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힘은 비폭력에서 나온다.”

오늘자(9일) 한겨레의 사설 제목이다. 맞다. ‘촛불의 힘은 비폭력에서 나온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8일 새벽 벌어진 일부 시위대의 ‘격한 시위’는 우려가 되는 측면이 있다. 대다수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촛불시위에 폭력이 가미될 때 그 자체도 위험하지만 그 폭력이 갖는 ‘정치적 반동’은 더 위험하다. 특히 지금 국면에서. 한겨레가 지적했듯이 “정권이 늘 폭력시위를 강경진압의 명분으로 이용해”왔다는 점을 명심하자.

시위대와 경찰의 '폭력' 모두를 비판한 조선 동아

▲ 조선일보 6월9일자 8면.
오늘자(9일) 조중동의 보도태도가 궁금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조중동은 이런 호기를 놓친 적이 별로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조중동의 수세적 국면이다. 연일 거리에서 수십 만명의 시민들이 “조중동 폐간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고, 실제 이런 움직임이 광고나 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일부 시위대이긴 하지만 쇠파이프까지 든 ‘폭력시위’가 등장한 지금, 그들의 입장에서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으랴.

그런데 좀 실망(?)이다. 평소 같았으면 1면 머리기사에 관련기사로 지면을 도배질하고,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불법 폭력 운운’하며 난리법석을 부렸을 텐데 지나치게 ‘차분’하다.

<쇠파이프 등장>이라는 조선의 1면 사이드 기사 제목까지는 괜찮았는데(?) 관련기사인 8면은 ‘보수우파’답지 않게 양비론으로 일관한다. 제목 꼬라지 봐라. <노래·춤 어우러진 ‘축제분위기’ … 심야 시위엔 일부 폭력도>다. “사탄의 무리가 판치는” 촛불시위에 ‘대조선일보’가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축제분위기라는 평가를 내리다니. 더구나 조선일보다운 ‘화끈한’ 사설을 기대했는데 사설 하나 없다. 1면에도 시민들의 평화적 집회와 이른바 ‘폭력집회’ 사진을 동시에 게재했다. 조선일보에게 두려운 건 보수우파적 신념이 아니라 독자 부수와 광고 떨어지는 것인가. 보수우파 진영이 조선일보 앞에서 연좌시위를 해야 할 판이다.

▲ 중앙일보 6월9일자 3면.
일찌감치 양비론적인 태도를 보인 중앙일보는 사실 논외로 하자. ‘초강경대응’ 노선을 유지하다가 분위기 이상하니(?) 슬쩍 바꾸는 중앙 노선은 이미 이 바닥에 정평이 나 있다. 다만 현재의 호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양비론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중앙의 ‘울분’이 오늘자(9일) 3면에 집약돼 있는 것 같다. 1면에 사진 하나 없는 중앙일보. 참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 울분이 전해져 오는 듯해 안타깝다. 제목이 이렇다.

<쇠파이프(시위대) 휘두르고 방패(경찰)로 찍고 … 80년대로 돌아간 광화문>.

아직까지 버티는(?) 동아일보

그런 점에서 보면 동아일보는 좀 흔들리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보수우파적 노선을 걷고 있다. 1면 ‘전경버스의 수난’을 담은 사진을 실은 데 이어 관련기사 10면에는 ‘촛불집회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평화집회 ‘축제’ 쇠파이프 ‘폭력’ / ‘촛불’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사실 예전에 비해 강도가 약해지긴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쇠파이프가 등장했는데 축제라니? ‘강성’ 동아일보의 노선은 어디로 갔나.

▲ 동아일보 6월9일자 10면.
그래도 동아일보. 아직까지는 버티는(?) 모습이다. 본인들이 직접 말하기 곤란했는데 보수신문의 ‘단골 필자’인 중앙대 제성호 교수(법대)를 등장시켜 “정당한 공권력은 ‘폭력경찰’과 다르기 때문에 공권력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과 경찰의 눈치 보기나 무원칙한 법집행, 그리고 법원의 사법온정주의는 불법시위를 부추기는 것일 뿐, 선진 법치사회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제 교수 칼럼 논지의 핵심인데 조중동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 아닐까. 그런데 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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