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비극이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극은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 영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성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립극단이 올해 마지막으로 선보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중국의 암흑시대인 문화대혁명 시기로 시대상을 변주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건 시대상을 초월하는 셰익스피어 캐릭터의 보편성 때문이다.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상대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목소리에 심장이 마구 뛰는 십대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수성을, 강필석과 전미도라는 삼십 대 두 배우는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주 주인공의 여정을, 질풍노도처럼 내달리는 사랑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통통 튀는 재치발랄한 십대의 감수성을 몸짓과 언어, 표정이라는 삼합으로 멋들어지게 표현한다.
강필석과 전미도의 연기 앙상블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 캉화화를 연기하는 고수희 배우의 공 덕분이다. 원작에서는 서브 캐릭터로 치부되는 유모 역이 이번 공연에서는 비중이 대폭 강화한다. 육중한 몸으로 달음박질을 하고, 극이 가라앉을 만할 때 적시적소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고수희 배우의 맛깔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강필석과 전미도의 연기의 합에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로미오를 위해 뤄 선생이 보낸 전령이, 사실은 줄리엣의 달음박질에 미끄러지고 사람들의 싸움 가운데 뒤섞이는 바람에 그만 로미오에게 줄리엣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지 못했다는 연출은 극의 당위성을 풍부하게 이끌기에 충분했다.
이데올로기 혹은 계급 간의 갈등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십대 젊은이의 진정한 사랑임을 이번 국립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이념의 첨예한 대립, 계급 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도 어찌할 수 없는 건 순수한 열정과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국립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