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가상의 인간이 현실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 이야기다. 디지털 휴먼은 말 그대로 인간의 모습을 띠고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가상 인간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사이버가수 아담(1990년대 후반)이나 보컬로이드(vocaloid) 시유(2012년)처럼 다분히 조악한 형상을 지녔으나, 갈수록 고도화되는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을 통해 이제는 실제 인간의 외모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극사실적인 형상 구현이 가능해졌다.

디지털 휴먼을 그 형상, 역할, 활동영역 등에 따라 크게 다음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브이튜버(VTuber)다. ‘virtual’과 ‘YouTuber’의 합성어로, 유튜버 역할을 하는 가상의 캐릭터를 지칭한다. 주로 2D 애니메이션 풍 캐릭터에, 실제 사람이 목소리, 그리고 모션캡처(motion capture) 기술을 활용한 몸짓을 더해 유튜브로 콘텐츠를 내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초의 브이튜버는 일본의 ‘키즈나 아이(キズナア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웹개발사 액티브8(Active8)이 2016년 11월 등장영상을 ‘A.I.Channel’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면서 세간에 존재를 알렸다. 당시 키즈나 아이는 영상을 통해 자신을 ‘버추얼 유튜버’라 소개했는데, 키즈나 아이 등장 이후 유사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함에 따라 ‘브이튜버’의 개념도 정립돼 갔다.

Kizuna AI The Last Live “hello, world 2022” (이미지 출처=키즈나 아이 유튜브 채널)
Kizuna AI The Last Live “hello, world 2022” (이미지 출처=키즈나 아이 유튜브 채널)

키즈나 아이는 2018년 일본관광국 산하 뉴욕사무소의 공식 홍보대사가 되고,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2021년 미국에서 투어 콘서트를 여는 등 꾸준히 폭넓게 활동 중이다. 2022년 8월 15일 기준 키즈나 아이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308만 명, 동영상 총 조회수가 4억 3,853만 회에 달한다. 일본에서 브이튜버들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기는 하나,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 브이튜버들이 속속 등장해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가령, 2019년 아시아 최대 애니메이션 행사인 ‘아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nime Festival Asia)’의 이벤트 게스트로 출연한 마야 푸트리(Maya Putri)는 인도네시아의 브이튜버다. 한국에서도 에이펀인터렉티브의 토끼 브이튜버 ‘아뽀끼(APOKI)’가 2019년부터 유튜브에 인기 대중음악 커버영상을 올리고, 실제 앨범을 내기도 하며, 여러 이벤트의 오프닝을 담당하는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활동을 펼쳐왔다.

둘째,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로, 가상공간에서 트렌드를 선도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이들을 뜻한다. 초기에는 주로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텔레비전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 그리고 메타버스로까지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다. 최초의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Brud)가 만든 ‘릴 미켈라(Lil Miquela)’로, 2016년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8월 15일 기준 303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릴 미켈라는 실제 인플루언서들이 그렇듯 친구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패션쇼를 보러 가며, 음악 축제를 즐긴다.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그는 프라다(Prada), 캐빈 클라인(Calvin Klein), 디젤(Diesel) 등의 패션 브랜드들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2019년 7월에는 패션지 <엘르(ELLE) 멕시코>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가상 패션모델로 주목받은 릴 미켈라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캡처=연합뉴스]
가상 패션모델로 주목받은 릴 미켈라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캡처=연합뉴스]

릴 미켈라 프로젝트가 성공함에 따라, 디지털 슈퍼모델 ‘슈두(Shudu)’, KFC의 ‘콜로넬(Colonel)’ 등 다른 버추얼 인플루언서들도 속속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활약이 눈에 띈다. 롯데홈쇼핑의 ‘루시’, LG전자의 ‘래아’, 그리고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의 ‘로지(Rosy)’가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지는 M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만든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2021년 7월 신한라이프 광고를 통해 얼굴을 알린 후 패션, 스포츠, 건강식품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21년 7월 26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신한라이프 15초 광고는 한 달 반도 되지 않은 9월 1일 1,000만 회를 훌쩍 넘기기도 했다. 9월 1일 기준 1,100만 회가 넘는다. 인스타그램 계정 ‘로지그램’의 팔로워 수도 2022년 8월 15일 기준 14만 2,000명에 이른다.

셋째, 버추얼 아티스트(virtual artist)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주로 마케팅이나 민감한 사회이슈에 대한 의견제기 등에 활동의 중심을 둔다면, 버추얼 아티스트들은 화려한 노래와 춤 등을 선보이며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약한다. 버추얼 아티스트의 본격화를 알린 것은 2018년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캐릭터들(아리, 아칼리, 카이사, 이블린 + 세라핀)로 결성된 아이돌 그룹 ‘K/DA’다. 실제 아티스트들(각각 (여자)아이들 미연·소연, 자이라 번스·울프 타일라, 매디슨 비어·비 밀러 + 렉시 리우)이 개별 캐릭터에 대응해 노래를 부르고 동작을 입혔다는 점에서 K/DA는,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버추얼 아티스트라고도 볼 수 있다.

