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입사했을 때 꿈은 부국장이었는데 그 이상을 누렸고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 시원섭섭하다고 할까? (졸지에 백수가 됐지만, 미련은) 크게 없다. 고지가 멀지 않았는데 MBC를 1등석에 올려놓지 못하고 나온 게 좀 아쉽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은 지난달 사퇴 후 처음으로 <신동아>와 인터뷰를 갖고 위와 같이 밝혔다.

▲ 김재철 MBC 사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자신의 해임안 처리를 위해 열린 임시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방문진은 김 사장의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뉴스1

<신동아> 5월호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해임안 의결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다. 지역사, 자회사 사장이나 임원 인사는 방문진과의 협의 사항이지 합의 사항이 아니다"라면서도 "억울한 점은 내가 소화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MBC 주주총회에서 해임안이 확정되기 전에 스스로 사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내 명예도 있지 않나. 아울러 방문진의 의결을 존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지난 13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한 음식점에서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날의 인터뷰는 <신동아> 5월호에 <"후배들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정치노조'는 끝내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지난 3년여 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김 전 사장은 스스로를 "보수개혁주의자"라고 칭하며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 노사갈등,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각종 논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세히 풀어놓았다.

먼저, 김 전 사장은 "MBC에 언제부턴가 '정치사원'이 많이 생겼다"며 MBC 사장으로서 '좌편향'이었던 MBC를 '중도'로 되돌리려 노력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정치노조'라고 규정했다.

"예전엔 MBC가 중립이었다. 노조도 항상 우린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중도가 아닌 좌쪽으로 기운 기사를 쓰는 경향이 강해졌다. 민노총, 민노련, 그 다음이 MBC본부 아닌가. 이걸 중도로 돌리려고 한 거다. 어느 정권에 유리하게가 아니라.

어떤 사유로든 후배들이 해고된 건 가슴이 아프고 말할 수 없이 힘들다. 그렇지만 이제 정치 노조는 끝나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재임 시절 정권에 민감한 뉴스, 프로그램이 누락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 내가 좀 반골이었다" "기자가 종일 죽기 살기로 취재해 온 걸 모두 담아낸 기사를 빼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10년 <PD수첩> 4대강편 방송 보류도) 내가 아니라 임원회의에서 조치했다"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 압력 의혹에 대해서도 "(정무수석이나 홍보수석이) MBC 문제로 기분이 상해서 전화하기도 한다. 그럼 한참 들어주고 나서 말한다. 우리도 국민을 위한 방송인데 우리가 판단해서 한다고"라며 "마음 다치지 않게 일단 설명한 다음 내 뜻대로 한다. 그게 사장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발을 뺐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전 사장은 MBC 구성원들을 향해 "다들 젊은 기자시절이 있었으니까 화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노조 후배들이 화가 풀리기를 계속 기다리는 거다"라며 "화 풀린 후배들은 돌아오라"고도 밝혔다.

재임 기간 내내 각종 보복인사, 노조탄압 등의 강경 드라이브로 일관했던 김 전 사장은 "나도 가슴이 아프다. 왜 후배들은 안 아끼겠나"라면서도 "나도 젊었을 땐 선배한테 꾸지람 듣고 화가 나서 술 마시고 그랬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선배들이 옳은 얘기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스스로를 옹호했다.

김 전 사장은 취임 당시인 2010년 언론노조 MBC본부가 밀던 MBC사장 후보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MBC본부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무엇보다 2010년에 처음 사장이 됐을 때 우리 노조가 밀던 분이 따로 있었다. 구영회(MBC미술센터) 사장이라고. 나와는 고려대 동기인데 당시 이근행 노조위원장의 선배인 박성제 전 노조위원장이, 구영회 사장이 정치부장 하던 시절 그 밑에 있었다.

둘이 굉장히 친하다. 박성제 위원장이 굉장히 강력한 위원장이었다. 이근행 위원장 체제라고 하지만 사실상 박성제 전 위원장이 모든 걸 하고 있었고 (그래서) 처음에 날 반대했다."

지난해 노조 파업 당시 시용기자 등 대체인력을 채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MBC는 50년이 돼서 너무 안정돼 있다. 때로는 밖에서 충격이 와야 회사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며 "앞으로 회사가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사퇴 직전 파업 대체인력 7명의 정규직 전환에 결재를 했던 것과 관련해서는 "보도국 같은 데서 평가를 다 했다. 새로 밖에서 후배들이 3~4차에 걸쳐 들어왔다"며 "1차에 들어온 사람 대부분은 보도국에서 써보고 괜찮다고 했고, 2명은 보도국 간부들이 안되겠다고 해서 글로벌사업본부 사원으로 다 채용했다. 기자 출신이니 적응력이 뛰어나고 경영 쪽에만 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시도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무용가 J씨 밀어주기,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전 사장은 "(무용가 J씨와는) 비즈니스 관계"라며 "노조에서는 J씨한테 20억원을 공연비로 줬다고 하는데 그중 10억~11억원은 뮤지컬 '이육사'에 들어간 비용"이라고만 밝혔다. 법인카드 논란에 대해서도 "2년 동안 7억원을 쓴 건 사실"이라면서도 협찬, 스타관리 등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아마 내가 MBC 역사상 협찬을 가장 많이 받아온 사장일 거다. 1년에 한 80억원씩은 가져왔으니까. (…) 스타관리에도 썼다. (…) 일례로 '선덕여왕'이 끝났을 때 이요원 씨한테 가장 좋은 거 사준 것 같다. 120만원짜리."

'트러블 메이커'에서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 전 사장의 향후 계획은 '한국형 문화예술 기획자'가 되는 것이다.

김 전 사장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갑자기 회사를 나오면서 그동안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없는지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는) 책도 쓰고 유앤아이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려 그간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살려 한국형 문화예술 기획자로 새로운 삶을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전 사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인간적으로는 MB나 다른 많은 분보다도 김대중(DJ) 선생한테 가장 많이 배웠다"며 "DJ선생을 굉장히 존경한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정치부에 있으면서 야당 출입할 때 DJ선생이 나와 따로 식사도 하고, 저녁에도 같이 식사하고, 또 봉투까지 챙겨주면서 이건 반드시 집사람한테 줘라, 새옷 사입어라, 이렇게 신경을 써주셨다"며 "지도자는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게 DJ의 철학이다. 그래서 나도 외로운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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