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들이여, 87년 헌법을 사수하자(5)

국회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나라당과 재벌을 포함한 수구보수세력이 정작 눈독을 들이고 있는 조항은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이라는 것은 앞의 기사들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 조항을 도입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김종인 전 민주당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 조항의 도입 배경에는 기자가 알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이나 국가경영 철학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라인강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에 관한 얘기도 자세히 듣고 싶었다.

이론, 경험 두루 섭렵한 김 의원의 자본주의 강의, 시대와 국가를 넘나들어

인터뷰는 저녁을 먹으며 3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터뷰의 형식을 띤, 이론과 현실을 남나드는 경제학 강의였다. 그는 미국과 독일의 자본주의 발달과 역사를 넘나들었고, 이들의 사례는 오늘 한국이 처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87년 헌법을 작성할 때 김종인 전 의원과 함께 참여했던 남재희 전 의원(노동부 장관 역임)도 자리를 같이했다.

▲ 김종인 전 국회의원

김 전 의원은 한국외국어대 독어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서강대에서 교수를 지내다 80년 국보위 경제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80년 헌법 중 경제에 관한 조항을 작성하는데 관여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민정당 대표를 지낼 당시부터 그의 ‘경제가정교사’ 역할까지 맡았었다. 보사부장관도 지냈다. 상아탑을 거쳐 경제부처 등 경제정책과 실무를 담당하고 입안해서 그런지 그의 대답은 거침이 없다.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나온 정책 중의 하나가 바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과세였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업종전문화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재벌들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고 모욕에 가까운 비난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정주영 전 회장과 김우중 전 회장 등으로부터 ‘빨갱이’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 최근 국회에서 미래한국헌법연구회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개헌논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개헌 ‘논의’가 아니라 개헌 ‘작업’이라고 할 정도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 160명 가량이 ‘개헌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데 권력구조 개편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통령 2번 해도 될 만한 지도자 안보여, 4년 중임제 반대

“4년 중임제 대통령제를 많이들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내 생각은 당장 4년 중임제를 채택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약 대통령직을 잘 수행해 국민들로부터 ‘이번 대통령이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생기면 그 때 가서 4년 중임제로 고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자질이 엿보이는 인물이 안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5년 단임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해도 끌어내릴 수가 없는 현실임을 염두에 둔 듯) 차라리 내각책임제가 나을 수도 있다. 잘못하면 (내각제하의 총리를) 2년 안에 끌어내릴 수라도 있지 않은가.”

- 한나라당과 전경련 등이 없애려고 하는 헌법 119조 2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석연 법제처장이란 사람이 헌법 119조 2항을 없애자고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더라. 명색이 경실련에서 활동했다는 사람이 전경련 부설 연구소와 관련된 일을 하더니... 일부 변호사들이 헌법 119조 2항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재벌들이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에 대해) 위헌심판청구소송을 많이 해야 자기들 돈벌이가 될 테니까... 나라가 어려워지는 원인이 자꾸 (대통령 5년 단임제) 권력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웃기는 일이다.”

- 경제민주화 조항인 헌법 119조 2항 도입 배경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펼 때 재벌들이 위헌심판 청구 소송을 했고, 대배심원들이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미국의 의료제도가 민영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무려 4,7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의료보험 혜택 자체를 일절 받지 못하고 있다. 부작용이 심각해 이제 와서 의료 민영화 제도를 바꾸려고 해도 제약회사 등의 로비 때문에 바꾸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 미국과 유럽 등에서 완전한 실패로 결론나

내가 최근에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보니 신자유주의는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라는 결론이 나 있고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40대와 50대 경제학자나 교수들이 미국(유학)가서 배운 것이라고는 신자유주의 밖에 없다.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섬머스(Lawrence Summers) 경제학 교수 같은 사람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결론내리지 않았나.”

김 전 의원은 신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경제사회적 배경이나 철학을 언급하며, “문제는 기업(들)이 국가의 모든 기능을 절대 대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소득 재분배 문제와 관련, 정부의 기능을 일부 기업에서 부담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가령, ‘기업 연금제’ 등으로 의료보장제도를 대체할 수 있느냐 하면, 못한다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것은 언제 망하거나 문을 닫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자신이 서강대 교수로 있던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할 당시 경험했던 정부 안팎의 반발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당시 경제사회적으로 ‘선 성장, 후 분배’ 분위기가 정부와 학계는 물론,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제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강력하게 건의했더니 다들 반대하고 난리가 났는데, 심지어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가족부) 신현확 장관도 반대하고 나서더라.”