2020년 11월 데뷔한 ‘에스파(aespa)’의 경우, 멤버들이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 아이(ae)를 만나 새롭게 살아간다는 세계관을 지녔다. 아이는 인간의 정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가상세계 속 또 하나의 자신이다. K/DA에서 각기 다른 활동을 펼치는 게임 캐릭터와 아이돌/가수가 임시적으로 결합했다면, 에스파에서는 가상의 아이와 현실 멤버가 존재론적 관계를 지닌다. 한편, 2021년 3월 첫 뮤직비디오를 선보인 ‘이터니티(Eternity)’는 인공지능 그래픽 전문기업이 직접 촬영한 영상과 실사형 가상 인물 이미지를 합성해 만든 가상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이다. 에스파가 현실의 인물을 토대로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함께 활동한다면, 이터니티의 경우 현실 인물이 가상 캐릭터를 위한 재현적 토대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2022년 6월 데뷔한 아이돌 그룹 ‘슈퍼카인드(SUPERKIND)’에는 4명의 현실 멤버에 실사형 풀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버추얼 아티스트 멤버(세진)가 포함돼 있다. 가상과 현실 멤버가 함께 활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K/DA, 에스파와 결이 또 다르다.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세 유형으로 나누기는 했지만, 각 유형이 완전히 배타적으로 구분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키즈나 아이는 유튜브를 통해 주된 활동을 펼치는 브이튜버지만, 각종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이벤트들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버추얼 인플루언서, 앨범을 내고 활동한다는 점에서 버추얼 아티스트 같은 특징도 갖는다. 갈수록 디지털 휴먼의 역할이나 활동영역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이는 디지털 휴먼이 종합적인 스타나 셀러브리티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됨을 시사한다.

디지털 휴먼은, 일련의 지식재산권 묶음(IP) 활용범위가 매우 넓고 유연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기존 캐릭터 산업에서의 IP는 다양한 미디어·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제작, 권리임대(저작권)에 기반한 2차 저작물 유통, 상표권 기반 연계상품(완구, 문구, 디지털 소품, 의류, 식기, 식음료 등) 제작·유통, 광고·마케팅 모델 활동과 같은 제휴사업 전개 등에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휴먼의 IP 활용은 음반·동영상 출시, 공연, 보다 강한 설득력을 갖는 광고·마케팅 활동, 이벤트 참여나 진행 등 다양한 제휴 및 부가사업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새로운 이용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캐릭터 활용주체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새로운 향유문화를 형성한다는 점도 디지털 휴먼의 강점으로 꼽힌다. 이를테면 특정 기업이나 개인은 버추얼 인플루언서 활용을 마케팅에 활용함으로써, 자신들이 좀 더 유행에 민감하고 기술 친화적임을 보여줄 수 있다. 버추얼 아티스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혹은 가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며 더 쉽고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관계 맺고 싶어 하는 팬들에게 전에 없던 즐거움을 준다. 디지털 휴먼 활용은 그 자체로 이슈가 됨은 물론이고,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조화를 통해 이용자로 하여금 보다 깊은 몰입감을 주기에도 유리하며, 차세대 캐릭터 팬들과의 접점을 넓혀줄 수 있다.

가상인간 모델 로지 [신한라이프 제공=연합뉴스]
가상인간 모델 로지 [신한라이프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디지털 휴먼의 강점으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은, 매니지먼트 차원의 리스크 감소이다. 현실의 스타나 인플루언서들은 각종 구설수와 사건사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살아 숨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로 인한 멤버의 일탈이나 이탈이 매니지먼트 차원에서는 분명 부담이 된다. 하지만 악플에 대처하거나 사생활 이슈에 따른 위험부담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휴먼은 그런 점에서 부담이 없는 존재다. 그들은 늙지 않는 데다, 쉬지 않고 일할 수도 있다.

물론 디지털 휴먼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뒤에서 노동하는 현실세계의 진짜 인간들이 필요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휴먼이 전면에 부각될수록, 뒤에서 실존하는 누군가 해야 할 일들이 늘어간다. 나아가 좀 더 본질적으로, 디지털 휴먼을 실제 인간과의 비교 관점에서 논의하려 하는 담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의 힘을 빌려 실제 인간의 외모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극사실적인 형상을 띠게 되었다 해도 (물론 일부의 디지털 휴먼은 대부분의 브이튜버처럼, 일부러 극사실적인 형상을 띠지 않기도 한다) 그 본질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닐까. 그 캐릭터에 별도의 인격을 부여하고, 늙지 않는다느니 성실하다느니 등 인간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일종의 기획과 콘셉트의 결과일 수 있다.

디지털 휴먼은 디지털 신체에 대한 아이디어가 ICT·엔터테인먼트·마케팅 산업, 그에 대한 수용문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어떻게 교호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 신체의 물질성이 디지털 정보·데이터로 포화되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대부분의 스타나 셀러브리티들 사이에서 디지털 휴먼이 갖는 지위는, 적어도 일부 영역에서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된 신체와 오리지널 신체를 구분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짐을 시사한다. 기존의 스타나 셀러브리티들은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것을 허구의 세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떠올리고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디지털 휴먼은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것을, 기술과 인격화를 동원해 허구의 세계에서 직접 실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보다 풍성하고 입체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디지털 휴먼의 변화양상을 추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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