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에 정치사가(政治史家)들이 역대 대통령들을 평가하면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과 노무현 이후의 대통령으로 분류할 지도 모른다. 이 때 기준은 무엇이 될까? 기자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행세했느냐' 여부가 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모두 7명이다. 그 중에서 윤보선 대통령은 사실상 이원집정부제 형태에 가까운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이었으므로 이 분류에서는 제외한다.

▲ 동아일보 2월 25일자 1면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들은, 임기 막판을 제외하고, 한결같이 집권당의 총재를 겸하면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제왕적으로 행사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정치학 교과서에서 대통령 중심제 하의 직선 대통령을 '선출된 왕(elected king)'이라 부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들의 행태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행정부의 수반과 국가 원수로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집권당의 총재를 겸하고 집권당 안에 절대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그룹을 직간접적으로 육성하거나 거느리고, 여당의 국회의원 공천권 등도 거의 배타적으로 행사하거나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원 선거 때 집권당에 '하사금'을 내려 보내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혹은 직무를 빙자하여 집권당이나 집권당 후보를 위해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은 아니었다. 다른 기준과 잣대로 그를 비판하는 것은 별개다. 기자도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이른바 언론운동 진영 안에서 노무현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이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한미 FTA 추진, 그리고 '삼성·중앙일보 사주 족벌'과의 유착 등으로 개혁을 지향하는 시민사회진영의 혹독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해 없기 바란다.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과 노무현 이후의 대통령

그런데 만에 하나,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이회창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동안의 행적과 행태 그리고 강한 성격으로 보아 이회창 씨는 제왕적 대통령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99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활동할 당시,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선임기자들과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폭탄주(boiler-maker)를 직접 제조해 돌리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마시라"고 했는데 한 기자가 거부하자 "자네 창자를 뽑아버릴거야!"라고 이야기 할 정도다. (인터넷신문 '뷰스앤뉴스' www.viewsnnews.com에 실린 이연홍 전 기자의 '이회창 창자론과 나' 기사 참조)

이연홍 전 기자의 얘기를 그의 기사에서 인용한다.

1997년 5월이었다. 이회창씨가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얼마 뒤 이회창씨가 기자들에게 밥을 샀다. 제일 먼저 각 언론사 정당팀장들과 저녁을 했다. 소공동 롯데호텔 지하 중식당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그 중국집의 이름은 아마 상하이였던 것 같다. 나는 약속된 시간에 그곳에 갔다. 이회창씨가 예약한 방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그곳에는 방이 대여섯 개 정도가 있었다. 매 란 국 죽(梅蘭菊竹)으로 이름 붙여진 방이었다. 종업원은 죽(竹 )이라는 문패가 붙은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방문을 열며 피식 웃었다. 당시 이회창씨의 별명이 '대쪽 선생'이었다. 대쪽이니 방도 죽 실을 예약했나 싶었다. 곧이어 기자들이 모이고 이회창씨도 도착했다. 술이 나왔다. 그런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술이 ‘죽엽청주’였다. 대나무 잎으로 만든 중국술이다. 모든 게 설정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식이 들어오고 잔술이 돌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폭탄주를 하자고 했다. 죽엽청주로 폭탄주를 하자 했다. 죽엽청주는 내가 알기론 위스키보다 독한 술이다. 그걸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회창씨가 폭탄주 제조를 맡았다. 이회창씨의 폭탄주는 독하기로 유명하다. 독주도 맥주도 모두가 찰랑 찰랑 채워진다. 이 총재가 먼저 마셨다. 이 총재는 그 전에 마신 잔 술 때문에 약간 취한 상태였다. 다음 잔을 만들었다. 옆으로 잔을 넘기기 전 이총재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상한 제의를 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일어나서 마시라고 했다. 그리곤 오른쪽으로 잔을 돌렸다.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 번째 사람은 일어나서 마셨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모 방송사 선배 기자였다. 그 앞에 잔이 갔다. 그런데 그 선배는 술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리곤 "난 못 일어나"하는 거였다. 술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다. 누군가가 "선배는 이 총재가 대통령 되기를 원치 않나보지?"라고 했다. 그러자 그 선배는 "그렇다"고 했다.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다. 그러자 다른 기자 한 사람이 그 선배 옆으로 갔다. 그리곤 옆구리에 팔을 끼워 일으켜 세우려 했다.

