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간의 조건> 미션은 스트레스 없이 살기이다. 시간과 일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 없는 삶이라니! 스트레스의 불가피함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는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스트레스 없이 살기라는 미션을 받아든 순간, 미션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차근차근 스트레스학 개론부터 시작한다.

스트레스 없이 살기 미션을 풀어내기 위해 멤버들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우선 자신이 스트레스 받는 것들을 써보고,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이 스트레스 받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어떤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놀라웠던 것은 멤버 가운데 늘 엄마 노릇을 자청했던 정태호, 내세울 것이 없다 생각하여 남보다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열심히 일하려 했던 정태호가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말하듯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결국 정태호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 과정에서 제시된 '감정 노동'이란 단어는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자살, 우울증' 등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산업 재해를 낳으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에 더욱 큰 공감을 낳았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에게, 그 반대급부로 감정 노동으로 인한 마음의 병이 생긴다는 이면의 진실이 시사적이다.

당연히 스트레스를 탐구한 미션은 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미션으로 이어진다. 착한 엄마 노릇을 하던 정태호는 이번 미션에서만은 아지트의 요리사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요리를 안 하는 것만으로도 정태호는 한결 편안해 한다. 그런 정태호의 모습에서 우리네 가정주부들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다른 멤버들이 부산하게 미션을 향해 움직일 때 그 둔중한 덩치만큼이나, 조금 느리게 한발 비껴 서서 미션을 맞이하는 김준현은 이번에도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열중하는 멤버들과 달리 느긋하게 스트레스를 피해가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 더 자고, 조금 더 즐겁게 먹고, 심지어 스트레스에 덜 시달리기 위해 일도 줄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일탈을 즐기기 위해 나선 곳은 공원 벤치이다. 통기타 하나를 튕기며 노래를 부른다.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르고~' 김광석과 이상은의 노래가 그의 입에서 나직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신기한 듯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먹거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노래를 마친 김준현은 노래의 값으로 받은 핫바를 물며 말한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의 자신도 이렇게 거리에 나와 노래를 불렀었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았다면서, 일탈은 과거의 자기를, 이제는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불러내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뿐만 아니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을 넘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을 찾아 위로도 해주어야 한다. 직업적인 스트레스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박성호는 며칠간 냉전 중이었던 아내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김준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세 아이의 아빠 김대희를 찾는다. 박성호와 김대희의 시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장의 고뇌이다. 함께 나누려는 가족과, 그것을 혼자 감당할 짐이라고 생각하는 가장의 딜레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쉬러 가고 싶지만, 그것이 제 2의 직장이 되어버리고 마는 육아의 딜레마.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대인의 참회록 같은 스트레스 없이 살기 미션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돌아보는 미션을 행간의 한 줄로 다룬다. 대부분 함께 어울려 짜하게 게임을 하고, 벌칙을 수행하는 시끌벅적한 시간들로 채워진다. 지난번 광희에 이어 합류한 택연으로 인해, 안 그래도 여섯 멤버로도 중구난방으로 채워진 듯한 미션은 과부하가 걸린 듯 달려간다. 미션은 스트레스 없이 살기인데 한 시간 남짓한 시청은 떠들썩한 잔칫집을 보고 난 느낌이다. 거기로 나가 웃통을 벗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프리 허그를 하고, 심지어 볼 뽀뽀를 해달라고 애걸한다. 그걸 통해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결했다고 한다. 즉자적이고 감각적인 일탈이, 관조적이고 철학적인 일탈의 잔향조차 날려버린다.

<인간의 조건>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전 없이 살기라는 단순 미션을 '아날로그한 삶'으로 승화시켰을 때였다. 말 그대로 <인간의 조건>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여섯 멤버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이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인간의 조건>은 스스로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인간의 조건>의 본향을 지켜가는 것과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 팀이 선택한 것은 광희, 택연 등 아이돌 자원의 유입으로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시하고자 한 것 같다. 그들의 참여와 본래 목적이 잘 어우러진다면 별 문제 없다. 그러나 최근 <인간의 조건>은 '아날로그한 인간의 향취'와 오락 프로그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거나, 오락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에 함몰된 듯한 느낌이 든다.

토요일 늦은 밤 떠들썩한 <세바퀴> 대신 <인간의 조건>으로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정태호는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의 고민과 그의 고민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가사에서 해방되려고 하는 발버둥과 문신을 하면서까지 착한 사람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일련의 과정을 이번 스트레스 없이 살기의 중심 스토리로 엮어갔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조금 더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훌륭한 주제와 좋은 자원을 <인간의 조건>은 산화시켜 버린다.

아이돌 게스트를 초대한 <인간의 조건>은 정태호의 스토리를 차근차근 보여줄 여력이 없다. 그는 열외로 밀려난 채 택연을 중심으로 한 오락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욕심만 드러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뻔한 개그맨들의 웃기려고 애쓰는 쇼가 될 뿐이다. 웃음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애초 시청자들이 <인간의 조건>에 눈길을 돌린 것은 여섯 멤버가 웃겨서가 아니다. 웃음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과정의 양념일 뿐이다. 양념이 센 음식은 쉬이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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