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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어떻게 살아났나[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 | 승인 2012.10.28 10:16

이병헌은 참 얄미운 배우다. 다 가졌기 때문이다. 보통 배우들은 연기면 연기, 외모면 외모, 이렇게 어느 한 가지 특성에 치우치게 마련이다. 송강호와 송승헌의 특징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이병헌은 이 두 가지를 다 가졌다.

이병헌에게는 존재감, 카리스마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고,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극을 이끌어가는 힘 말이다. 이런 매력은 단순하게 얼굴이 잘 생긴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힘이다. 외모로만 따지면 정우성의 조건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정우성은 키가 크다), ‘아이리스’ 시리즈를 보면 이병헌의 카리스마가 더 강했다. 게다가 이병헌은 ‘목소리’까지 가졌다.

   
 
이런 이병헌의 힘이 ‘광해’ 천만 흥행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만약 이병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흥행이 폭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광해’는 그 전에 개봉된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설정이 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별로 화제가 되지 못했고 ‘광해’만 크게 흥행했다. 이병헌의 스타파워를 빼놓고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내용 자체도 한국 관객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설정이었다. 태종이 어전회의를 하던 중에 황희 정승에게 이단옆차기를 한다는 식의 황당한 설정이었는데, 한국인은 이렇게 황당한 설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용의 차이는 일단 영화를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고, 개봉 당시의 화제성 차이엔 역시 주연배우의 스타파워가 크게 작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해가 이병헌의 스타파워가 발휘된 사례인 것이다.

이병헌의 특징은 또, 멋있는 캐릭터와 가벼운 캐릭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아이리스’를 비롯한 최근 작품들에서 무게 잡는 캐릭터를 맡았었던 이병헌은 ‘광해’에선 껄렁껄렁한 천민 역할을 맡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 천민 캐릭터가 이병헌과 광해를 모두 살렸다. 이병헌은 최근에 수많은 안티를 몰고 다녔었다. 인터넷에 이병헌 관련 기사가 뜨면 악플이 줄줄 달렸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광해’ 이후에 현저히 줄었다.

여기엔 이병헌이 보여준 배우로서의 능력도 작용했겠지만, 동시에 캐릭터의 힘도 크게 작용했다. ‘광해’에서 이병헌의 천민 캐릭터는 위에서 관객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낮은 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광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소탈한 모습은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한다.

싸이의 ‘연예인’ 정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정신이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도 싸이는 동네 바보형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병헌도 ‘광해’에서 관객과 작품을 위해서라면 망가지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이 악플러들마저 개심시키고 있다.

요즘에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지쳐가고 있었다. 싸이는 관객을 위해 자기자신을 희화화했는데, 한국의 지도자들은 자기자신을 희화화하는 건 고사하고, 일개 네티즌이 권력자를 희화화하는 정도에도 발끈해서 소송을 걸어댔다. 이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천민 광해 캐릭터가 관객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이병헌과 싸이가 사람들 앞에서 망가지자 오히려 사람들이 그들을 높여주고 있다. 반대로 스스로 높아지려는 정치 지도자들은 대중의 냉소만 받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병헌의 망가짐이 ‘광해’의 폭발적 흥행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자신의 목에 혹시 ‘기브스’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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