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모씨가 한겨레 기자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가운데, 해당 기자는 "후속보도를 막기 위한 '협박'이자 '억지고소'"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정환봉 기자는 지난달 31일 1면 <국정원 직원, 대선 글 안썼다더니 야당후보 비판 등 91개 글 올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사용된 김씨의 아이디 11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김씨가 야당 대통령 후보를 비판하는 등 정치적으로 편향된 글을 90차례 이상 직접 썼다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그동안 국정원이 "김씨가 게시판에 직접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설명하고, 경찰이 3일 기자간담회에서 "김씨가 쓴 글이 있으나 대선과 전혀 관련 없다"고 밝힌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국정원의 '대선 개입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 주요한 골자다.

▲ 1월 31일 한겨레 1면

이에, 국정원은 1일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어 "직원 김씨의 인터넷 ID를 불법으로 기자에게 제공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인터넷 사이트 관리자 또는 경찰 관계자를, 이 ID를 이용해 불법으로 사이트에 접속해 기록을 열람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한겨레 기자를 김씨 명의로 고소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경찰이 김씨의 수사 상황을 공소제기 전에 기자에게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면 형법의 피의사실 공표혐의로 수사를 요청할 방침"이라며 경찰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는 "국정원이 수사를 위축시키기 위해 무리한 고소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등 국정원이 사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무더기 고소'와 같은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2일 김정현 민주통합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정원 주연, 정치경찰 조연의 이 사건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없는 사건"이라며 "하물며 이 사건에 대해 법적 대응 운운하는 것은 국민들의 비웃음을 살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정환봉 기자 역시 4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직원이 개인적으로 고소한 것인데 국정원이 직접 보도자료까지 만들어서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전에 언론사에 뿌렸다. 국정원이 더 이상의 후속보도를 막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 같다"며 "후속보도를 막기 위한 '협박'이자 '억지고소"라고 지적했다.

정 기자는 "만약 국정원 측에서 정말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가 밝혀지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저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전에 그런식으로 보도자료를 뿌리면서 공개적으로 할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지도 않고 일단 보도자료부터 돌린 것 아니냐"며 "(사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 전방위적 압박에 나선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정원 직원 글 검색을 위해서는) 사이트 자체가 개인정보를 요구한 게 아니었다"며 "해당 ID가 개인정보인가 아닌가가 쟁점인데 법리적으로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미약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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