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는 온 모양이다. 길을 걷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점심을 먹은 후 산책에선 심지어 땀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길가의 나무에 제법 꽃도 피었다. 서울의 살풍경, 쌩쌩 달리는 자동차 바람에 꽃나무는 파르르 떤다.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시인 도종환은 꽃은 흔들리며 핀다고 했던가. 흔들리는 꽃나무의 뒤 배경은 높게 선 콘크리트 아파트. 콘크리트와 꽃잎의 조화, 이것이 서울의 봄 풍경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 일정 정도의 합의를 이뤘다고 한다. 애초 정부는 면적 85㎡ 이하이면서 9억원 이하 기존 주택을 매입한 사람에 대해 양도세 면제 혜택을 주기로 하였는데 민주통합당 측에서 가격기준을 6억원 이하로 하되 면적과 가격 둘 중 하나의 기준만 충족시키면 양도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취득세의 경우 면적기준을 없애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한다. 민주통합당이 ‘전용면적 85㎡는 지방 차별’이라는 불만을 제기했다는 후문이다.

▲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의장 권한대행과 민주통합당 변재일 정책위의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4.1 부동산대책 후속 입법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 2차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구체적인 내용을 따지기 시작하면 복잡하니 언론의 평가를 보자. 여·야의 합의에 대해 부동산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 합의로 최대 100만 가구가 양도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용인, 고양. 김포시의 중대형 거래가 증가할 것이라는 보도와 서울 강남권 일부 아파트 등도 수혜 대상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는 보도도 있다. 정부 대책이 처음 나왔을 때 ‘불충분한 조치’라며 볼멘소리가 나왔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특히 강남구 부동산 전문가들의 경우 여·야 합의의 구체적 내용이 보도되기 전까지 그야말로 가슴을 졸였다는 후문이다. 강남3구의 아파트들은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그야말로 중핵으로 전체 부동산 가격의 움직임을 좌우할 수 있는 곳들이다. 부동산 대책의 혜택을 이들이 입을 수 있느냐 여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민주통합당 측이 ‘9억원 이하 85㎡’ 기준을 ‘6억원 이하 85㎡’로 바꾸자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접한 강남구 부동산 전문가들은 패닉에 빠졌다고 한다. 이 문구만 놓고 보면 양도세 면제 혜택의 범위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마법은 9억원을 6억원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and를 or로 바꾸는 데에서 그 효과가 드러났다. 정부안의 양도세 면제 기준 ‘9억원 이하 그리고 85㎡’였지만 민주통합당이 ‘6억원 이하 또는 85㎡’로 바꾸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강남구 부동산 전문가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강남구 부동산의 뜨거운 감자인 개포주공재건축단지, 은마아파트, 반포자이, 래미안퍼스티지 등이 면세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 부동산 정책에 대한 여야합의를 보도한 동아일보의 17일자 보도.

민주통합당의 인사들은 그간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두 가지 입장을 보여 왔다. 첫 번째는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부의 대책이 ‘강남 살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4월 3일 정성호 수석대변인 명의로 낸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강남 살리기 낡은 패러다임’ 제하의 논평은 이런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담고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입장이 서로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주장은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책의 효용을 부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주장하자는 것이다. 반대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강남에만 집중된다는 입장은 대책의 효과를 강북과 수도권 일부로까지 넓히는 좀 더 적극적인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 전경. ⓒ뉴스1
앞서 설명한 여·야의 합의는 후자의 입장에 치중된 것이다. 이 합의로 좀 더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면세 혜택을 받아 더 많은 주택을 사고팔며 이득을 남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해놓기는 민망했는지 민주통합당은 전월세상한제 등의 세입자 권익보호 장치 등이 포함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도 합의했다. 이는 앞서의 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전자의 입장에 치중된 것이기는 하나 근본적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고, 향후의 합의 내용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당의 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모습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민주통합당의 일부 인사들은 대선 패배 이후 좌클릭을 해서 졌다는 식의 문제제기를 하며 중도개혁주의 노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수차례 중도개혁주의 노선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2012년 총선에서 문제가 됐던 한미FTA 반대 및 재협상 입장에 일정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공개적으로 제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밥 한 끼 같이 먹고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등의 임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이런 상황의 방증이라고 평가할 만 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런 내부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부동산 대책을 통한 경기부양 자체에 반대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정부 대책을 그대로 인정하자니 어떤 진보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딜레마가 이런 상황의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주통합당이 자신들의 노선을 좌우로 바꾸는 것이야 그들의 자유이니 외부에서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종의 비판적 평가는 필요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통합당이 2012년 선거에서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좌클릭’을 감행한 결과 민주통합당의 좌측에 있던 진보정당들은 ‘야권연대’를 주요 전술로 채택하고 됐고, 그들끼리의 의견대립으로 인해 파탄일로를 걷게 됐다. 진보정당들의 멸망(?)은 그들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중도부터 진보까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성과를 독점하려고 한 민주통합당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슬로건은 한국 부동산 시장의 현실에서 탈피해야 하는 당위를 매우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의 방식을 통해서는 이런 슬로건은 그야말로 슬로건에 그칠 뿐이며 현실에서 부동산은 그저 buy-sell-buy로 이어지는 투기의 대상이 될 뿐이다. 민주통합당이 슬로건을 무엇이라고 내세우든 이제 정부 부동산대책에 대한 합의로 인해 이 체제의 공범자가 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과 정부안을 걷어 차버려 국회에서 날치기 등이 반복되는 상황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실적 한계를 넘지 못하는 보수정당에 끊임없이 이상적 비전을 제시하고 서민의 요구를 정치적 힘으로 만들어 내 이를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진보정당의 역할이다. 민주통합당은 보수정당이 될 것인지 진보정당이 될 것인지를 하루 빨리 선택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스스로 훼손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만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결단을 내려야 남은 소수의 진보정치 세력도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다. 진보의 겨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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