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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노조를 버리고 갈 순 없다"KBS PD 긴급 총회 "정 사장 퇴진, 결코 대안일 수 없어"
서정은 기자 | 승인 2008.05.29 16:05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KBS 노조를 버리고 갈 수는 없다. 정 사장 퇴진이 아니라 공영방송 장악 음모 반대 투쟁의 구심점에 설 수 있도록 어렵지만 견인해내야 한다. 현업에서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으로 PD저널리즘을 구현해 국민의 지지 여론을 얻는 일이 시급하다."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현 정권의 정연주 사장 퇴진 압력,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 KBS 2TV 분리를 통한 방송 민영화와 구조조정 등 KBS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 상황을 공유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KBS PD협회(회장 양승동)가 29일 낮 12시 긴급 총회를 열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정권 차원의 움직임을 '공영방송 무력화 시도'로 규정하고 감사원의 표적감사, KBS 2TV 분리 정책, 국가기간방송법 논의 등을 우려하는 한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집행부의 투쟁 노선의 한계와 문제점 등을 주제로 2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 KBS PD협회(회장 양승동)는 29일 낮 12시 KBS 신관 5층 대회의실에서 '감사원의 표적 특별감사와 KBS 2TV 해체 시나리오' 및 '정연주 사장 사퇴론'을 주제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긴급 총회를 열었다. ⓒKBS PD협회  
 
"서기원 사장 반대하던 90년 '4월 투쟁' 이후 KBS 최대 위기"

참석자들은 현재의 KBS 상황이 지난 90년 '낙하산 사장' 서기원씨 임명을 반대하던 '4월 투쟁' 이후 최대 위기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정보팀 현상윤 PD는 "이명박 정부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 그리고 진보적인 인터넷매체에서 자신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판단, 하루빨리 방송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하고 있다"며 "KBS 장악과 2TV 분리 시도는 KBS 구성원의 생존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의 미래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다. 구심점이 되지 못하고 있는 KBS본부에게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 우리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가 '표적감사'라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정 사장 관련 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퇴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한 중견 PD의 의견도 있었으나 이날 총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PD들은 "정 사장 퇴진이 현재의 KBS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에 뜻을 모았다.

이같은 인식은 정 사장 퇴진 투쟁에 주력하고 있는 KBS본부 집행부의 투쟁 노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KBS 노조, 명분 없는 정 사장 퇴진 투쟁에서 탈피해야"

KBS본부 중앙위원인 드라마기획팀 박기호 PD는 현 노조 집행부의 기본 인식과 투쟁 방향에 오류가 있다면서 "KBS본부는 현재 구심점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분열돼 있다. 대전·청주·부산·창원지부는 노조 집행부에 협력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일부 중앙위원들도 집행부에 맞서고 있다. 언론노조는 KBS본부의 조합비 납부 거부 등을 이유로 박승규 본부장과 부본부장의 징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KBS본부의 기본적인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낙하산 사장 반대와 정 사장 퇴진' 서명운동에 3천여명이 서명했다지만 조직과 돈으로 독려된 측면이 있다. 구역별로 백만원 이상 진행비가 지급되고 수차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서명이 독려됐다. 서명이 많이 이뤄진 구역에는 인센티브도 지급됐다. 이것을 KBS의 민의로 포장해 밀어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편성기획팀 이태경 PD도 "KBS본부가 공영방송 수호를 위해 싸울 생각이라면 표적감사 반대와 공영방송 장악 음모 저지 투쟁에 주력을 해야 한다"며 "정 사장을 퇴진시키고 나서 공영방송을 수호하겠다는 현 노조 집행부의 단계론적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 현재 옥죄어오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KBS PD협회  
 
"차기 사장 거론되는 김모씨, 그의 입성을 받아들인다면 PD로서 영혼 파는 일"

정 사장 퇴진 압력과 맞물려 현 정권 출범 과정에 몸 담았던 특정 인사가 유력한 차기 사장으로 거론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라디오팀 박천기 PD는 "현 노조 집행부의 정 사장 책임론에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또다른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라면 용납할 수 없다"며 "차기 사장으로 파다하게 소문이 돌고 있는 김모씨가 2TV 분리를 막아내고 수신료를 현실화한다고 한들 그것이 진정으로 KBS가 사는 길인가. 이것은 PD로서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총회에서는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KBS본부에 대한 불만과 성토, 한계에 대한 비판 의견이 압도적으로 제기됐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본부를 최대한 설득하고 견인해내야 한다는 현실론에 무게가 실렸다. KBS 내부 직능단체들이 노조 집행부를 압박해 이끌어내면서 실국별로 공감대를 형성해 아래로부터의 동력을 모아내는 한편, 외부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관계 회복과 대국민 선전전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국민적 공감대와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라디오팀 국은주 PD는 "정 사장이 왜 걸림돌인지, 그가 퇴진하면 공영방송의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인지, KBS에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KBS 위기를 돌파하려면 명분이 필요하고 또한 여론을 얻지 못하면 백전백패다. 우리가 제대로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KBS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형성돼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 집행부 최대한 압박·견인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

   
  ▲ ⓒKBS PD협회  
 
이태경 PD는 "KBS본부가 현재 설치한 '정연주 퇴진 요구' 플랭카드의 절반을 방송장악 음모 저지로 바꿀 것부터 요구해야 한다"며 "KBS본부가 이를 거부한다면 우리의 문제의식을 담은 의견광고를 별도로 내는 방안을 제안한다. KBS 구성원들이 정권의 방송장악 움직임에 얼마나 분노하고 우려하고 있는지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알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대박과 코드박살에 매몰되면서 정작 KBS의 미래, 구성원들의 단결을 훼손시키는 노조 집행부를 믿지 못한다. 새 사장 영입과 관련해서도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한 드라마기획팀 이강현 PD는 "표적감사를 비롯한 현 정권의 노골적인 방송장악 음모에 대응하기 위해 직능단체를 중심으로 노조까지 포함해 'KBS 사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PD협회는 이날 총회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해 결의문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후속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박승규)는 언론노조와의 관계 개선 문제를 포함한 향후 투쟁 방향과 관련해 다음달 4일 열리는 비대위 회의에서 최종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서정은 기자  punda@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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