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렇게 정의내리고 글을 시작해 볼까?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시리즈 -연우의 여름(이하 연우의 여름)>은 시청률이 잘 나올 드라마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참 스토리는 뻔하다싶기에.

인디 밴드의 보컬로 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딸 연우(한예리). 다친 엄마를 대신해 어쩔 수 없이 빌딩 청소 일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초등학교 동창생 지완(임세미)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대신해 소개팅을 나가는데 거기서 만난 남자가 괜찮다. 그래서 딱 잘라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엄마 대신 하는 빌딩 청소부라는 설정은 희귀하지만, 친구의 남자를 대신 만나 사랑을 싹틔우는 설정은 어디선가 흔히 마주치던 드라마의 소재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연우의 여름>을 진부하다고 눙쳐버리면 몹시도 섭섭하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몇 줄의 글로 정리되는 스토리 라인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매력은 우리가 차에서 내려 애써 골목길을 걸으며 좋다고 하는 '공감의 정서'가 필요한 것이기에, 누구나 다 좋아할 드라마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드라마 스페셜>이란 영역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신선한 태도,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러니 제발, 이 시간만큼은 시청률의 잣대로 드라마들을 묶어 놓지 않기를 바란다.

마치 수능 국어시험 문제처럼 답을 낸다면 <연우의 여름>이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연우의 청춘일 것이다. 그 청춘은 인디밴드의 보컬이라는 사회적 존재임에도 엄마를 대신해 빌딩 청소부로 나갈 수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능력이 없어 엄마에게 빌붙어 사는 존재로 보일 수 있는 애매하고 나른한 존재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그런 연우의 처지를 구구절절 스토리로 설명하는 대신 2013년 서울의 여름을 비춰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청소부 연우가 빌딩 난간에 기대어 보는 막막한 하늘, 연우를 제외하고는 싱그러운 여름의 활기 속에 놓여있는 사람들. 윤환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연우의 마음은 한강 다리 너머로 보이는 흑백의 톤 같은 하늘과 풍경이 대신한다.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수능국어 문제 같은 제목보다 더 은유의 효과를 내보이고 있는 건 드라마가 담고 있는 풍경들이다. 집이 어디냐며 데려다 주겠다고 연우를 친구 지완의 집 앞에 내려주고 떠나는 윤환(한주완 분)의 차 뒤로 이어지는 건, 차 한대도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연우네 집 앞 골목이다.

이 심오한 풍경의 문제를 애써 풀어내는 여유가 리모컨 조급증에 시달리는 요즘 사람들에게 있을까 저어되면서도, 한편 그 시험에 든 사람들은 조금 더 보태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심전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 <8월의 크리스마스>다. 80년대라는 뜨거운 공간에서 사랑과 죽음을 논하면서, 감독은 카메라를 전주의 오래된 거리로 끌고 들어갔다. 그것처럼 <연우의 여름>은 2013년 대한민국의 청춘을 논하면서, '연우 수리점'이란 간판이 무색한 낡은 연우의 집과 조촐한 바 '아르투르 도밍고'를 비춘다.

그래서 연우의 삶은, 엄마의 청소 일을 대신해야 하는 비정규직 젊은이라는 딱딱한 틀을 넘어 2013년의 조금 다른 세계관을 지닌 젊은이로 다시 탄생한다. 아직 발에 매니큐어도 발라보지 못한, 멋들어진 레스토랑이 아니라 한강 둔치의 바람에 몸을 맡길 줄 아는, 아빠에게 물려받은 솜씨로 낡은 라디오를 고쳐낼 줄 아는, 이 시대의 청춘의 속도와는 조금 다른 연우가 탄생한다. 덕분에 뻔하게 드라마틱한, 친구를 대신한 그녀의 처지조차도 조금은 다른 빛깔로 다가와 연우처럼 느리게 사는 삶을 선택한 청춘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편 많이 나오지 않아도 캐릭터가 다 보이는 엄마 김혜옥과 청소부 아줌마 황정민은 물론 친구 세미도, 남자 친구 윤환도 진짜 요즘 직장인들 같아 보여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우의 여름>을 연우답게 만든 것은 배우 한예리 때문이다. 못난이 삼형제의 그 누군가를 닮은 것 같은 익숙함이, 드라마가 흐르면서 한없이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만으로도 연우가 다 설명될 것 같은, 드라마가 있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다.

좋은 배우들의 뒷받침 위에서 독무를 추듯 인디 밴드의 느린 삶을 살아가다, 뜻하지 않게 빠른 2013 대한민국에 걸려 넘어진 연우를 말갛게 그려낸 한예리의 연기는 진짜 연우 같았다. 그림 좋은 수채화 전시회를 보고 나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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