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 속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는 하루라도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도, 하루라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다. 기억력의 한계로 입력된 정보를 모두 다 기억하지 못하고 새롭게 입력된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 위에 덮어쓰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러한 기억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문자나 영상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인터넷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기록의 열람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고, 때문에 감추고 싶었던 과거가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 경향신문 9월17일자 25면.
이제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정보혁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얘기는 수많은 과거의 기록을 검색이라는 간단한 조작을 통해 어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겠지~ 그때를 기다리자"는 얘기를 간혹 접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난 네가 과거의 저지른 일을 상세히 알고 있다"는 얘기가 맞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나의 과거를 알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투명해졌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얼마전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궜던 유명인사들의 학력위조 파문과 이에 대한 거짓 해명도 네티즌들이 검색을 통해 밝혀내기도 했다. 아마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 좋아라 할 일은 아닌 듯 하다. 최근 언론재단에서는 ‘묵은 기사 인터넷 유통과 언론피해 구제방안’이라는 토론회가 있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묵은 기사가 개인의 프라이버시 등 인권을 침해하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을 토론해 보자는 것이었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한겨레 구본권 팀장은 “인터넷은 한번 보도된 기사의 유통과 유효기간을 '무한대'로 만들었다"며 "인터넷 시대에서 기사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언론 피해가 생겨났다면 이를 구제할 새로운 사회적 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 이름을 포털에서 검색했더니 오래전 내가 저지른 절도범죄 기사가 있었다. 자녀가 커서 내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매우 곤란해질 것이다. 이미 처벌을 받았고 사건이 종료됐는데 아직까지 인터넷에 기사가 떠있다. 제발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등의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소개가 됐다. 인터넷으로 인해 정보의 유통기간이 사실상 무한대로 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문제는 소개한 사례처럼 피해자가 한 사람인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뉴스를 검색할 때 네이버나 다음 등의 검색 포털사이트를 주로 이용한다. 포털사이트 DB에 뉴스가 공급되기 시작한 때는 1995년부터의 일이다. 그보다 앞선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서는 언론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카인즈에서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카인즈 또한 1990년부터의 뉴스를 DB에 담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과거 우리 언론들은 군사정권의 무력에 의해 왜곡된 기사를 쏟아낸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언론은 자신들이 왜곡한 기사들부터 리콜해야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된 기사들이다. 당시의 기사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광주사태, 폭동 등으로 왜곡된 기사 일색이다. 이렇듯 폭동이나 사태로 쓰여지던 5ㆍ18이 민주화운동으로 기사에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2월 정부가 광주사태를 '폭동'이 아닌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하면서부터다. 광주시민들은 언론으로부터 비로소 폭도의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기사들은 아직까지는 인터넷 어디에서도 검색할 수가 없다. 언론재단의 카인즈마저도 1990년부터의 기사들이기 때문에 1988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민주화운동으로 검색되고 있다. 언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어느 누구나가 쉽게 검색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얼마 전 최대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몇몇의 신문사에 아직 디지털화가 안된 창간호부터의 신문 기사를 디지털화로 전환해서 DB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에 따라 몇몇의 신문사들은 과거기사를 디지털화 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앞으로 1~2년 후부터는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80년 전 기사도 검색이 가능해 질 전망이다. 결국 내년부터는 5ㆍ18이 사태나 폭동으로도 검색이 가능해 진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그동안 언론들이 "세월이 흐르면 기억 속에서 잊혀지겠지~"로 애써 덮어두고 있었던 과거의 행적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적나라하게 평가받을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아마도 당시 보도했던 원문 그대로를 올린다는 것이 전제 돼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도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어떠한 형태로든 훼손하지 않은 원문 그대로 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반성도 어떠한 형태로든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과거 기사를 단순히 자산가치를 높이기 위해 디지털로 전환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과거 행적을 바로 잡는다는 심정으로 어떤 방식으로 원문을 훼손하지 않고 DB화 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원칙부터 세우고 독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과정부터 선행해야 할 것이다. 언론들의 기사는 신문사만의 자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언론들이여! 자동차나 냉장고 등에만 리콜을 외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왜곡한 과거 기사부터 리콜하는 것이 독자에게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아 올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에서 미디어를 다루고 있는 나는 네티즌이다. 매일 사이버 공간에 접속해 소통하고 있다, 고로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미디어에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PC와 휴대전화, MP3 등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 우리가 접속해 소통하고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미디어스 공간에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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