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쇠고기 정국과 관련해 누리꾼들의 우스개 댓글이 유행이다. 그 중 하나가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라는 풍자일 것이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말이지만 비슷한 비유가 최근 우리 조직에서 떠돌고 있다는 사실에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KBS본부는 밖으로 나가서 싸우기보다 협회나 지역총국을 비롯한 조합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KBS 부산시지부 '부울노보', 5월 30일)

정연주 사장 퇴진에 집중하면서 공영방송 수호 투쟁으로부터 비껴서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박승규)가 산하 지부로부터도 호된 쓴소리를 듣고 있다. KBS본부 부산시지부(지부장 김병국)는 최근 발간한 노보에서 KBS본부 노조의 투쟁 방향과 언론노조 장악 시도를 정면으로 비판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연주 퇴진 매몰되지 말고 큰 틀의 연대로 공영방송 수호투쟁 동참해야"

KBS본부 부산시지부는 지난달 30일 발간한 'KBS 부울노보'에서 "KBS본부 노조는 누구와 싸우는가"라고 반문하며 "KBS본부가 내부와의 분쟁을 그만두고 공영방송 수호투쟁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사장 퇴진 투쟁에 매몰되지 말고 KBS 안팎의 단체들과 연대해 공영방송 수호를 위한 큰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호소다.

부산시지부는 "KBS본부 노조는 밖으로 나가서 싸우기 보다 협회나 지역총국을 비롯한 조합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며 "소통 불능 상태는 아니더라도 분명 소통 왜곡의 단계까지 와 있는 듯 하다. 충돌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하는 본부가 심심하면 스스로 파이터가 되어 내부의 한 곳을 공격하게 된 것은 분명 조직과 정보를 수용하고 제어하는 과정에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부산시지부는 특히 KBS본부가 정연주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과 언론노조 조합비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날을 세웠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부산시지부가 지난달 30일 발간한 'KBS부울노보'
"언론노조 조합비 납부 거부는 쪽팔린 일"

부산시지부는 우선 정 사장 퇴진 운동이 갖는 몇가지 문제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KBS본부는) '어느 사장이 올진 모르겠지만 온 몸으로 싸우겠다고' 한다. 대통령과 정권이 임명한 사장은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방송 전문가, 낙하산 반대 등 몇가지 조건을 내걸고 꼭 쟁취해 내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부가 내세운 여러 조건에 부합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어벌쩡하게 내건 차기 사장이 조건이나 대상도 없이 칼을 갈고 있다는 선언은 아무리 봐도 제스처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사장퇴진 투쟁의 선을 이해하고자 해도 이런 대상도 없는 액션은 '사장 추대 운동'의 다른 모습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부산시지부는 "과연 대상도 없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괜히 사장에 대한 막연한 염증에 기대어 현재의 판을 무책임하게 뒤집을 생각을 하지 말고 정말 KBS 발전을 이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과 로드맵부터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부산시지부는 또 언론노조 조합비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KBS본부를 향해 "쪽팔린 일"이라고 일갈하며 "조합비 납부가 의무가 될지언정 거부가 권리는 될 수 없다. 당신들이 그렇게 원했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냥 조용히 납부하시라. 주장은 그 이후여야 옳다"고 비판했다.

부산시지부는 마지막으로 "KBS본부 노조의 정체성과 리더십에 심각한 우려가 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나와서 소통하라. 제발 초심으로 돌아오라"고 거듭 당부했다.

KBS 내부 분열 확산…대전·청주·부산·창원시지부 노조, "KBS본부에 협력 못해"

부산시지부 뿐만 아니라 현재 대전·청주·창원시지부도 KBS본부 노조에 협력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며 일부 노조 중앙위원들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KBS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계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KBS 기자협회, PD협회, 경영협회 등 직능단체들도 KBS본부의 행보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 지난 4월 22일 비대위 출범식에서 정연주 사장을 상징하는 인형탈을 쓴 조합원 옆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박승규 본부장 ⓒ서정은
KBS 사내 게시판에도 본부 노조의 행보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지난 2일 한 조합원은 KBS본부를 향해 "지금 명박이나 조중동과 똑같이 정연주 몰아내기가 투쟁의 목표인가? KBS 이사진 물갈이에 대해선 왜 한마디도 안 하는가, 유재천씨 이사 추천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는가, 항간의 소문대로 K모씨와 A모씨를 미는 것인가"라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노조를 탈퇴하겠다"는 항의 글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언론노조, 조합비 납부 거부하고 있는 KBS본부에 조만간 징계 예정

현재 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는 지난해 7월부터 조합비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KBS본부에 대해 징계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KBS본부는 지난해 언론노조 회계부정 사건이 터진 이후 회계 투명성 강화 조치, 조합비 정상화 방안 등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조합비 납부를 계속 거부해 왔다.

한편 KBS본부는 오는 4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언론노조와의 관계 개선을 포함한 최종 투쟁 방향을 확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KBS본부는 지난달 27일 집행부 워크숍에서 정 사장 퇴진 투쟁 수위를 더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고 이 과정에서 투쟁 방향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집행간부 2명이 사퇴하는 등 내부 갈등과 반발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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