-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설득했는가?

“당시 대학가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날 때인데,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학생운동을 너무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일정한 수준이 되면 노동자들의 분배 요구가 나타나게 돼 있다. 이 때 (정치적 요구를 담은) 학생 운동과 노동자들의 분배 요구가 맞물려 합쳐지게 되면 큰일 난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일정 부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그랬더니 ‘그러면 정부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뭔가가 없느냐’고 묻기에, ‘의료보험제도라도 우선 도입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 안팎에서 하도 반대가 심하니까 박정희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의료보험제도 도입에 관한) 평가교수단을 꾸리게 하고 나 보고 단장을 맡으라고 해서, 보고서를 내가 직접 작성해 올린 적이 있다. 그걸 근거로 박정희 대통령이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키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의료보험제 도입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의 '좌파신자유주의,' 웃기는 말장난

화제를 살짝 돌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노무현 정부 임기 후반에 경제부총리 제안을 받은 적은 없는가?”고 물었더니, 김 전 의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노무현 대통령은 웃기는 사람이다. 어떻게 삼성 이건희 회장을 ‘21세기 한국의 희망이자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노무현 정부가 무슨 좌파정권이냐? 좌파 정책을 쓴 게 뭐가 있나? 무슨 ‘좌파신자유주의’... 웃기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나중에 독일 대통령(1959-69)을 지냈고, 전후 독일 부흥의 견인차 중의 한사람이었던 하인리히 뤼브케(Heinrich Lubke)라는 독일 경제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뤼브케는 히틀러 치하에서 저항하다 터키로 망명한 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스위스로 건너가 제네바대학에서 경제학교수를 지냈다.

이후 1947~52년까지는 노르트라이니베스트팔렌 주정부의 식량·농업·임업 장관으로 재직했고, 1949~50년과 1953~59년 연방 하원에서 기독교민주당(CDU)을 대표했고, 1953년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에서 연방 식량·농업·임업 장관으로 입각했다. 1959년 아데나워가 입후보를 사퇴한 뒤 기독교민주당 연방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1959년 7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64년 재선을 지낸 인물이다. 케인즈의 반대편에 서 있으면서도 시장질서 자체를 존중하는, 하이에크에 비견되는 경제학자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한 뒤 미국을 방문, 케네디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홀대를 받자, 차관을 얻기 위해 1964년 서독을 방문했는데, 당시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일하던 독일 북서부 루르탄광 지대를 찾았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광부들을 부둥켜 안고 통곡했다고 한다. 돌아오는 차에서도 박 대통령이 계속 울자 뤼브케 대통령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우리 서독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울지마세요. 도와드릴게요’를 반복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에 따르면, 뤼브케 대통령은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성직자와 같은 청렴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그 세 분야가 바로 학계, 사법부, 언론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계와 언론은 이미 틀려먹었고, 사법부와 판사들이 우리 사회 마지막 보루인데, 최근의 경향을 보면 일부 판사들마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과 언행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국가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시 개헌문제로 화제를 돌려, “개헌이 이뤄지리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옆에서 먼저 대답한다. “나는 개헌은 결국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우선 여당의 박근혜 전 대표가 4년 중임제를 주장하고 있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내각책임제를 선호하는 것 같다. 국회와 여당 안의 주요 인사들의 권력구조에 대한 생각이 전부 다르다.”

김 전 의원이 거든다. “나는 국회의장이란 사람이 개헌 논의에 입장을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날 인터뷰의 주된 목적은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 2항과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이 조항에 관한 전경련 등의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김 전 의원은 속사포처럼 나온다. “전경련에서 밥을 벌어먹고 있는 박사란 사람들이 마치 헌법 (119조 2항) 때문에 경제가 잘 안되는 것처럼 주장하는데, 아주 웃기는 놈들이다. 전경련과 재벌 저희들이 먼저 나쁜 짓만 안하면 된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받아 적기만 하면 훌륭한 경제 강의가 된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 인터뷰 이어집니다 --> [신학림이 만난 사람 ③] 김종인 전 국회의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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