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시 아직 팬들과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것으로 인해 겪게 될 상황들에 대해 감내할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못했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소속사 모두 모르셨던 일이라 제 입장에서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는 10일 배우 이병헌 씨와 결혼하는 이민정 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열애 부인했던 이유’이다. 이들은 현재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그동안 3번의 열애설이 났을 때마다 “밥을 같이 먹은 건 사실이지만…”이라며 ‘부인’했었던 대표 커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이들의 거짓말을 문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의 거짓말로 인해 방송사들은 제재를 받을 수도 있게 돼, 안타까울 따름이다.

▲ 지난해 4월 SBS 한밤의TV 연예는 이병헌-이민정 열애설을 방송했다. 당시 이병헌 이 소속된 기획사 관계자, 이민정 소속 기획사 모두 열애설을 부정했다. (관련화면 캡처)

안철수 <무릎팍도사>와 이병헌 열애설 부인의 공통점과 차이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권혁부)는 7일 4년 전 방영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이하 무릎팍도사) ‘안철수 출연 편’에 대해 심의를 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는 변희재 씨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이하 인미협)가 “MBC가 안철수의 ‘거짓말’을 그대로 방영했다”고 MBC를 제재해달라는 민원이었다. 그리고 이날 방통심의위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에 입장을 같이 했다.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안철수 의원이 명백히 거짓말을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연예오락프로그램에 ‘객관성’ 위반 적용은 신중해야한다. 이번에 제재하면 앞으로 연예인들이 버라이어티에 나와 성형수술을 몇 번 했는지까지 진실을 다 잡아내 심의를 해야 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심의에 대한 부적절성을 지적했지만 다수의견에서 밀렸다.

이날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MBC 측의 ‘유의미한’ 해명과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금성교과서에 실린 안철수 의원이 그들 주장대로라면 ‘신격화’된 만평을 수정·삭제하려는 의지가 더 커보였다. (▷관련기사 : MBC ‘무릎팍도사’ 안철수 편, 제재받을 가능성 높아)

MBC <무릎팍도사> ‘안철수 출연 편’은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 회부됐지만 위원회 구성 자체가 정부여당추천 대 야당추천이 6대 3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병헌·이민정 씨가 열애설을 부인했던 당시 그들의 ‘거짓말’을 그대로 방영한 방송사(대체적으로 연예정보프로그램)들이 제재를 받게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은, 이날 정부여당추천 심의위원들이 MBC <무릎팍도사>에 대해 “제재를 해야 한다”는 논리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로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방송했다’는 부분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이병헌·이민정 씨가 열애설이 났던 당시 부인했던 것은 명백한 ‘거짓말’에 해당되지만 앞서도 지적했듯 안철수 의원이 MBC <무릎팍도사>에서 한 발언들은 거짓말인지 아닌지 명백하지 않다는 점이다.

▲ 2009년 6월 17일 방영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안철수 출연 편 캡처

방송사 제작진에 점쟁이가 되라는 심의위원들

안철수 '무릎팍도사'를 제재하려는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발언 가운데는 ‘출연자가 앞으로 정치에 입문할 것인지 아닌지 방송사는 미리 예측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안철수 의원이 정치에 입문을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안되는 게 아니냐”는 야당 추천 심의위원의 비판에 , 엄광석 심의위원은 “맞다. 정치에 입문을 안했다면 문제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 입문했다”면서 “이 방송이 영향을 줘서 교과서까지 잘못 실렸다면 그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엄 심의위원은 “(방송 프로그램이) 특정한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는데 작용했다. 안철수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올라오기까지 방송이 영향을 미쳤다면 그 방송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박성희 심의위원 역시 “안철수 의원이 MBC <무릎팍도사> 출연 이후 상황을 봤을 때, 행정제재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버라이어티에 누군가를 출연시킬 때 방송사는 그가 미래에 ‘정치계로 입문할지 안할지’, ‘해당 방송이 큰 영향을 줄지 아닐지’ 미리미리 예측해 제작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이 같은 주장은 역으로 풀이하면 방송사로 하여금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사회에 영향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 방송사 제작진들은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와 같이 미래를 보는 예언자를 고용해야 할 곁에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억’을 심의하는 심의위

MBC <무릎팍도사> ‘안철수 출연 편’에 대한 제재가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억’의 영역에 대한 심의라는 점이다.

MBC <무릎팍도사>를 비롯한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의 발언은 모두 당사자의 ‘기억’의 영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일 방송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자신의 유년기의 특정한 사건을 A라고 기억해 그렇게 발언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후, 그의 부모는 B가 맞다고 이야기한다면 방통심의위는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방송을 했다’고 제재할 것인가. 그런 개인들의 기억의 영역을 심의한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다.

버라이어티에 나오는 출연자들의 모든 발언들을 방송사가 검증해야할 책임이 생긴다는 점도 문제다.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눈과 코만 성형했다’고 발언할 것이라는 사실을 제작진이 알았다면, 병원에 가서 진단서라도 끊어와 그것을 증명하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나중에 눈과 코만이 아니라 턱도 수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제재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가 MBC <무릎팍도사>에 대해 제재를 할 거라면 형평성 차원에서 이병헌·이민정 커플의 ‘거짓말’을 그대로 방송한 모든 언론매체에 대해서도 ‘객관성’ 위반으로 제재해야 마땅하다. 물론 방통심의위가 이 시점에서 ‘제재’를 선택한다면 문제는 그 후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 누군가는 유승준 씨가 병역사건 이전에 “군대는 꼭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각종 예능 프로그램 목록이라도 뽑아서 방통심의위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 예능 프로그램들은 유승준 씨가 병역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할 것이란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제재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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