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일보 매각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2일 한국일보 구성원들이 장재구 회장의 인사를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장 회장이 경영 정상화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1일 단행된 편집국 인사는 '장재구 체제에 대한 불신'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직접적 계기가 됐다.

▲ 기수별 성명서가 붙은 한국일보 편집국

한국일보는 1일 하종오 사회부장을 편집국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주요 부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10년차 한국일보 A기자는 이번 인사에 대해 "유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회장 고발 건을 바람막이 하기 위해 배치된 인사"라며 "검찰, 청와대 쪽을 맡았던 인사들이 전진 배치됐는데 최대한 장재구 회장의 죄를 가볍게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회장과 대립각을 세운 사람들은 모두 주요 자리에서 배제되고,장재구 회장 편을 들어줄 만한 사람들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는 장재구 회장이 한국일보 사옥 매각 과정에서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장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노조원과 비노조원, 편집국과 비편집국 대표로 구성된 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도 2일 오전 총회를 열어 인사 거부를 결의했다. 1일 인사는 '불법부당 인사'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고, 인사 전 체제의 지시를 받아 지면을 계속 제작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62기, 66기, 68기, 70기도 잇따라 성명을 내어 "장재구 회장의 자리보전 노력에 협조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명백한 보복성 인사"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임면규정에 따르면, 인사권자는 편집국장 임명시 5일 전에 내정자를 노조와 편집평의회에 통보해야 하지만 이 같은 절차도 전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일 오전 열린 총회에서는 장재구 회장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다 이번에 갑자기 지역발령을 받은 한 부장은 "한국일보가 워크아웃을 졸업했던 2008년 당시 부채가 210억이었다. 그런데 최근 M&A과정에서 드러난 재무제표에 따르면 장부상 부실이 749억원"이라며 "하지만 실제로 부채가 900억, 1200억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불과 4년 사이에 급격히 부실해진 이유는 대주주가 제역할을 못했을 뿐더러 회사의 자산을 계속 빼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주주가 재정적으로 능력이 없으니까,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시 편집국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며 "우리가 계속 부도덕한 대주주의 의도에 끌려가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기자도 "지금 한국일보는 전화세도 못내고, 전기세도 못내고 있는데 이는 장재구 회장이 회사 돈을 빼갔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는 장재구 회장이 물러날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간60주년기획단장으로 발령받은 이영성 전 편집국장은 "편집국장을 맡은 이후, 회사가 정말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 황당하고 많이 놀랐었다. 지금 한국일보는 절벽의 벼랑 끝에 있는 게 아니라 벼랑을 건너서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며 "기자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명분있는 행동을 해주실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영성 전 편집국장은 2일자 한국일보 1면에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대위의 '장재구의 불법인사를 거부한다' 성명서를 게재한 것에 대해서는 "명분이 있는 성명서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편집국장이라는 자리의 의미와 숭고함은 알지만 꼭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희망으로 가는 길을 차단시키고 질곡의 시기를 다시 가겠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이 전 국장은 "최근 매각협상이 다 진행되서 장재구 회장이 서명만 하면 한국일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장 회장이 거부했다"며 "지금 시점에서 용단을 내린다면 한국일보 공동체와 역사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장 회장에게 여러번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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