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TV브라운관 속 연예인들. 그러나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일반 연기자들의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내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성우, 개그맨, 무술연기자, 연극인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5000여 명 가운데 70% 이상이 연 1000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일상을 꾸려간다. 4대 보험 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출연료가 떼여도 속수무책이다. 방송의 매력에 이끌려 이 바닥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다른 업종으로 빠진 전직 연기자들도 허다하다. 미디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연기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스는 화려한 방송계의 이면, 그늘진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총 5차례에 걸쳐 게재된다. 탤런트(1회), 성우(2회), 개그맨(3회), 무술연기자(4회) 4차례에 걸쳐 이들의 현주소를 조명할 예정이며 마지막 기사(5회)에서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법제도 장치들이 필요한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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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기자가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2. “방송사, 성우 싼 값에 쓰고 2년마다 버려”

3. "코미디언, 합법적 노예…하지만 우리가 더 문제다"

4. 장애 입어도 나몰라라…"무술연기자는 근로자다"

5. '사각지대'에 놓인 연기자들에게 필요한 것은?(상)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슈퍼갑' 방송사, 단체협상도 회피해 행정소송까지

연기자들은 한목소리로 방송사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KBS는 매년 해오던 한국방송연기자노조(한연노)와의 단체협상도 회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KBS는 한연노를 교섭단체로 인정해 20년 넘게 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지난해 7월 '교섭창구 단일화' 시행 이후 한연노가 KBS 내부 노동조합과 교섭창구를 단일화 해야 한다며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2월 지방노동위원회는 교섭단위를 분리해 달라는 한연노의 요청을 받아들여, KBS에게 한연노와 KBS 사내 노조를 분리해 교섭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지노위의 결정은 3월 중앙노동위원회에 의해 취소됐다. 한연노 소속 연기자들이 KBS에 전속성이 없기 때문에, 한연노가 KBS에 대해 교섭단위 분리 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취소결정의 골자다.

한연노는 4월 22일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법원에서는 한연노 소속 연기자들과 KBS의 사용종속관계에 대한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당초, '교섭단위 분리' 문제에 불과했으나 행정소송으로 번지면서 핵심 쟁점인 '한연노가 KBS 협상 파트너로서 적격한지'와 함께 '연기자의 노동자성'까지 자연스럽게 다뤄지게 됐다.

▲ 'KBS 전면 출연거부 투쟁' 당시인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한연노 사무실에 걸린 플래카드 ⓒ곽상아

연기자 측에서는 '연기자의 노동자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행정소송의 결과는 10~11월경 나올 예정이며, 만약 연기자들이 패소할 경우 KBS와의 단체협상 자체가 불가능해 진다. 연기자들이 방송사를 상대로 처우개선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다. KBS와의 단체협상 여부는 MBC, SBS 등 타 방송사와의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기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문제갑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정책위원회 의장은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통해 외주사를 핸들링하고 있는 방송사가 이제 아예 연기자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까지 외주사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책임은 벗어나고, 권리는 독차지하는 구도를 완성하려는 것"이라며 "만약 패소하면 연기자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의장은 "그동안 연기자들은 사회적 역할이나 기여에 비해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아왔다"며 "연기자들이 법률적, 사회적으로 보호돼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저희 역시 앞으로 어떻게 방송일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연기자,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연기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은, 연기자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다. 현재, 연기자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도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탤런트 A씨는 "(출연료를 떼인 이후) 고용노동부나 공정위에 신고를 하려고 해도 연기자들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신고 자체가 안되더라"며 "업무의 귀속성이 큰데, 근로자가 아니라니 말도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태득 한국방송연기자노조 무술연기자지부장도 "철저히 스케줄 표에 따라 움직이는 등 연기자들은 업무의 귀속성이 명확하지 않느냐.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산적한 문제들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일어나는 것들"이라며 "하루빨리 연기자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갑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정책위의장은 "만약 연기자의 근로자성을 법률적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4대 보험과 같은 복지문제, 신변안전문제, 직업의 불안전성을 해소하는 문제까지 전부 개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근로자로 인정받게 되면 출연료가 '임금'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체불에 대해 형사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다"며 "10~11월경, 연기자들의 법적 지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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