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측의 편집국 폐쇄로, 17일자 한국일보 지면은 평소에 비해 10면 가까이 축소 발행됐다. 평소 32면이었던 한국일보의 17일자 지면은 24면에 불과하다.

회사측이 임명한 부장들과 사측 편에 선 일부 기자 15명만이 제작에 참여함에 따라, 지면에는 연합뉴스 기사들과 아예 바이라인 조차 없는 정체불명의 기사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박진열 사장은 17일자 1면 사고를 통해 "본보는 지난달 초부터 회사의 인사발령에 불만을 품은 일부 편집국 전직 간부와 노조의 반발로 40일 넘게 정상적인 신문 제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회사는 더 이상 파행적인 신문 발행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16일 신임 편집국장(직대)과 신임 부장단, 그리고 지면 제작에 동참하는 기자들과 함께 신문제작 정상화에 팔을 걷고 나섰다"고 밝혔다.

▲ 2013년 6월 17일자 한국일보. 21면(광고면 제외)으로 축소 발행됐다.

박진열 사장은 "그간 일부 편집국 전직 간부와 노조원들이 점거해 오던 편집국을 되찾고, 언론사 본연의 임무인 신문제작을 바로잡았다"며 "오늘자부터 신문 지면 수를 평소보다 다소 줄이는 조치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당분간 감면 조치가 있더라도 한국일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여기시고 혜량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인적 화합을 위해 편집국 노조원 기자들에게도 계속 동참을 호소할 것"이라며 "많은 기자들이 '신문발행은 계속돼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고 있어 평시 지면으로의 복귀가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2013년 6월 17일자 한국일보, 12면 경제면종 기사는 '연합뉴스' 기사이거나, 기자 이름이 없는 기사로 채워졌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대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토요일 용역을 동원해 편집국 당직 기자들을 강제로 내쫓고 15층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시건장치를 해 봉쇄했다. 파업도 안했는데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라며 "기자들의 정상적인 취재를 막고 통신 기사 등을 가공해 허접한 신문을 만드는 게 신문제작을 바로잡은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비대위는 "이번 편집국 봉쇄 전에 기자들은 정상제작을 해왔고, 5월 단독기사 수는 오히려 평월을 넘어섰다"며 "사측은 앞으로는 협상을 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1면 바꿔치기, 징계 등을 해왔고 이번 일까지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15명만이 제작에 참여하고, 170여명의 한국일보 기자들은 외부로 내몰림에 따라 한국일보 지면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5면(종합면)은 연합뉴스 기사 2개와 바이라인 조차 없는 정체불명의 기사로 채워졌으며, 12면(경제면) 기사들은 전부 다 바이라인 조차 없는 기사들이다. 8~9면(사회면)은 기사 1개씩만 빼고 모두 연합뉴스 기사들이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편집국 폐쇄에 항의하는 뜻으로 논설게재를 거부했으나, 이날 지면에는 <북한의 대미 대화 제의, 진정성이 관건> 등 사설 3개가 게재됐다. 회사측의 편에 선 한국일보 내부 인사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대위 관계자는 "신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수준"이라며 "창피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황당한 신문이 나올 게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편집국 폐쇄를) 강행했다는 자체가 회사의 목적은 신문을 잘 만드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평소에도 회장은 신문의 질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아침을 열며' 코너의 고정필자였던 시사평론가 이강윤씨는 16일 "6월 15일 사측에 의해 전격 자행된 편집국 봉쇄 조치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한국일보 사태가 원칙과 상식에 맞게 정상화되어 언론 본연의 기능을 회복할 때까지 컬럼 집필을 거부하는 바"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정론직필'이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훼손되어서는 안되며, 사회의 목탁이자 공기로써의 한국일보 조기 정상화를 촉구한다"며 "한국일보가 '기자 사관학교'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회복하고, 우리 사회의 파수꾼으로 재도약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한 기자들의 노력에 경의와 지지를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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