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차에서 불법파견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3년이 흘렀으나,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 최병승씨는 지난해 10월 17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 올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현재까지도 철탑농성을 이어오고 있으나, 되레 회사측은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채용'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차 사측이 법원 판결을 농락해도 이를 제재하는 움직임은 없다. '불법'이 해소되지 않는 사이, 지난 4월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 노동자가 계약해지 석달만에 목숨을 끊었으며, 지난 15일에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인 아산사내하청지회의 박모 사무장이 "이 비겁한 세상에 저 또한 비겁자로서 이렇게 먼저 세상을 떠나려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민주노총 충남본부에서는 "현대차 정몽구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는 성명이 나왔다.

▲ 21일 오전 8시 50분경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박석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3차 희망버스가 20~21일 울산을 찾은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희망버스는 정몽구 회장과의 대화를 직접 시도해 △신규채용 중단 △불법파견 인정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른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할 예정이었으나 '몽구산성'이 막아서면서 극심한 충돌이 발생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희망버스 참가자 중 11명이 공장진입 시도 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갔으며 7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현대차 측은 "폭력행위를 주도한 인원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물을 방침"이다. 현대차 사측에 취재를 요청하던 한겨레 허재현 기자가 사측 직원에게 소화기와 물대포를 맞는 일도 벌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대다수 언론들이 주목한 것은 희망버스를 출발시킨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이유'가 아닌 현장에서 발생한 '폭력'이었다. 아예 제목을 '폭력버스' 혹은 '폭력으로 얼룩진 희망버스'라고 뽑거나, 아니면 '충돌'로 표현을 순화시키더라도 투쟁의 원인을 조명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폭력으로 얼룩진 '희망버스', 현대차 노사충돌 100여명 부상>(세계일보)
<폭력으로 얼룩진 현대차 희망버스> <희망버스 행사장에 등장한 죽봉>(뉴스1)
<'폭력으로 얼룩' 현대차 희망버스 해산>(연합뉴스)
<희망 없고 폭력만...'희망버스' 현대차 집회 부상자 속출>(국민일보)
<죽봉에 쇠파이프까지 또 다시 시동 건 '폭력버스'>(데일리안)

방송3사 메인뉴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21일 방송3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희망버스' 집회가 현대차 앞에서의 1박2일 집회를 마치고 오늘 해산했는데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KBS) "시위 참가자들이 어젯밤 무단으로 현대차 공장 진입을 시도하면서 폭력사태로 얼룩지고 말았다"(MBC) "어젯밤 집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SBS)며 '폭력'에 방점을 찍었다.

▲ 21일 방송3사 메인뉴스의 희망버스 보도 캡처(왼쪽부터 KBS, MBC, SBS)

이에 대해 이창근 희망버스 기획단 대변인은 21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싸움의 전후 맥락은 전부 생략되고 '폭력'만 부각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철탑농성이 278일째 이어지고 있다고만 간략하게 언급할 뿐, (문제의 본질인) 대법원 판결을 정몽구 회장이 왜 3년째 이행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명하지 않는다"며 "언론이라면 폭력, 마찰, 충돌만 보도할 게 아니라 전후 맥락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그로 인해 발생됐던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뤄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창근 대변인은 "대부분의 언론은 왜 그 많은 시민들이 희망버스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은 채 기사를 쓰고 있다. 과연 현장에 와보기는 했는지 궁금하다"며 "주말 오후다 보니, 통신사인 연합뉴스/뉴스1 등의 기사를 참고해서 편하게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허재현 한겨레 기자 역시 21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언론들이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본질은 보지 못하고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처가 왜 아물지 못하고 곪아터지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며 "싸움의 맥락과 이유가 있는 것인데 '폭력시위'만 부각한다면 기자로서 너무 편하게 기사쓰는 것 아닌가. 언론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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