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검색어까지 올라간 민영화는 성접대 의혹이 있는, 이니셜 ㅁㅇㅎ로 추측된 여배우의 이름이 아니다. 철도노조 노조원들이 직위해제를 당하면서까지 반대하고 있는 철도의 '민영화'이다. 하지만 이는 tv조선 뉴스를 백날 봐봐야 절대 알 수 없는 미지의 단어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데 어떤 방송을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게 되는 것이 요즘 우리들의 현실이다. 정치 평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그간 <썰전>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한 주간 가장 시의성 있는 사안들에 대해, 대립되는 시각을 가진 두 정치 평론가가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밝혀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고 있는 <썰전>에서는 '시의성'도, '적나라한' 의견도 점점 무디어져 가고 있는 느낌을 준다.

12월 12일 방영된 42회 <썰전>의 포문을 연 것은 시사 이슈가 아니라 오리털 패딩이었다. 정치 이슈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다루겠다는 <썰전>의 의도가 반영된 꼭지였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겠다는 의지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과연 이 시점에 오리털 패딩이 첫 꼭지가 되어야 할 사안이었는가라는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번 주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는 무엇일까? 앞에서 잠시 언급한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철도노조 파업으로 지난 9일, 파업 개시 11시간 만에 파업 참여 노조원 4천 356명을 직위 해제한 데 이어, 매일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을 파악해 직위해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이다. 파업 나흘째까지 직위해제된 노조원은 노조 전임간부 136명을 포함해 모두 7천608명으로 늘어났다.

이보다 더 주목할만한 사회적 이슈가 있는지 모르겠다. <썰전>이 녹화 방송이라서 그렇다고? <썰전>은 매주 월요일 녹화를 한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것은 9일이었다. <썰전> 녹화를 시작하기 전에 철도 노조원 다수가 직위 해제를 당했을 상황이 예상된다. 다음 주에 할 거라고? 하지만 그러면 가장 '시의적절한' 상황을 지났을지 모를 일이다.

<썰전>은 정치인들의 발언과 관련해 민주당 조경태 의원의 문재인 의원을 향해 날린 독설을 한 꼭지로 다루었다. 그것이 민주당 내의 이른바 '팀킬'을 가져오는 자중지란의 상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이주에 주목할 만한 정치인의 발언이었는지는 또한 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 8일 성명서를 통해 대선불복을 밝힌 장하나 민주당 의원, 이어 12월 9일 양승조 의원의 발언이 청와대를 진노케(?)한 덕분에 새누리당에서는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조경태 의원 정도의 발언이 이 주의 주된 이슈가 되었는지 의문을 얹게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썰전>에서 다루고 있는 이슈들이 '시의적절'하지 않아졌다. 얼마 전까지는 그것이 녹화일과 방영 시간의 텀에서 오는 불가피한 함정이라고 여겨졌지만 정확히 따져보면 꼭 그것도 아닌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과연 '시의성'을 잃은 정치 평론을 매주 늦은 시간 기다렸다가 봐야할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매일 jtbc뉴스9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썰전>의 두 평론가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차기 국회의원을 노리고 있음을 결코 숨기지 않는 강용석은 여당의 입장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야권 대권주자에 대한 저격수의 자세를 숨기고 있지 않은 반면, 야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철희 같은 경우는 회를 거듭할수록 야당의 입장이라기보다는 그저 '평론가'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단 느낌을 준다.

강용석은 호시탐탐 뜯어먹을 것이 없나 노리고 있는데, 이철희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공평부당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강용석은 매회 헛발질을 할지언정 치열하지만, 이철희 소장의 의견에 따르면 야당은 쓸모도 없고 열의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쯤 되면, 이철희 소장보다 조금 더 '야성'이 강한 평론가가 한 사람 더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42회 <썰전>으로 돌아가서, 시의적절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 위해 첫 꼭지를 장식한 오리털 패딩의 이야기가 적절했는가를 보자. 오리털 패딩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인기를 끄는 캐나다 구스와 몽클레어 제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현재 착용하고 있는,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사준 오리털 패딩 이야기가 역시나 장황하게 이어졌다. 그 이야기 말미에 비싼 오리털 패딩을 입게 되는 현상에 대한 의견이 한 줄 요약식으로 덧붙여졌다.

그런데 이들의 오리털 패딩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자식에게 비싼 오리털 패딩을 사주지 못한 부모는 능력 없는 사람 같다는 자괴감이 든다. 심지어, 김구라는 자기가 나서서 사주겠다고 했단다. 노스페이스 패딩으로 등급을 나누고, 비싼 패딩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저 바깥의 이야기다. 부모의 부담이 크다는 호소는 <유자식 상팔자> 수준이다. 여기에 기껏 덧붙인다는 게 사회적 문제 나아가 교육적 문제로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도이다.

이철희는 비싼 오리털 패딩의 효능에 대해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는 이미 지상파 뉴스를 통해 적나라하게 기사화된 바 있다. 그런 정보조차 마련하지 않은 건 제작진의 준비 부족이다. 실제 오리털 패딩의 성능에 대한 조사도 없이, 그저 내 자식 사줘 보니 부담스럽더라 하면서 장황하게 오리털 패딩 홍보에 가까운 제품 소개나 하고, 분석이라는 게 한 줄 댓글 수준인 함량 미달의 이슈라면 차라리 다루지 않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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