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제12회 인권영화제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5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 거리 영화제로 진행중입니다.

사실 지난 주말부터 가봐야겠다고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폐막식을 하루 앞두고 찾게 되었습니다. 왜냐고 물으시면 촛불집회 취재 때문에 도저히 짬이 안났다는 변명을 내놓겠습니다. 미디어스의 몇 안되는 취재진이 연일 광장에서 달려온지라 저녁 취재는 왠만해서는 엄두가 잘 안나는 요즘이었다고도 뱀발을 달아봅니다.

인권영화제 소개와 인터뷰 기사를 실으려다가 폐막식을 하루 앞둔 시점이라 상당히 뒷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기자수첩을 빌어 민망한 마음을 좀더 담아보고자 합니다.

상영관 못 잡은 인권영화제, 올해는 거리에서 표현의 자유 주장

올해로 제12회를 맞는 인권영화제는 올해는 특별히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세종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상영합니다. 모토는 "그들만의 심의를 심의한다"이구요. 그러니까 전문 상영관이 아닌 장소에서 열면서 '현행 심의제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는 영화제입니다.

▲ 제12회 인권영화제 -'그들만의 심의를 심의한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 정영은
이유는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통제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현행 법상으로 모든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며,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 면제추천'을 받는 조건으로 등급분류 없이 상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영화제 측은 등급심의면제추천 역시 검열의 일부라고 판단해 줄곧 거부해왔고, 이에 극장들은 대관을 꺼려해서 매년 상영관 섭외에 상당히 애를 많이 먹어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비법을 어길 경우 상영관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영업 정지’, ‘등록 취소’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행 영비법 등급분류제, 여전히 사전검열 수단으로 작용

다행히 매년 제재없이 상영해왔지만, 인권영화제 측은 올해 "더 이상 작은 틈새에 만족하지 않고 현재 심의제도 자체가 표현의 자유에 어긋남을 알려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영비법 개정 운동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번 영화제의 홍보를 맡은 초코파이님은 "올해 4월초까지 극장 섭외에 총력을 기울이다가 내부 논의에서 '이런 식은 더 이상 안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털어놓으시더군요.

▲ 제12회 인권영화제 홍보담당자 '초코파이'님 ⓒ 정영은
이번 거리 영화제를 시작으로, '표현의 자유 확대'에 뜻을 같이하는 인권 및 문화예술 관련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영비법 개정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의 사전심의가 2000년까지 이어져왔었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2001년부터 영비법이 만들어지면서 등급분류제로 대체되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현행 '등급분류제' 역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상영 등급 중 가장 높은 `제한상영가'가 부여될 경우, 현실적으로 제한상영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결국 `상영불가' 판정과 마찬가지라는 말이지요. 이 때문에 이 등급을 받은 영화들의 수입사들이 반발하면 수정 혹은 삭제 이후 다른 등급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사전 심의가 '정보 제공'의 측면이고, 또 제작자가 선택할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또 '반정부적', '선정적' 등 검열의 잣대가 애매모호하다는 비판도 있어왔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인권영화제에서는 사전에 다양한 연령과 분야의 19인으로 구성된 "표현의 자유 19조 위원회"(“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갖는다”는 세계인권선언 19조에서 따온 명칭)와 '관객 공개심의' 등을 통해 심의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답니다.

사전검열을 전면 거부하면서 시작된 인권영화제는 제1회인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학교 강의실 등을 빌려서 상영했습니다. 당시에는 경찰들이 몰려와 상영을 막기도 했습니다.

제2회 때에는 4.3항쟁을 다룬 영화 상영에 국보법 위반으로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잡아가기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헌법재판소가 영화 사전심의의 위헌판결을 내린 이후 '제한상영가' 등의 등급제가 대체되면서 2001년부터 인권영화제는 상영관에서 진행되어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코드화 문화정책' 우려

그랬던 인권영화제가 7년만에 다시 거리로 나온 이유가 단지 '더 이상 상영관을 잡지 못해서 지쳤기 때문'일까요? 저는 당장 정부의 탄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거리에 나와야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영화제 홍보팀 초코파이님은 "이번 거리영화제 결정이 새 정부 출범과 상당한 영향이 많다"는 얘기를 꺼내더군요. 드러난 현상으로서의 충돌은 없지만 영향력으로 인한 여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새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인 유인촌 장관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른바 '코드'가 다른 문화관련 단체장을 '나가라'고 압박하면서 현재 영진위, 영등위 등 산하기관장의 재신임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인촌 장관의 처사를 일컫는 얘기였습니다.

현재 70%가량의 문화부 산하 기관장들이 물갈이됐다는 보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문화다양성 증진을 우선시하는 게 아니라 문화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행사할 지를 먼저 생각하는 문화부 장관 하의 문화정책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즉 새 정부의 영향력이 현장의 극장주들에게 나타났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동안 제재하지 않던 영진위 등이 분명 적극 간섭하고 들 것이며 그렇다면 벌금 등 강력한 처벌을 통해 극장들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는 겁니다.

영화제 스텝들, 영화 상영 후 촛불시위로 달려가기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얘기가 오가면서 자연스레 촛불집회로 화제가 넘어갔습니다. 연일 뜨거운 촛불집회 때문에 관객의 참여가 저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초코파이님은 "40여명의 자원활동가 중 상당수가 밤 11시경 상영이 끝나면 광화문으로 달려가는 강철 체력을 가져 개인적으로 부럽다"면서 "인권영화제 폐막하면 당장 촛불시위 현장에 달려갈 것"이라고 답하더군요.

▲ 6월 4일 저녁 8시 상영작인 '콜리지알스, 민중의 의회'를 보고 있는 관객들 ⓒ 정영은
마침 6월 4일 상영작은 '콜리지알스, 민중의 의회'라는 아르헨티나 다큐 작품으로, 2001년 앙르헨티나 콜리지알스 지역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를 희망없는 정치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거리에서 스스로 민중총회를 꾸려 주민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담았더군요. 요즘 한국의 촛불 정서와도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홍보팀 초코파이님에게 폐막을 하루 앞두고 관객분들께 한말씀을 부탁했습니다. 일교차와 폭우에도 꼬박꼬박 70~80명씩 참석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아직 못 와본 분들께는 긴팔 옷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남겨주었습니다. 폐막작은 빈곤과 세계화를 다룬 '철을 먹는 사람들(2007 독일, 방글라데시)'이고 폐막식은 오늘(5일) 저녁 8시 30분에 마로니에 공원 TTL존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매체비평지에서 취재왔다고 하니까 '원인이 아닌 현상'에만 집중하는 언론의 모습이 아쉽다면서 의미있는 작은 영화제들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했습니다. 옆의 자원활동가 한 분이 성소수자들의 영화축제인 서울LGBT필름페스티벌(SeLFF)이 6월4일부터 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다고 알려주시네요.

어찌하다보니 올해 인권영화제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만, 서울 밤하늘 아래서 사전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고민들을 함께 나눠보는 '거리 영화제'의 묘미가 한편으로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민들 후원으로 전액 무료 상영되고 있는 인권영화제. 특별한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원짜리 기념 티셔츠 한 장을 사들고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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