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가 끝나자마자 화면에 비춰진 것은 그 열기가 화면 밖에서도 느껴지는 화염에 휩싸인 화재 현장이다. 그 화재 현장을 향해 이원종, 조동혁, 박기웅, 전혜빈, 최우식 등 익숙한 얼굴들이 방화복을 입고 나타난다. 방독면을 쓰고 소방 호수를 들고 불타는 건물을 향해 달려 들어간다. 그런 그들의 모습 아래 자막엔 이렇게 써 있다.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도대체 왜 예능에서 신의 도움이 필요한 걸까?

일찍이 <맨발의 친구들>에서 단 몇 주의 연습 만에 은혁, 김현중, 유이 같은 친구들을 10m 높이의 다이빙대로 내몰았을 때 그 위험성은 예견되었었다. '다이빙'이란 운동이 그저 물로 뛰어들기만 하면 장땡인 단순한 운동이 아니란 것은 그들이 높이를 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아득한 땅과의 거리감, 잘못된 폼으로 떨어질 때 나는 무시무시한 물과의 마찰음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그런 무모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맨발의 친구들>의 다이빙 미션은 무사히 끝났다. 말 그대로 '신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신의 가호'라는 걸 깨닫지 못한 예능계의 제작진은 아예 본격적으로 다이빙 쇼를 기획하고 선보이기에 이르른다. MBC의 <스타 다이빙 쇼 스플래시>.

하지만, '신의 가호'는 <맨발의 친구들>에게 주어진 단 한 번 만이었나 보다. <스플래쉬> 촬영 중 이봉원은 얼굴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봉원만이 아니다. 아이비, 클라라, 샘 해밍턴 등 다른 출연자들도 입원할 정도가 아니었을 뿐이지 크고 작은 부상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이봉원의 부상을 그저 별 것 아닌 타박상으로 덮으려던 <스플래쉬>에게 돌아간 것은 '종영' 결정이다.

<맨발의 친구들> '다이빙 편'과 <스플래쉬> 그리고 파일럿으로 방영된 <심장이 뛴다>는 리얼리티 예능이란 점 그리고 연예인들이 자신의 직업과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을 찾는다면 '신의 가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인간이 '신'을 찾게 될 때는 어떤 때일까? 자신의 능력 밖의 일에 운명적으로 몰리게 될 때가 아닐까? 자신의 힘으로 해내기엔 버거운 어떤 장벽에 부딪쳤을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심장이 뛴다> 첫 회. 소방관이란 직업의 팍팍한 노동 조건과 고된 일상,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을 보람을 느끼게도 되지만, 그것에 앞서 지배하게 되는 정서는 119로 상징되는 위급 상황에서 훈련이라기엔 미흡해 보이는 아주 짧은 시간 교육을 받은 연예인들을 보는 위태로움이다.

아마도 <심장이 뛴다>의 기획 아이디어의 모태가 된 것은 <진짜 사나이>였을 것이다. 연예인들의 군부대 체험이 인기를 끌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한 체험 과제를 들고 나서 보자’, 뭐 이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진짜 사나이>와 <심장이 뛴다>나 다 같은 체험 리얼리티 예능인데, 보는 사람이 느끼는 정서는 왜 이렇게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걸까?

군대는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와야 하는 의무적인 과정이다. 평범한 성인 남자가 고된 훈련을 거쳐 말 그대로 진짜 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우선 8주간의 훈련소 기간이 있는 것이고, 각 부대에서도 이른바 '짬밥'이라고 계급이 있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의 멤버들이 군대에서 하는 일 대부분은 진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내가 다녀왔고, 나의 아들이 지금 하고 있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이다. 하지만 김수로의 어깨 부상처럼 거기서도 이미 사고는 있었다.

심지어 훈련만 하다가도 사고를 당하는데 소방관은 다르다. 그들은 고도로 훈련된 전문인이다. 연예인들이 잠깐 가서 방화복을 제 시간에 맞춰 입는 훈련을 하고, 소방호스 잘 굴리고 맞추는 훈련을 하고서 현장에 투입되는 그런 무모한 시도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극한의 강도를 지닌 직업이다.

게다가 소방관이 하는 일은 그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119 구급 전화로 오는 모든 급박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자해한 사람을 구조해야 하고, 방치하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지도 모르는 동네 말벌통을 없애야 한다.

<심장이 뛴다>는 최우식처럼 바늘이나 피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트라우마가 있는 연예인을 환자를 구하는 현장출동 과정으로 내몰았다. 최우식이 그나마 견뎠으니 망정이지, 혹시나 그 현장에서 피를 보고 쓰러졌다면 어떡할 뻔 했나? 실제로 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피만 봐도 졸도하기도 한다. 그것도 리얼리티라고 찍어서 내보냈을까?

차라리 <진짜 사나이>를 흉내 내고 싶었다면, 소방학교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파일럿'이라는, 짧은 시간에 시선을 확 사로잡을 그 무언가를 내보여야 할 조건은 제작진으로 하여금, 소방관이란 직종의 전문성, 극한성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

잊을 만하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이, 소방관들의 순직이나 사고이다. 오랜 훈련, 고된 현장에서 단련된 소방관들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절체절명의 현장 상황인데, 거기에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연예인들을 들이미는 것은 몇 주 되지 않은 훈련 과정만으로 10m 높이의 다이빙대로 내모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2주간의 파일럿이 제작된 것을 보니 다행히도 사고는 없었던 듯한데 이것이야 말로 진짜 '신'이 도와준 게 아니었을까.

일찍이 <1박2일>로 리얼리티 예능이 꽃을 피우면서 출연자에 대한 가학성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먹을 거 안주고, 찬 데서 재우고, 겨울날 옷 벗기는 <1박2일>의 가학성 정도는 애교에 속했다. <꽃보다 할배>를 대중적 이슈로 만들어준 오프닝의 이서진 속이기 해프닝은 이서진이 넘어갔으니 망정이지, 걸그룹과 여행을 가겠다고 하고 할배들을 떠억 하니 들이미는 것은 따지고 보면 거의 '사기'에 가까운 술수였다.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논란도 되지 않고 온 국민이 그걸 보고 웃고 넘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다음 타자들은 더 독하게, 더 세게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훈련되지 않는 이들을 다짜고짜 높은 다이빙대 위에, 불꽃이 넘실되는 현장으로 내몰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서진이 낮은 시청률로 종영한 MBC의 <계백> 이후 선뜻 후속작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가, <꽃보다 할배> 이후 여러 작품의 주인공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 것 역시 연예인들이 무모한 도전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힘들게 오랜 시간 들여 캐릭터를 분석하고 밤 잠을 못자고 연기를 하는 것보다, 예능에 나와서 사람들을 한번 웃게 만든 것이 다음 캐스팅에 더한 영향력을 행사하니 어찌 이 고난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체험, 삶의 현장>의 생존의 키가 된 것은 바로 열대지역으로 체험을 다녀온 배우의 죽음이었다. 물론 이봉원 개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정도에서 위험한 다이빙 쇼를 끝낸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심장이 뛴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운 좋게 파일럿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방관의 현장을 뛰는 연예인들의 리얼리티는 위험성이 너무 높다. 만약에 정규 편성이 된다면 이에 대한 제고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

무엇보다 이전에 했던 프로그램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저 한 발 더 나아간 무모한 시도를 신선한 기획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어설픈 시도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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