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웃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직권상정’ 제안 때문이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합의에 의한 정부조직법개정안 직권상정’을 제안하고 민주통합당이 즉각 거부한 것은 정치가 ‘야바위’나 다름없다는 상념에 젖게 한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뜬금없이 직권상정을, 그것도 야당에 제안한 이유는 소위 ‘국회선진화법’ 덕분이다. 이는 2012년 5월에 개정된 국회법을 말하는데, 이 법에 의하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처리는 뭔가 엄청난 재난이 벌어졌거나 전쟁 수준의 사건이 난 게 아니라면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합의로만 하도록 되어 있다. 옛날 같았으면 야당이 말을 안 들을 때 여당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해 일방처리하면 됐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때문이 이한구 원내대표는 울며 겨자먹기로 야당에 직권상정을 같이 해줄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아무리 욕을 많이 먹어도 바보는 아니기에 이한구 원내대표는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첫째는 지금까지 여·야가 합의한 것은 ‘수정안’으로 제출하고 둘째는 합의되지 않은 부분은 원안을 상정해 ‘자유투표’를 진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 직권상정을 제안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기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듯한 표정이다. ⓒ뉴스1

스토리를 짜보자면 이렇다. 정부조직법개정안에서 합의가 안 되는 부분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과 업무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새누리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불만을 가진 의원들도 있고 찬성을 하는 의원들도 있다. 따라서 당론을 강제하지 말고 자유의사에 따라 투표를 하라고 하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되거나 부결되거나 할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공평한 안인가, 이런 얘기다.

전체 의석 중 새누리당이 가진 의석수가 과반이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새누리당에서도 일부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 자유의사에 따라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정의의 여신이 민주당의 편을 들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부결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그러니까, 정의의 여신이 민주당 편을 들어준 덕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부결됐을 경우 새누리당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지금도 국정공백이 생긴다고 난린데, 다시 처음부터 논의를 해서 새로운 원안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편제대로 가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됐을 경우 이한구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격노’를 어떻게 감당하시겠는가? 그야말로 천부당만부당이다.

따라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정부조직법 개정안 표결에 돌입하는 순간 일사불란하게 모두 찬성 표결을 할 것이다. 게다가 원안이 직권상정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민주통합당은 닭 쫓던 개가 되고 국회는 마비되겠지만 어쨌든 목표는 달성이다. 사실 이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한구 원내대표의 ‘직권상정 제안’은 한 마디로 ‘야바위’라고 밖에는 평할 말이 없는 것이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백 번 수정안을 내면 뭐하나? 원안이 통과될 것을”이라고 반응하는 게 당연하다. '원안을 상정하지 않고 수정안만 표결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새누리당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진지하고 성실하게 협상에 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