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월요일 밤 지상파와 케이블의 토크쇼, SBS의 <힐링캠프>와 tvN의 <현장토크쇼 TAXI>는 새로운 MC가 들어와 시범 운행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본인에게야 프로그램에 적응하기 위한 시범 운행이지, 냉혹하게 반토막도 못 되는 <힐링캠프>의 시청률을 보면 시청자와 새 MC 사이에 밀월기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우선 <힐링캠프>의 성유리를 보자.

한혜진의 결혼으로 공석이 된 자리, 시청자들이 힐링녀의 조건을 생각했을 때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예뻐야 한다' 아니었을까? 고등학생 아들 녀석의 말 대로, 다른 프로그램을 보는 친구들이 채널을 돌리다가 한혜진이 나오면 예뻐서 잠시라도 멈춰 지켜보았다는 씁쓸한 리뷰처럼. 그렇게 한혜진은 능수능란한 이경규와, 말이라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김제동이란 조합의 칙칙함을 개선시키기 위한 '꽃'으로 <힐링캠프>에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혜진은 그저 꽃으로 자리매김 된 자신의 위치를 뛰어넘어 ‘돌직구’ 한혜진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이경규도 말하기 난처한 질문까지 해내면서 당당하게 <힐링캠프>의 안방마님의 자리에 등극했다. 대신 예능 프로그램의 감을 놓친 김제동으로 하여금 그 예전 한혜진이 하던 꽃의 역할을 하게 만들고.

그렇다면 한혜진이 그저 '꽃'에서 '안방마님'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핵심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꽃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혜진이 처음부터 돌직구를 날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혜진은 아주 오래도록 잘 들어주는 꽃이었다. 그런데, 그 잘 들어주는 꽃만 봐도 '힐링'이 되는 느낌을 주는 묘한 꽃이었다. 잘 들어주다 보니 그녀의 돌직구가 생뚱맞지 않게 정곡을 찌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담을 받으려 가면 항상 제일 먼저 듣는 이야기가 뭘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그 다음, ‘당신의 고민을 이야기 해보세요’ 한다. <힐링캠프>가 힐링캠프인 이유는 이전에 인기를 끌던 <무르팍 도사>처럼 다그치지 않고, 게스트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픈 말을 맘껏 하게 만들었던 데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속 이야기까지.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이 바로, 그 큰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열심히 출연자를 바라보는 한혜진의 들어주기였다. 이경규의 날카로운 질문, 한혜진의 돌직구는 어찌 보면 윤활유와 같은 것들일 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유리는 아마도 <힐링캠프> 초창기의 한혜진이 아니라 최근 <힐링캠프>의 한혜진을 모니터링 하고 나온 듯하다. 어서 빨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지 못해, '돌직구'보다 더 멋진 멘트 날리지 못해 안달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박인비의 약혼자를 친오빠로 착각해 자신에게 소개시켜 달라는 결례를 범하게도 되는 것이다. 아마도 한혜진이었다면 어땠을까? 오빠 이야기가 나오면, 오빠가 있어요? 라고 우선 물어보지 않았을까?

돌직구는커녕 성유리에게는 벌써 3회 만에 '맹유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맹랑하다도 아니고, 맹하다니. 이건 결국 분위기 파악 못하고, 눈치도 없다는 말을 돌려말한 것이 아닌가. 성유리는 섣부른 돌직구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의 말을 진심으로 열심히 들어주는 연습부터 해야 할 듯싶다. 수지의 자리를 탐내는 성유리는 빈말이 아니라 여전히 프로그램의 요정 같으니까.

그런데 요정 같은 여자 MC가 행세하는 프로그램치고 수명이 길지 않았으니 어쩐다? 더구나 상황도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무르팍 도사>까지 사라짐으로써 <힐링캠프>가 독보적으로 남았지만, 동시에 1인 게스트 토크쇼가 한 물 갔다는 부담도 지게 되었다. 힐링의 유행이 지나가듯 <힐링캠프>도 그저 지나가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tvN의 <현장토크쇼 TAXI>의 홍은희는 어떨까?

이미 <세바퀴>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MC를 봐온 경험이 있는 홍은희에게 <현장 토크쇼TAXI>가 많은 적응이 필요한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미 이영자를 통해, 여성 MC가 보조적 위치를 넘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선례를 남겼기에, 홍은희에겐 자신의 기량을 펼칠 더할 나위없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김구라의 경우 예쁜 척하지 않는, 특히나 털털한 아줌마와의 호흡이 좋은 편이기에 김구라-홍은희의 조합은 몇 회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꽤 오래 한 듯한 익숙함까지 줄 정도로 잘 맞아 보인다. 심지어 아줌마 아저씨의 너스레가 게스트의 멘트를 가끔 잡아먹을 정도로.

하지만 정작 홍은희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택시라는 특정한 공간이다. 게스트와의 토크에는 익숙하지만 운전하면서 MC를 보는 데 익숙하지 않은 홍은희는, 혹시 택시를 다른 차가 끌어주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종종 운전대를 놓거나 화려한 의상을 드러내기 위해 안전띠를 보이지 않게 해놓아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전띠를 하지 않았나라는 불안감에 떨게 만들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 역시 홍은희의 조바심이거나 어긋난 모니터링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의 <현장토크쇼 TAXI>의 진행 방식을 보면, 한 사람의 MC가 운전을 해야 하는 특수한 조건이기에 토크의 주도권을 그때는 운전을 하지 않는 다른 MC가 가져가고, 운전을 하는 MC는 주로 리액션을 해주는 식의 편의를 도모했었다. 그런데 홍은희는 의욕이 넘쳐 토크도 주도적으로 해야겠고, 운전도 해야겠고 하다 보니 위험한 운전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또 하나, 지금까지 대부분 MC들은 택시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토크쇼를 진행해야 하기에, 그 공간에 맞는 의상을 선보였다. 이영자가 멋진 옷이 없어서 맨날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것이 아니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MC가 화려하게 옷을 입으면, 그나마 뒷자리에 앉은 게스트가 더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걸 배려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홍은희의 의상은 마치 그녀가 게스트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걸 돋보이려고 안전띠를 규정에 맞지 않게 미뤄내야 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다.

아이가 서서 걷기 위해서는 배를 깔고 기어가고, 무릎을 세워 기어가는 단계별 과정이 필요하다. 의욕만으로 능숙한 MC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 기본에 천착할 때, 어쩌면 가장 제대로인 MC의 본령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성유리, 홍은희에게 지금 필요한 건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게 적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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