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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정말 <본>의 영향을 받았을까[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 | 승인 2013.02.05 09:54

<베를린>을 두고 <본>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네 안 받았네 말들이 많은데 무의미한 논란이다. 당연히 받았다. 혹은 안 받았다고 해도 말이 된다.

무슨 말이냐면, <베를린>은 특정 영화의 영향으로만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비슷비슷한 여러 영화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즉 서양 첩보 영화 전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되고, 안 받았다고 해도 된다. 아무튼 특정 영화의 영향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 영화는 감독의, 일종의 ‘로망’이라고 하겠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첩보영화에 대한 로망 말이다. 그걸 그대로 스크린에 구현한 것이다. 자기 손으로, 한국 사람들을 써서. 그러니까 첩보영화를 많이 봤던 사람들 입장에선 ‘어 저거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인데’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된다.

감독은 멋진(비장한) 첩보 영화와 비운의 개인을 그리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멋진 첩보 영화가 되려면 당연히 냉전인 게 좋다. 따라서 남북대립이 배경으로 채택되고, 요원들은 목숨을 걸고 냉전적 스파이 전쟁을 벌이는 전사로 설정됐다.

비운의 개인을 그리려면 조직이 개인을 배신해줘야 한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마치 기계와도 같던 주체 전사가 조국의 배신으로 사선에 선다는 설정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따라서 배신의 주체는 북한이 되고 배신당하는 개인은 북한 요원이 됐다.

부인과의 로맨스는 그 북한 요원의 인간미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요원을 배신한 조국의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는 역할도 한다.

‘남측’이라고 하면 큰일 나니까, ‘우리측’ 요원도 조용한 배신을 당한다. 시스템은 북한을 오로지 박멸할 빨갱이 집단이라고만 보는 우리측 요원을 구시대적 인물이라며, 청소해버리려 한다. 시스템(우리 당국)은 북한과 대화와 거래를 시도하려 한다. 우리측 요원은 빨갱이 집단에게 배신당하고 부인마저 잃은 채 천애고아가 된 북측 요원을 동정하는 인간미까지 보여주지만, 우리 조국은 북쪽 당국과의 거래를 통해 우리측 요원의 인간미를 외면한다.

이런 설정을 통해 비장한 첩보 영화 분위기가 완성됐는데, 이것이 바로 감독의 로망이었다. 혹은 오락영화를 향한 욕망이었다. 감독은 로망과 오락을 위해 냉전을 소환한 것이다.

미국이었다면 크게 상관없었을 것이다. 미국이 전통적인 첩보영화 설정을 활용하기 위해 소련을 소환한다 해도 별 문제될 건 없다. 그런데 여긴 한국이다. 한국의 현실에선 냉전을 단지 오락의 대상으로 쿨하게 보기가 힘들다.

북측 요원을 비장한 개인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 시스템의 비인간성이 부각된 건, 북한이 신뢰성 ‘0’인 절대악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남측, 아니 우리측 요원을 고독하고 인간적인 애국자로 만들기 위해 우리 시스템의 비인간성이 부각된 건, 한국에서 북쪽과 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뢰성을 ‘0’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북한에게 완고한 증오심과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미까지 간직한 정통 요원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런 설정은 한국에서 단지 오락 그 의상의 의미로 작동한다.

여기까지가 다 감독의 의도였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감독은 그저 로망과 오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멋진 첩보영화를 구상했을 뿐이고, 거기에 북한을 찌질하고 답답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일반적인 심정도 일정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충 여기까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감독의 쿨함이고, 냉전문제를 그렇게 쿨하게만은 볼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우울함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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