 정치공방 위주로 이 사안을 접근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증인 채택을 거론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로 한 것 역시 대다수 언론에게 정치공방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행태가 국회일정을 거부할 정도로 온당한 것인지 그리고 이 후보 쪽의 이중처신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없다.

동아일보가 오늘자(15일) 8면에서 보도한 <“김경준 씨 대선 앞두고 귀국설…보이지 않는 손 작동”>이라는 기사를 한심하게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파적 지면 배치’ 못 벗어나는 동아일보

▲ 동아일보 10월15일자 8면.
동아는 이 기사에서 김경준씨 귀국문제를 두고 한나라당이 최근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는 소식을 전한 뒤 “김 씨가 3년 반 동안 국내에 들어와 재판을 받으라고 한 우리 측 요구도 무시한 채 미국에서 버티다 대선을 2개월 앞두고 갑자기 들어오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이다. 엄청난 돈을 미국으로 빼돌린 범죄자를 대선에 이용하려는 것은 분명한 정치공작 기도이며 공작의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는 박형준 대변인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물론 BBK 사건이 다시 쟁점화될 경우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이로 인해 이 후보 쪽이 대선과정에서 ‘피해’를 입게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이 후보 쪽 입장일 뿐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BBK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본 만큼 관련 사안에 대한 의혹규명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게다가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인사인 만큼 의혹이 있다면 철저히 검증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김경준 씨 대선 앞두고 귀국설…보이지 않는 손 작동”>이라는 주장은 한나라당 쪽에서 제기할 수는 있어도 이를 언론이 제목으로 뽑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민감한 사안에 한쪽 편을 들어주는 일방적인 제목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논조를 보이고 있는 조선의 사설과 오늘자(15일) 동아일보의 기사를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둘 다 ‘보수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지면의 ‘격과 품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또 다른 관심 하나. 조선이 사설에서 이 후보 쪽을 ‘치고 나간’ 이후 동아의 논조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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