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인해 드러난 혁명적인 변화 중 하나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제외하고 촛불에서 환영받는, 아니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국회의원은 없다. 종노릇 자처하며 선거에 나오지만, 당선되면 상전노릇 당연하다는 듯 깝죽거리며 국민들을 무시하는 국회의원들의 가치가 똥값이 됐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미신’이 촛불에 타 버린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만이 유일 가능한 민주주의 방식인양 선동해 온 정치권의 ‘마타도어’가 지금은 촛불에 타 버린 숯덩이처럼 ‘존재’의 흔적은 있으나 ‘기능’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 다음 아고라 네티즌 등 시민 1000여명은 13일 KBS 공영방송을 지키자며 KBS 본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곽상아
오로지 기존 매체인 방송과 신문만이 그들 정치권의 동향을 전할 뿐이다. 새로운 것은 없고 대안도 없는 그들의 지루한 정쟁만 있을 뿐인데,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기존매체들은 이를 무슨 뉴스라고 중계방송하고 있다. 특히 지상파를 보면,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는 평가를 내리더라도, ‘배부른 돼지새끼들’의 향연과 추억만들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존매체 구성원들의 아주 일부와 더불어 자발적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1인 미디어 시대는 직접민주주의의 시대를 선언한 것이요, 새로운 시대의 다양한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는 중앙집권적 정치와 통치를,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속도로 약화시킬 것이다. 중앙 정치는 풀뿌리 정치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는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며, 통치는 자치로 전환될 것이다.

여기서 지역지상파방송의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이번 촛불집회가 지역에서는 어떤 규모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지역방송이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도했고, 어떤 프로그램으로 반영하거나 대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있다. 색다른 대응방식이 있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있었다면 서울까지 알려졌을 테니까. 아니 인터넷에서 칭찬릴레이가 쏟아졌을 테니까. 한데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 새로운 대응이 없었기에 인터넷에서 반응이 없었겠지. 과문한 필자의 문제는 아닐 터.

지역방송의 홈페이지도 있을 터이고, 디지털카메라도 있을 터인데. 지역 곳곳에서 아주 적은 수의 촛불이었지만 타 올랐을 터인데, 그 촛불이 지역방송 구성원들에 의해서 지역주민들에게 얼마나 전달되었을꼬. 1인 미디어가 촛불을 지켰고, 소규모 인터넷 동호회가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아고라와 뉴스블로거 등 각종 토론방이나 뉴스방에 올리는 동안, 지역방송 구성원들은 1분30초짜리 촛불집회 한 두 꼭지 제작·방송하는 것으로 직접민주의의 시대를 반영했을 터.

기자와 카메라기자가 찍은 영상물이 반드시 지상파를 통해서 전달되라는 법은 없다. 9시 뉴스 끝 무렵에 10분짜리 지역뉴스를 내 보내는 것으로 그 동안 국민들이 지상파에 실어주었던 각종 지원과 기대에 보은할 수 없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촛불문화제 등 지역 거주민들의 일상의 삶, 분노와 기쁨을 실시간 중계를 할 수도 있고, 실시간 중계가 어렵다면, 지금 서울에서 펼치는 인터넷신문사들처럼 파일이나 테이프를 오토바이로 실어 날라, 20~30분의 시차를 둔 중계방송도 가능할 수 있다.

▲ 아고라 네티즌의 손팻말 ⓒ곽상아
하지만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 지역방송, 서울 지상파는 안 해도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지역지상파는 서울지상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고, 이번 촛불문화제처럼 지역 주민들과 제대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면, 이후 이 보다 나은 기회는 당분간 찾기 어려운 현실인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지역지상파방송의 행태를 보면, 결코 지역주민들이 지역지상파방송의 존재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나서 줄 가능성은 적다. 그래서 각종 정책관련 토론회나 집회에서 지역방송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대는 ‘지역방송의 역할’에 대해서 지역주민들이 동의할까 의심스러운 것이다. 지역민들은 ‘지역방송의 역할’을 거의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조사에서 지역방송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30%가량의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답변을 했다. 지역방송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이름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3%만이 답을 했다.

지역방송의 현 주소는 바로 이 3%이다. 지역민 3%만이 지역방송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 진다. 결코 지역방송이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지역방송의 역할' 운운하며 존재해야 할 명분으로 주장할 수 없는 처지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해체위기에 섰고, 지역방송을 위한 공적 지원의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 3년 연속 적자면 해고가 가능한 대법원 판례로부터 현재의 지역지상파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지역경제가 지역방송이 존재할 수 있도록 활성화되지도 않았으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수도권 집중화가 촛불집회 무마용 대책, 즉 규제완화의 포장지를 둘러쓰고 이명박정권에 의해서 발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방송은 그 의미조차 읽을 낼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한 상황이다. 지역민의 눈으로 청와대와 정부의 정책을 읽을 수 있는 노력도 의지도 없는 집단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강조하고 또 강조하건데, 지역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방송이어야 지역주민들이 지역방송을 지켜 준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지역방송의 역할을 무시하고, 고사시키려는 서울의 정책결정자들을 비판하며 함께 참여하여 지역방송 사수투쟁에 나선다. 지금 지역방송은 그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확산은 기회다. 자발적 시민참여가 이명박정부의 각종 정책, 특히 반공공성 정책에 집중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 바로 지금의 촛불문화제요, 그 하나의 증거가 KBS를 둘러싸고 있는 촛불들이다.

틀림없는 지역방송의 기회다. 지역방송 홈페이지는 지역인터넷소식지로 거듭나야 하며, 그 뉴스 중 몇 개가 지상파를 타야한다. 지상파를 탄 뉴스만 홈페이지에 올라서는 안된다.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지상파를 통한 지역주민과의 접점만 고려하는 단순프레임 즉 아날로그프레임에 갇혀있질 말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지민주민들과 결합하며 지상파를 통해서 확산하는, 즉 인터넷매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멀티미디어프레임, 디지털프레임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기회에 새로운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촛불문화제부터 지역지상파 홈페이지에 생중계해라. 그리고 지역주민과 소통하라. 그 반응을 전국에 알려라...제발...제발...마지막 생존의 기회를 포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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