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 문제에 관한 한 <조선일보>의 태도는 필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전 직원(이 문맥에선 ‘기자’라는 표현보다 이 말이 더 어울린다)이 나서서 회사측을 보위하려는 의지가 느껴저 섬뜩할 정도다. 이번엔 김윤덕 여론독자부 차장이 나섰다.
김윤덕 차장은 <[김윤덕의 트렌드 돋보기] 조성민은 때리고, 채동욱은 감싸고>란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조성민에 대해선 친권박탈운동을 하고 채동욱 사건에 관해선 <조선일보>를 검찰에 고발한 것은 모순적이며 여성보다는 정치적 이념을 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 9월 26일 <조선일보>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 초·중등교육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고 한다.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말하자. 기자는 당시 상황에서 조성민에 대한 친권박탈운동이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비판받을 소지도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한국의 주류 여성단체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일관되게 견지하지 못하고 다소 민주당 측에 구부러진 잣대를 들이미는 일도 있을 수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비판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 8일자 조선일보 31면자 기사
그러나 그렇더라도 조성민과 채동욱은 상황이 너무 달라도 다르다. 굳이 ‘외도’를 매개로 필사적으로 두 사건을 엮어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고발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되어 글쓰기의 가치를 너무 우습게 여기는 처사다. 물론 기자는 ‘대(大) <조선일보>’의 월급을 받아보지는 않았다(연봉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조선일보>의 국한문 혼용을 한 번 따라해 보았다).
채동욱 사건 당시 기자는 스포츠지 기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증언은 간단했다. “심지어 이 바닥에도 룰이 있다. 당사자들이 문제삼지 않으면 ‘설’만으론 보도하지 않는다. 기자회견을 하거나 소송을 해야 보도를 한다. ‘설’에 대해 선수가 기자회견으로 해명하겠다고 했을 때 기자들이 어차피 안 쓸 거니까 그러지 말라고 만류한 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그들조차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조성민의 외도는 최진실의 소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03년 11월에 조성민과 내연녀에게 4억짜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반면 채동욱의 사생활은 오로지 검증되지 않은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나왔다. 또한 외도 문제는 친권박탈운동의 유일한 논거가 아니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의 재산을 노리고 있다거나 아빠 역할을 못할 거라는 종류의 의구심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 의구심이 그릇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채동욱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나. 또한 채동욱 사건의 핵심은 검찰의 업무수행과 혼외자녀 문제는 관련이 없단 것이었는데, 이런 논점은 조성민 사건에선 존재하지도 않았다.
“27일 법무부가 ‘(감찰 결과) 채 총장이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는데도 이들이 검찰총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라는 서술에선 ‘밥벌이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법무부는 감찰 결과 “사실로 인정할만한 정황이 다수 확보” 되었다고 했을 뿐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유전자감식 이전엔 모든 게 정황증거일 뿐이고 우리는 임씨 여인에게 유전자감식을 강요할 권리도 없다.
당사자가 직접 밝힌 온 세상이 다 알게 된 ‘외도’와 자신들이 몸소 증거도 없이 밝힌 ‘외도’가 글자만 갔다고 엮을 수 있는 <조선일보> 사 직원 김윤덕 씨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는 못 쓸 거야...’라고 느낀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닐 줄로 안다. 그것도 분명히 재주는 재주 아니겠는가.
그런데, 박정훈 조선일보 디지털담당 부국장이 ‘채동욱은 때리고, 이만의는 감싸고’ 한 이유는 안 궁금하실까? 이쪽이 훨씬 더 아귀가 맞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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