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파업기자 22명 전원이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 것은 지난 6월26일이다. 당시 정희상 노조위원장은 회사와의 완전결별을 선언하면서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싸워온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징계와 구조조정에 임하고, 해사행위를 인정하라는 회사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독립언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결별하고 새 길을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 미디어오늘 6월27일자 1면.
정 위원장은 “자본권력의 횡포에 쓰러지지 않도록 언론계 동지들과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져달라. 독립언론으로 보답하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시사저널 파업 사태에 침묵했던 기자들…기자실 이전 문제엔 집단행동

하지만 “자본권력의 횡포에 쓰러지지 않도록 언론계 동지들과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져달라”는 정 위원장의 이 말은 언론계 종사자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다. 시사저널 파업사태는 대다수 언론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제대로 조명 받지도 못한 채 파업사태에 종지부를 찍었다.

시사저널 사태가 발생, 기자들이 사표를 제출하기까지 1년이라는 세월동안 대다수 언론은 이 사안에 침묵했다. 일부 언론만이 시사저널 파업사태를 비중 있게 다뤘을 뿐 거의 대다수 언론이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사저널 파업 사태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최근 기자실 이전 문제가 발생한 이후 대다수 언론이 보인 태도 때문이다. 많은 언론들이 이 문제를 ‘정부의 언론탄압’ ‘언론자유 침해’ ‘국민의 알 권리 침해’라고 규정, 집단행동에 돌입했고 정부와의 갈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편집권 침해에 파업으로 맞선 기자들을 중징계하고 직장을 폐쇄하고 대화까지 거부한 경영진에 의해 해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시사저널 파업사태에 대해 굳게 침묵했던 대다수 언론들이 기자실 이전 문제에 이처럼 ‘올인’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시사저널 파업 사태와 비교해 기자실 이전 문제는 지면 배정·메인뉴스 비중 면에서 압도적이고 외부의 조직적 행동 측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언론자유’나 ‘언론탄압’에서 진정성을 별로 느낄 수 없었던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 중앙일보 10월15일자 사설.
당장 오늘자(15일) 아침신문만 살펴봐도 국민일보가 ‘데스크 칼럼’을 통해 기자실 이전 문제를 언급했고, 서울신문과 세계일보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정부 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기자칼럼까지 실었다. 논조가 거의 비슷하다. 정부의 기자실 이전 요구는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요 침해라는 것이다.

기자단 이전 문제 갈등은 감정 싸움일 뿐

물론 일정 부분 이해하는 측면도 있다. 초기 정부 방침에서 문제가 되는 조항들이 있었고, 이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려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다르다. 그래서 기자들의 '반발'에 동의하기 힘들다. 오히려 기자들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싸움’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서 담합한다”는 노무현 대통령 발언을 비롯해 정부가 이 방안을 사실상 밀어붙이고 있는 데 대한 정서적 반발이 크다는 얘기다.

한겨레가 오늘자(15일)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자들의 요구사항을 상당부분 수용했고, 기자실 이전이 취재접근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기자들이 기존 부처 기자실에 집착하는 것은 명분이 약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미 강도 높은 집단행동에 나선 마당이어서 어떤 계기도 없이 선뜻 정부안을 수용하겠다고 나서기도 힘든 실정”이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이해는 하지만 거기에다 대고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니 5공식 언론탄압이니 하는 수식어를 함부로 사용하면 곤란한 일이다.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 이면에 자신들의 취재편의가 ‘조금’ 불편하게 바뀌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이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한겨레 10월15일자 7면.
시사저널 사태에 최소한의 책임이라도 느끼는 언론인이 있는가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시사저널 파업 당시와 현재 전개되고 있는 기자실 이전 문제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기자실 이전 요구는 군사정권에도 없던 언론탄압’이라고 흥분하는 기자들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 지 한번 들여다보기 바란다. 물론 네티즌의 반응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없다. 허나 그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기자실 이전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지는 별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조금 엉뚱한 소리 같지만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많은 기자들이 보인 ‘관심’과 조직적 행동의 일부분만이라도 시사저널 사태에 관심을 보였다면? 가정은 우습지만 아마 시사저널 파문이 조금 다른 상황으로 전개됐을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한 대다수 언론인들은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기자실 이전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태도를 보니 그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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