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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만 때리는 민주당, 2002년 노무현 전략이 필요하다[기자수첩] ‘왜 문재인이어야 하는가’에 답하지 않는 민주당
윤다정 기자 | 승인 2012.11.29 23:41

“브리핑이 많지요? 괴로우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거 초반이라 구도를 잡느라 그렇습니다.”

29일 오전 민주당 당사 기자실. 박용진 대변인, 윤호중 전략기획실장, 김현미 소통2본부장, 홍영표 종합상황실장에 이어 진성준 대변인이 기자실에 들어섰다. 미안하다는 듯 운을 뗀 진성준 대변인이 본격적으로 브리핑을 시작하자 조건반사적으로 타닥거리는 타이핑 소리가 기자실을 울렸다.

   
▲ 제18대 대통령 공식선거운동 기간 이틀째인 28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충남 예산군 역전시장에서(왼쪽),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대전역앞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뉴스1

각 대선 후보 캠프가 공식 선거운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지 사흘째로 접어들었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은 논평과 브리핑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며 상대 후보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다.

민주당의 경우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대체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골자로 한다. 박근혜 후보는 ‘유신의 딸’이고, 이명박 정부 민생파탄의 공모자이며, 수첩 없이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수첩공주’인데다가, 도덕성까지 상실한 ‘불통’ 후보라는 것이다.

선거 초반, 민주당이 잡고 있는 대선 구도는 ‘박근혜 때리기’다. 양자대결 구도의 선거에서 어쩔 수 없다. 워낙 약점이 많은 후보인 탓에 아마 선거 기간 내내 때려도 소재가 고갈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문제다. 그것뿐이라는 게 문제다.

민주당은 수많은 브리핑과 논평을 통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앵무새처럼 반복해 말하고 있다. 선거전은 달궈지고 있다. 헌데, ‘그렇다면 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때리는 건 보이는데, 만드는 건 보이지 않는다.

29일만 하더라도 김현미 본부장이 “문재인 후보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문재인 후보의 비전과 공약을 그나마 구체적으로 언급했으나 종일 이어진 상투적인 ‘박근혜 비판’에 가리면서 빛이 바랬다. 평등, 공정, 정의로 이어지는 문 후보의 비전은 충분히 매력적인데,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는 인상이다.

현재 민주당은 지난 2007년 대선과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 역설하며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펼치는데 주력했다. ‘대운하’나 ‘747’ 공약이 워낙 형편 없어 불가피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집권 후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은 결과는 참혹했다. 상대의 프레임 위에서 싸운 결과는 암담했다. 유권자들은 이명박 후보가 ‘747 공약’을 내세웠다는 것은 기억할지언정 정동영 후보가 어떤 슬로건을 내걸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 2002년 12월 6일자 신문에 실린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신문광고.
민주당은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전략을 더듬을 필요가 있다. 노무현 후보는 캠프에 “한나라당이 어떤 흑색선전과 폭로전을 하더라도 일체 대응하지 말고, 우리당도 이 후보 개인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을 일체 제기하지 말 것”, “우리당 선대위가 일일이 맞대응하기 보다는 정책중심, 미래지향적인 선거운동을 할 것”을 요청했다.

이때 노무현 후보는 단순히 ‘포지티브 선거’만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참신함과 비전이 있음을 들어 유권자를 설득하는 한편, 당시 한나라당의 ‘구태’ 이미지를 공격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예가 “네, 한나라당 후보는 낡은 20세기와 계속 상대하십시오. 노무현은 21세기와 상대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2002년 12월 6일자 신문광고다. 광고 하단에는 “아직도 DJ와 경쟁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낡은 폭로극에 매달리고 계십니까?”라는 소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진다.

“한나라당의 철새 정치, 공작 정치, 터무니없는 비방 정치, 돈 선거, 조직 동원 선거, 이것이 바로 낡은 정치입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비전을 설계하기에도 바쁩니다.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 동북아 시대의 중추국가로 만들고 동서화합·남북번영의 새 시대를 열며 지방분권으로 전국을 골고루 발전시켜 가는 일… 어느 하나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노무현은 미래로 갑니다. 21세기와 상대합니다.”

노무현 후보는 이 광고를 통해 네거티브 공세를 지양하면서도 상대방을 ‘구태’로 규정해 도태시키는 세련된 공격을 펼쳤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2년, 노무현 후보의 방식으로 기존 정치세력을 ‘구태’로 몰아 ‘새로움’의 아이콘을 차지한 것은 민주통합당이 아닌 무소속 안철수 후보였다. 그 안철수 후보가 “이제 야권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라 선언하며 사퇴한 지금,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의 유산’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지만 아직 ‘창조적 수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23일 밤 서울 종로구 공평동 진심캠프 기자실에서 후보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안 후보가 못다 이룬 정치쇄신의 꿈을 이어 나가겠다고 수차례 선언했으나, 선언적 의미 이상의 파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안 후보를 적극적으로 대선 현장으로 호출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다.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가 남긴 유산’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면 민주당의 이번 대선 전망은 어두워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비도덕성과 역사인식의 부재를 비판하며 수동적으로 대선에 임한다면, 민주당은 안철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열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새누리당과 그 전신인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었으며, 독재자의 유산을 받아 정치 활동을 했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콘크리트’라는 점은 현실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모두가 아는 사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박 후보가 ‘유신의 딸’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를 지지하는, 혹은 문 후보에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서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당이 지금 잡아야 할 구도는 ‘문재인이 과연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내놓는 것이다. 시간은 벌써 사흘이나 흘렀다.

윤다정 기자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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