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별 2013QR3(이하 감자별)>의 첫째 딸 노보영(최송현 분)은 셜록 홈즈 저리 가라할 만한 남다른 관찰력으로 추리의 일가견을 보인다. 남편이 화장실 변기 뚜껑을 내리지 않은 것도, 큰 아이가 세수를 하지 않은 것도 척 보면 알아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한 똑부러지는 주부 보영에게 시련이 닥쳤다. 바로 큰아들 규영(김단율 분)이 반에서 기르는 방울토마토를 따먹었다는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나는 아들 규영을 붙잡고 추궁해보지만, 그녀의 예리한 눈에도 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들의 결백을 믿은 그녀는 아들의 혐의를 풀어주고자 셜록 홈즈의 복장을 한 채 학교에 간다. 그리고 세심한 추리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웃반 토끼가 범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그녀의 말을 아들의 혐의를 덮기 위한 무리한 속단이라 치부한다. 스스로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자신 없어 하던 그녀는 돌아서는 아들의 바지에 묻은 붉은 얼룩을 보고 아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리가 틀렸음을,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해버린 자신을 자책한다. 침대에서 뒹구는 아내, 그 화면에선 남편(김정민 분)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그토록 완벽했던 아내의 추리가 틀리게 된 건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허술한 그녀에게서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감자별>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면은 규영의 반 교실 문쪽으로 바뀌고, 조금 열린 문 사이로 토끼인 듯한 물체가 보인다.

흔히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노보영의 남편이 아내의 첫 실수를 모성의 착시라고 정의내린 것처럼. 하지만 냉소적 시각의 <감자별>은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불온한' 역설을 논한다. 사랑하기에 믿을 수 없는 거라고.

노보영은 평소 자신의 큰 아들을 못 미더워했다. 이성적인 그녀와 다르게 허무맹랑한 별 이야기 따위나 즐기고, 하는 짓이라고는 헐랭이인 규영의 말에 그녀는 늘 '거짓말이지?'하고 의심부터 하곤 했다. 만약 아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엄마였다면 아들의 거짓말을 판별하는 따위의 노하우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아들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내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 녀석의 도발을 의심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내린 이성적 결론도 그녀는 미덥지 않아했다. 평소 같으면 아들 엉덩이의 붉은 자국을 의심해볼만도 하건만, 아들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힌 그녀는 대번에 그 자국을 아들이 깔고 앉아 으깬 방울토마토라 믿어버린다. 사랑이 내지른 정신적 폭력이다. 시트콤 <감자별>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내지르는 사랑이란 이름의 불신과 정신적 폭력을 감내해야 어른이 된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송미경(김지수 분)의 말대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녀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이다. 16일 방송된 5회에서 이 부부의 역학 관계는 미묘하게 변화된다. 남편의 밥상을 쓸어버릴 호기를 부리던, 자는 얼굴에 베개를 덮어 누를 만큼 분노를 발산하던 미경은 당신을 믿었다던 남편의 말 한마디에 허물어진다. 비록 자신은 잠시 바람을 피웠을망정, 그 순간에도 당신을 택했다, 당신을 믿었다고 남편은 말한다. 궤변과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남편을 사랑한 미경은, 남편의 미묘한 변화에 '바람'을 감지하고 남편을 감시하는 흥신소를 붙였다. 평소 자신을 덜 사랑해준다는 불안이 그녀로 하여금 부부의 믿음을 깨뜨린 것이다.

분명 그 선을 먼저 깬 것은 남편이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 5회를 보면 부부 관계의 신뢰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작가의 이런 서술이, 바람피운 놈이 나쁜 놈이라는 우리 사회의 선험적 명제에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든가,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문장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한가를 드라마는 논하고 있다.

작가는 묻고 있다. 부부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한 가정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라고. 은진(한혜진 분)은 남편에게 선택하라고 말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진흙탕의 진실을 알 것인지, 그게 아니면 막연한 믿음으로 부부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 하지만 교통사고 종료 건으로 은진의 남편 성수(이상우 분)는 이미 판도라의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6일 <감자별>에서 백설공주가 되어 광고 촬영을 하러 간 나진아(하연수 분)에 대한 노민혁 형제의 반응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이제 막 나진아를 여자로 좋아하기 시작한 노민혁(고경표 분)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회사 대표의 호의를 빙자해 첫 광고 현장에서 자신 없어 하던 그녀를 북돋아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는 등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하지한 이미 산꼭대기 허름한 나진아네 집에서부터 나진아를 마음에 두고 있던 준혁(여진구 분)은 자신의 사랑을 '못 생겼다'는 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더 사랑하지만 더 괴롭히는 사랑의 역설이다.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라고 하지만, 그 약자가 늘 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에 의심하고, 사랑하기에 불신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괴롭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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