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종류의 시선이 집중됐다. 25~26일 예정돼있는 박근혜 정부 첫 국회 대정부질문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첫 날인 25일에는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를, 26일에는 경제·교육·사회·문화 분야 질의가 예정돼있다.

지난 18일 국정원의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민주통합당 측은 대정부질문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질의를 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윤관석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은 22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양파 껍질처럼 드러나고 있고, 경찰의 사건 축소·은폐 의혹도 기정사실이 됐다”며 “정홍원 국무총리를 상대로 집중질의와 추궁을 벌일 것”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의 노련한 스타 플레이어인 박지원 의원을 필두로 해서 심재권, 문병호, 진선미 의원 등이 첫날 질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의 첫 스타트를 끊기 위해 민주통합당은 23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댓글 사건 관련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2일 오전 국회 안전행정위 여당 간사인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대체휴일제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밝히면서 분위기는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국회 안전행정위 법안심사소위는 여야 의원 7명이 각각 대표발의한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과 국경일 및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을 심사한 후 합의를 통해 소위 차원의 대안을 의결한 상태였다.

따라서 23일 국회 안전행정위 전체회의에 여론의 눈이 집중됐다. 최근 경제민주화 정책 등에 대한 대통령의 후퇴된 입장 때문에 대체휴일제 역시 논란의 중심에 놓인 상황이었다. 안전행정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대체휴일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자구수정 등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게 된다. 즉, 대체휴일제를 도입하는 과정에 있어서 23일 국회 안전행정위 전체회의는 하나의 고비였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안전행정위 전체회의 전날인 22일 여당 간사가 라디오를 통해 재계의 반발에 대한 반박을 공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전체회의에서 대체휴일제가 무난하게 의결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박기춘 원내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날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및 경찰의 은폐·축소수사 의혹을 헌정질서를 파괴한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총공세를 선언했다. ⓒ뉴스1

민주통합당은 23일 오전 9시 의원총회를 열었고 예정대로 ‘국기문란 헌정파괴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규탄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에 따라 오후로 예정된 국회 안전행정위 전체회의에서도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현안질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측은 민주통합당의 이러한 요청을 거절했다. 민주통합당 측의 브리핑에 따르면 ‘회의 개회 10분 전에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이 합의가 되지 않아 국회 안전행정위 전체회의는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문제는 안전행정위 전체회의의 파행 이유가 ‘국정원 사건에 대한 질의를 새누리당이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하면 민주통합당이 의도한 대로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이 쟁점화되며 새누리당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지만 ‘민주통합당의 발목잡기로 대체휴일제 의결이 불가능했다’는 것이 되면 도리어 비난은 민주통합당 측이 뒤집어쓰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주통합당 측이 선택한 것은 야당 단독으로 회의를 개회하는 것이었다. 국회법 50조 5항은 “위원장이 위원회의 개회 또는 의사진행을 거부·기피하거나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직무대리자를 지정하지 아니하여 위원회가 활동하기 어려운 때에는 위원장이 소속하지 아니하는 교섭단체소속의 간사중에서 소속의원수가 많은 교섭단체소속인 간사의 순으로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는 다소 복잡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야당 측 간사인 이찬열 민주통합당 의원이 위원장을 대리해 회의의 개회를 선언했다. 국회 안전행정위 상임위원인 이해찬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 과정을 트위터를 통해 중계했다.

▲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당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유정복 행정안전부장관과 이성한 경찰청장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23일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대체휴일제의 조기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으로 정하지 말고 대통령령으로 해야 기업에 부담이 덜하다는 이유다. 이는 22일 이후 정부가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결정한 입장이기도 하다.

결국 23일 안전행정위 전체회의에서 대체휴일제 도입에 대해 이미 큰 소리를 쳐놓은 새누리당은 스무스하게 빠져나가고 민주통합당은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치는 장군 멍군의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진 셈이다.

이 싸움의 결과로 “국정원 직원 정치 개입 사건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국회 파행 … 안전행정부, 대체휴일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될 수 있게 됐다.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욕을 먹을 바에는 다 같이 욕을 먹는 게 낫다는 정치권의 고전적인 처세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비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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