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환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중반대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최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둘러싸고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이 정면 충돌한 것과 관련 "국정원 댓글 의혹 수사 파동과 관련해서 국감에서 보인 검찰의 행태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케 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들 어느 누가 이를 받아들이겠느냐"고 말했다. (뉴스1)

국정원이 ‘오늘의 유머’에 댓글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들이 그 사이트에서만 활동했다고 믿은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모든 종류의 포털사이트와 주요 게시판,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 SNS 등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추정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국정원과 새누리당 측은 그간 이러한 추정을 부인해왔다.

윤석열 검사 폭로의 핵심은 이 합리적 추정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삭제하여도 구RT는 남는 트위터의 특성 때문에 여기서 덜미를 잡혔을 뿐 이 역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단 추정이 너무나도 합리적이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대로, 이러한 활동이 대선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을 수 있다. 드러난 바만 가지고 합리적으로 추정해보자면 이들은 대선 때에만 활동한 것도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어쩌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인터넷 여론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있었다. 선거개입이란 용어보다는 국정원이 적극적으로 여론을 왜곡해 왔다는 것이 사태의 본질에 가까운 서술일수도 있다.
주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년층 이상의 유권자들은 이러한 사태가 왜 심각한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증언이 많다. 그들은 대체로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고, 더더구나 트위터의 생리는 알지도 못한다. 댓글을 몇 개 다는 것이 어떻게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트위터 RT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인터넷을 하지 않는 자신들을 괄시하여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는데, 이제야 인터넷 여론왜곡 때문에 자신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고 주장하니 또 한 번 괘씸할 뿐이다. 대단히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국정원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마음을 인터넷 속에서 ‘대의’해왔는지도 모른다. 그게 국정원의 본 역할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은 한국 사회 보수정권의 미디어 전략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해할 때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다. 냉소적으로 말해 그들이 인터넷 게시물에서 드러나는 마음을 한국 사회 일반에 더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 왔다고 평해보자. 청년세대의 마음이 과잉대의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부모세대의 마음을 대의했다고 평해보자.
그렇다면, 공영방송에 대한 그들의 행태는 무엇이었나? 해직자를 양산하면서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뉴스채널을 장악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시사보도 및 비평 기능 자체를 약화시켜 보수정권에 불리한 보도는 일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문시장에서의 유리한 입지를 고수했고, 보수적 언론사들에게 종편 채널이란 선물을 안겼다.
방송과 신문을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불리한 인터넷 공간에선 필사적으로 ‘균형’(?)을 추구했다는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유리한 공간은 철저하게 편향적으로 만들고, 불리한 공간은 필사적으로 균형을 추구했다는 것이 그들의 미디어 전략의 핵심이다. 게다가 그 여론왜곡의 수단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무조건 종북으로 몰고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반인권적 혐오범죄가 동원되었다. 보수정권의 미디어 전략 자체가 여론왜곡과 혐오범죄를 전제로 깔고 있다는 것이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사수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집권이 오래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여론왜곡은 통치자에게 유리하기만 할까? 사실 여론왜곡은 양날의 검이다. 일제강점기 초기 조선인들은 신문을 만들 수 없었고 일본인들이 만드는 신문은 태평성대를 노래했다. 실제로 일본인 통치자들은 조선인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경찰들은 매일 기생집을 드나들며 술을 마셨다. 그들은 3.1운동이 일어나기 전날에도 상황을 몰랐다.
3.1운동이 일어나고 나서야, 그들은 민심의 동향을 어느 정도는 체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오늘날 보수정권의 여론왜곡의 진지가 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창간을 허용했다. 특히 민족주의자들이 많았던 <동아일보>는 조선인의 불만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두 언론사가 일제강점기 말기에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벌인 것은 사실이나, 일본인들이 만든 신문에 비해서는 당대 민중의 열망을 어느 정도 대변했던 점도 없잖아 있었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조선 총독부의 통치에서도 여론왜곡은 양날의 검이었다.
현대 한국 사회는 어찌됐든 민주주의 체제고 박근혜 정부는 5년 단임이란 한계를 벗어던질 수 없다. 과반에 달하는 지지율을 믿고 나머지 여론은 왜곡하면 된다고 여기겠지만, 여론왜곡이 지속되면 통치세력 스스로도 국민들이 어느 지점에서 불만을 가지는지도 깨달을 수 없다.
결국 새누리당의 국정원 옹호는 스스로를 정국에 어두운 까막눈으로 만드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임기 초부터 야당과 이처럼 극한의 파행을 겪는 정부가 하려는 바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야당의 무능만을 믿고 가기에는, 새누리당은 너무나 위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저 권력을 획득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새누리당 역시 박근혜 대통령 이후엔 독재정권에 향수를 느끼는 대중을 규합할 제대로 된 상징도 없다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예쁨 받고 의원 한 번 더 해보겠다고 이런 일을 벌인다면 새누리당을 정치세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리한 국면으로 보일지라도 빚은 차근차근 적립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여론왜곡을 기본전략으로 삼는 정치전술을 일점일획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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