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이사장 유재천)의 정파적 행보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정연주 사장의 사퇴 권고 결의안과 보도본부장 문책 추진 불발, 경영평가보고서 방송문안 논란 등 'KBS·정연주 흔들기' 드라이브로 의심받는 이사회의 행보에 언론계의 눈총이 거세다.

KBS 이사회는 최근 <뉴스9>의 이사회 관련 리포트를 문제삼은 일부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들이 이일화 보도본부장 문책을 추진하려다 불발에 그쳤다. KBS 경영에 관한 최고 의결기관이 보도 내용에 불만을 품고 관련자 징계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월권행위' '부당한 보도간섭'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사회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부결시킨 것이다. 사실상 '보도본부장 문책 요구'를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 지난 17일 소집된 임시이사회는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 4명에 의해 추진됐다. 이사회 규정에 따르면 이사 4명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임시이사회를 소집할 수 있다.

▲ KBS 기자들이 지난 17일 KBS 임시이사회가 열리는 신관 5층 이사실 앞에서 부당한 보도간섭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춘호 이사와 방석호 이사가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서정은
지난 5월에도 KBS 이사회는 '2007 경영평가 보고서'를 의결하면서 보고서 내용과 상충되는 평가 내용을 방송문안에 포함시켜 외부 경영평가위원들이 반발하는 등 물의를 빚었다. 이사회는 외부 경영평가 위원들이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이사들의 추가 의견을 보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보고서에는 이를 뒷받침할 뾰족한 근거가 나와있지 않다. 따라서 KBS 정연주 사장 퇴진을 압박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공표되는 경영평가 내용까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연주 사장 사퇴권고 결의안, 보도본부장 문책 등 '불발'

당시 KBS 이사회는 "KBS의 2007년 경영 성과는 여러 긍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수신료 인상에 실패하였으며 인사제도 개혁에도 성과를 내지 못함으로써 경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내용을 방송문안에 추가했다.

이에 대해 평가위원들은 "이사회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며 KBS '뉴스9' 직후 방송되는 경영평가 내용에 자신들의 이름으로 이사회의 입장이 방송될 경우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이사회는 자신들의 별도 평가라는 점을 명시해 지난달 31일 방송을 내보내는 '초유의 일'을 감행했다.

'정연주 사장 사퇴권고 결의안' 추진도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들이 주도하다 유야무야된 경우다. KBS 이사회는 5월 정기이사회를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임시이사회를 열었고 일부 이사들을 중심으로 '정연주 사장 사퇴권고 결의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같은 달 12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당시 KBS 김금수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사장의 조기 사퇴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져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언론현업단체와 시민언론단체에서도 "KBS 이사회가 이명박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에 들러리를 서고 있다"며 비판 수위를 높인 것이 일정하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 KBS 기자들이 지난 17일 이사회의 부당한 보도간섭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벌이자 권혁부 이사(사진 가운데)는 기자들을 향해 "이게 뭣하는 짓이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서정은
KBS 이사회가 이처럼 일부 이사들을 중심으로 무리수를 둬가며 'KBS 흔들기'라는 의심을 살만한 드라이브에 계속 나서자 이사회의 정파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17일 임시이사회 회의장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인 KBS 기자들은 "KBS 이사회가 한나라당 이사회냐, 정파적 행보 신물난다"고 항의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도 이날 성명을 통해 "이사회가 최근 사장 퇴진, 표적 특별감사 논란 등으로 안팎에서 흔들리고 있는 KBS를 보호하기는커녕 정치적 행보의 중심에 서 있다"고 비판했다.

5월부터 임시이사회 소집 빈번…'정연주 사장 공격' 위한 정치적 의도 논란

이사회의 이 같은 '무리수' 행보는 빈번한 임시이사회 소집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5월부터 부쩍 늘어난 임시이사회와 간담회는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들이 소집해 파장을 일으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상적으로 KBS 이사회는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정기 이사회와 둘째주 목요일 임시이사회를 열어왔다. 한달에 한번의 정기이사회로는 안건을 모두 소화하기 어려워 관례적으로 한달에 두번씩 이사회를 열어왔다.

그러나 지난 5월에는 정기 이사회와는 별도로 2번의 간담회와 3번의 임시이사회가 열렸다. 5월에만 모두 6번의 회의가 열린 셈이다. 오는 25일 정기이사회를 앞두고 있는 6월에도 벌써 3번의 임시이사회가 소집됐다.

5월부터 소집된 임시이사회에서 다뤄진 안건들을 보면 대부분 '정치적 의도'를 비판받으며 논란이 됐던 경우다. 지난 5월 13일 간담회와 20일 임시이사회의 안건은 'KBS 당면 현안에 관한 논의'였으나 내용상으로 '정연주 사장 사퇴권고 결의안' 추진이라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5월 25일 임시이사회와 28일 간담회는 KBS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추가하려다 외부 평가위원들의 반발로 논란이 일었던 '경영평가 방송문안 관련 논의'가 안건이었다.

5월 30일 임시이사회에서는 다른 안건도 있었으나 이사회 관련 KBS 보도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6월 12일 임시이사회에서도 보도 관련 이야기가 논의됐고 '이사회 관한 9시뉴스 인책에 관한 건'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한 임시이사회가 17일 소집됐다.

"친여 성향으로 뒤집힌 이사회 구도…특정 정파 입맛에 치우칠 가능성 상존"

주요 현안이나 긴급 사항이 있을 경우 필요에 따라 임시이사회가 소집될 수는 있겠지만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소집된 임시이사회는 주로 KBS와 정연주 사장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는 점에서 이사회 활동이 특정 정파의 입맛에 맞게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KBS 이사회 구도는 지난달 김금수 전 이사장이 갑작스럽게 사퇴하고, 보궐이사 자리에 친여 성향의 이사가 차례로 보강되면서 6대 5의 국면이 형성돼 있다. 유재천 이사장의 합류로 의결정족수 6명을 확보한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들이 계속 무리수를 두며 정파적 행보를 취할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KBS 한 관계자는 "과거 김금수 이사장 시절에는 일부 이사들이 정파적인 언행을 보여도 끌어안고 갔는데 지금은 정파적으로 행동하는 이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각종 논란과 트러블이 빈번해지는 양상"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이사들이 사실상 정연주 사장 사퇴 권고 결의안을 추진하다가 엉뚱하게 보도를 트집잡아 보도책임자 징계를 하겠다고 하고, 경영평가 보고서 논의에서도 무리하게 편파성과 불공정성을 넣으려는 시도를 했다"며 "앞으로 결산과 예산 등 이사회가 의결해야 하는 사항들이 많은데 도처도처에 부딪칠 건수가 많다. 갈수록 이사회 내부의 갈등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BS 이사들은 정기·임시이사회와 간담회, 분과 소위 등 모든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30만원의 회의참석비를 지급받는다. 현재 이사장의 경우 매월 업무추진비 240만원, 조사연구수당 382만원, 회의참석수당 1회 30만원을 합쳐 월 652만원, 연봉 7824만원을 받는다. 나머지 이사들은 매월 362만원을 받아 연봉 4344만원을 지급받는다. 지난해 3월 업무추진비를 100% 인상하고 조사연구수당을 50만원씩 인상했다가 "비상식적인 인상"이란 비판 속에 유보했던 이사회는 올 1월부터 지금과 같이 인상된 수당을 적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KBS 한 팀장급 간부는 "통상 한달에 한두번이던 이사회가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움직임이 본격화한 시점부터 갑자기 늘어났다"며 "덕분에 이사들 주머니도 두둑해지겠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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