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

본명 김해경,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에 총독부 기관지 표지 공모에 당선될 정도로 재능을 보였지만, 각혈로 퇴직한 후 '제비'등을 경영하며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등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상이 드라마 페스티벌에 등장한 이상에 대한 가장 적절한 약력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면 누구나 이상의 [날개]나 [오감도]쯤은 접해봤을 것이지만, 또 그것을 접해봤음에도, 철이 들어서도 여전히 이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의 삶도, 그의 작품도 미스터리한 채 남아있다. 그래도 '날개'를 펴라는 소설까지는 이해가 되겠지만, 제1의 아해가 뛰어간다오, 제2의 아해가 뛰어간다오 라는 식의 시에 이르면 범인의 이해도는 그의 시 앞에서 주눅 들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작가들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이상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풀어내려고 했다. 일찍이 이상의 삶과 미스터리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이 1997년 장용민의 소설로, 1999년 유상욱 감독의 영화로 발표되었다. <훈민정음 살해사건(2012)>의 김재희 작가는 아예 <경성 탐정 이상>이란 작품을 통해 이상을 탐정으로 전직을 시키기도 했었다.

<드라마 페스티벌- 이상 그 이상>은 바로 이런 미스터리한 이상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작품이다. 드라마 속 이상(조승우 분)은 자신의 작품 오감도를 게재하는 신문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군중들에게 라이터를 빌려주고 스스로 그의 작품이 실린 신문더미를 불태우는데 앞장서는 기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기행은, 경혜의 언급을 빌어 나타나듯이, 청계천 다리 밑의 굶주린 빈민들과, 화려한 경성 거리를 활보하는 '모던'걸, '모던'보이의 괴리감 속에서 스스로 자학하며 미침을 선택한 자의식 가득한 천재로 그려진다. 일찍이 뮤지컬을 통해 무대에서 빛을 발하던 조승우의 연기는, 자학을 숨긴 채 자신을 희화화시키는 이상을 그려내는데 그보다 더 적역이 없는 듯하다.

그런 그에게 총독부 동료였던 히야시가 고종의 밀지가 담긴 서찰을 전하고, 히야시의 죽음 이후 묘령의 여성 경혜(박하선 분)까지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고종이 숨겨두었다는 황금 찾기에 돌입한다.

<이상 그 이상>은 이상의 신비로운 캐릭터를 진작시키기 위해, 당시 제비의 사환이었던 수영(조민기 분)이 나이가 들어 이상의 그림을 들고 표구상에 등장하는 것으로,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전개된다. 하지만 나이든 수영의 등장이 미스터리함을 배가시키기는 했지만, 과연 그의 부연 설명이, 드라마의 스토리에 보탬이 되었는가는 미지수일 정도로, 한 시간 여의 짧은 런닝 타임 동안 꾸겨 넣은 이상의 탐정기는 버거워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이상이라는 캐릭터에 방점을 찍는 데는 성공했음에도, 이상을 제외한 그가 탐정으로써 고종 황제의 밀서를 통해 황금을 추적해 가는 과정은, 어설프기가 그지없었다. 탐정물의 기초는 시청자로 하여금 극의 진행에 따라 함께 머리를 쓰도록 만드는데 있다. 방위를 이용한 추리의 과정은 그럴 듯했지만, 그것조차 대사로 나열하는 것에 그치고, 경혜의 등장과, 히야시가 알고보니 이상을 좋아했다던가의 결정적 힌트를 말로 설명해 버리는 식의 추리극은 매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숨겨진 고종의 황금 찾기가 결국은 '살아있는 민비'라는 또 다른 대한 제국의 미스터리로 전환해 가는 과정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극의 절정에서 조승우의 '뒷방 늙은이가 결국 생각했던 것' 운운의 분노 작렬하는 연기가 없었다면, 동굴 속 반지를 발견하는 장면은 실소가 나올만한 장면이었다.

민비가 살아있다는 스토리는 김재희 작가의 [경성 탐정 이상] 중 '그녀가 살아있다‘를 통해 이미 차용된 이야기이다. 물론 이 스토리 자체가 망해가는 대한제국에 대한 백성들의 열망이 자아낸 미스터리로 구전되었던 것이기에, 또 한 번 차용되었다는 것에 문제제기를 삼을 것은 아니라 본다. 하지만, [경성 탐정 이상]에서는 여전히 민비가 살아있어 그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하지만, <이상 그 이상>의 결론은 허무하다. 그래서 민비가 살아서 뭐 어쨌다는 건가?란 의문이 든다. 작가는 고종 황제 황금 미스터리를 살아있는 민비의 미스터리로 전환시킨 것이 큰 열쇠인 양 의기양양 했겠지만, 그것만으론 황금을 향해 폭주하던 스토리를 진화시키기엔 역부족인 듯 싶다. 그것이 애초에 없을 거란 이상의 대사를 복선으로 깔았다 해도 말이다. 한 시간 안에 이상의 활약상에 집중하다 보니, 결국 스토리의 개연성을 깎아먹은 결과가 돼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식 가득한 조선의 지식인 이상의 캐릭터를 텔레비전을 통해 만나는 건 즐거웠다. 어설픈 사건의 전개, 황당무개한 추격전에도 불구하고, 이상이란 인물을 다음에 또 만나고 싶으니까. 마치 어설픈 소극장 무대의 풋풋한 작품을 만나듯, 잔뜩 의욕이 앞선 이상의 탐정물은 그 실험 정신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뭐 이런 어리숙한 맛이 드라마 페스티벌의 강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는 드라마들이 뭐 그렇게 개연성이 있는 것도 아니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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