"분위기 깨지 마시고 그냥 드시지요." 그러자 그 선배가 손을 뿌리치며 화를 버럭 냈다. "뭐 하는 짓들이야?"

나는 그 선배 건너편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봤다. 정말이지 분위기가 어색했다. 이회창씨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시 술을 만들었다. 건너 뛰어 그 다음 사람에게 잔을 보냈다. 그때부턴 모두 앉아서 마셨다. 술잔이 세 바퀴쯤 돌았을 때였다.

이회창씨가 언론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심각하게 말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유독 특정 신문사를 지목했다. 이 총재 바로 건너편 오른쪽으로 두 번째 자리에 그 신문사 기자가 있었다. 듣다 못한 그 기자도 "총재님 그러시면 안됩니다"고 했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험악한 건 아니었다. 모두들 농담조였다.

그러자 이총재가 그 기자를 지목했다. "당신이 기사를 이상하게 써서 그래."
"제가 뭘요?"
"계속해서 그렇게 쓰면 내 자네 창자를 뽑아 버릴 거야."
"........"

농담이었다. 분명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듣는 순간 섬뜩했다. 잠깐이지만 아무도 아무 말을 안했다. 이 총재는 취했는지 계속 말했다.

"내 대통령 되면 당신네 신문사 회장 재미없다고 전해줘."
"......."

▲ 6월 10일 저녁 세종로 네거리에서부터 시청 앞 태평로, 남대문 넘어까지 시민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서정은

그로부터 11년 뒤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민주당 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으나 취임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매일 저녁 청와대에서 2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광화문 4거리에서 '퇴진하라!'는 구호를 듣는 처지에 몰려 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되었을까?

이명박 대통령, 21년 전 권위주의 정권과 다를 바 없어

촛불집회의 직접적인 발단은 광우병 위험 요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적으로 수입하겠다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장마가 시작되면 저절로 소멸하리라던 촛불집회는 전혀 사그라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국민들이 촛불을 끄고 싶어도 끄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1백만 촛불 대행진'이 벌어진 6월 10일 저녁 청와대 뒷산에 올라 혼자서 촛불행렬을 보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 귀에서 그 말의 여운도 채 가시기 전에 사실상 경찰의 강경진압을 지시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100일 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취한 각종 정책이나 행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대통령과 정부가 10년 전, 21년 전의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간 것으로 확신하게 만들었다.

군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 조차도 "언론은 장악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장악할 수도 없다"고 말했을 정도인데, 형의 친구이자 공무원이 될 자격 자체가 없는,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하는 최시중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기어이 임명해 방송장악에 혈안이 되어 있고, 자신의 후보시절 참모들을 방송 및 언론 관련 기관장이나 단체장에 낙하산 식으로 배치하는가 하면,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위반하여 절대농지를 매입하는 불법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해명 아닌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까지 일삼는 청와대 대변인 등을 유임시키고, 말로는 국민과 소통하겠다면서도 실제로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지난 100일 동안 그가 보여 준 행태는 국민과는 전혀 동떨어진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었다는 것이 촛불집회를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국민' 다스리지 못해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하였을 때 과연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이 '제왕적 행태'를 보일 때 우리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해 기자는 처음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터진 것이다.

▲ 한겨레 7월 1일자 1면

지난 주말인 6월 28~29일,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적인 강제진압과 심지어 아무런 저항 능력을 갖지 못한 20대 초반의 여성을 집단적으로 잔인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방영됨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마침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경찰에 의해 봉쇄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미사 등 종교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21년 전 군사독재정권이 하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고 국민들은 10년 전, 20년 전의 국민이 아니다. 더 이상 제왕적 대통령은 이 '열정적이고,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국민'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만 이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비난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과거 어떤 대통령과 정부도 조롱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대책이 없는 것일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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