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현재는 삼성 측이 “협력업체 노조일 뿐”이라 폄하하고 있지만 법원이 이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삼성 측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면 삼성 내부에서 강력한 교섭권한을 가지게 되는 노조가 된다. 대체로 언론들은 삼성그룹의 ‘무노조 신화’ 혹은 ‘무노조 경영’이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무노조 신화’ 내지는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제대로 된 현실을 담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 측은 오랜 세월 동안 사원들의 만족도를 높여 노동조합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해왔다고 자신들의 ‘무노조 신화’를 설명해왔다.

▲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 협력노조 창립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손을 치켜들고 있다. (뉴스1)

하지만 현실로 드러난 바는 누군가가 말했듯 ‘전투적 노무관리를 통한 경영진의 노조불허 방침’ 정도가 적절하다. 현재 노동청을 거쳐 검찰에서 조사 중인 이마트의 불법 행위들은 노조 관련자 및 직원 사찰, 상시 해고 프로그램 운영, 직원 여론 관리, 담당 분야 공무원 관리, 하청업체 경영 직접개입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법행위들은 사측에서 작성한 문건을 통해 드러났는데, 삼성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당사자들은 신세계그룹 측의 노무관리가 ‘삼성가’ 사람들이 경영하는 기업의 노무관리와 매우 흡사하거나 이를 다소 조악하게 모방하는 수준인 듯 하다고 평했다. 신세계그룹의 최대주주이자 회장은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막내 딸인 이명희 씨이며 널리 알려진 정용진 부회장은 이명희 씨의 아들로 이병철 전 회장의 외손주가 된다. 신세계그룹은 1990년대 초반에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됐다.

또 삼성그룹이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주어 ‘무노조’ 상황을 유도했다는 식의 이해도 이번에 창립 총회를 한 불법파견 서비스 노동자들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사망자가 다수 발생해도 산업재해로 인정 받을 길이 막막한 공장 노동자들에게도 역시 그렇다. 삼성이 운영하는 공장의 환경이 언제나 그 수준일 거라고 주장하는 것도 공정한 일은 아니겠으나 회사 내부에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해도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노동조합의 결성을 결단코 거부했던 것이 그들이다. 삼성은 여러 차례의 노동조합 설립시도를 어용노조를 만들면서까지 저지해왔다. ‘안에서 새던 바가지’를 ‘밖’에서도 새게 하려던 그들의 시도는 노동조합이 당연한 권리인 서구권에선 웃음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 이번 노동조합 창설을 계기로 삼성그룹의 경영방침을 바꿀 것을 촉구하는 15일자 한겨레 사설. 하지만 삼성의 경영방침에 지극히 비판적인 진보언론도 그들의 '무노조'란 말은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름은 한 사물이나 사태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하지만 종종 그것을 숨기기 위한 명명들도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해온 ‘노동유연화’나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를 ‘전략적 유연성’이라 표현한 사례 등은 ‘유연함’이라는 단어의 긍정적 이미지에 자신들의 정치적 편견을 담아낸 명명이다. 그 정치적 편견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이러한 명명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호들갑스럽게 ‘신화’로 포장되든 다소 중립적인 척 ‘경영’이란 말을 뒤에 붙이든 ‘무노조’란 말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신화라면 이미 그 이면에 있는 추악한 진실들이 모두 드러난 빛바랜 거짓 전승에 불과하다. 또 그것을 경영이라 보기엔 경영의 영역을 넘어선 불법행위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어용노조를 통해 실질적인 노조를 불허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등 사실 ‘무노조’란 표현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성 측의 경영방침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 측에서부터 ‘무노조 신화’이니 ‘무노조 경영’이니 하는 말을 피해보면 어떨까. 그들의 주장을 소개할 때에만 그런 말을 사용하고, 상황 자체를 설명할 때엔 ‘무노조’가 아닌 ‘경영진의 노조불허 방침’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서술하자면 오마이뉴스의 이마트 특집 기사가 말했듯 헌법을 초월하는 불법적이고 전투적인 노무관리가 동원된 노조불허 방침이다. 삼성그룹의 경영방침에 대한 성찰적 비평은 요즘 현대인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는 ‘공자님’ 말씀처럼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명’(正名)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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