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약관의 나이에 KBS 공채를 통해 화려하게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가 있다. 그러나 화려했던 데뷔와 달리 정작 그의 개그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역할로 연예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무명' 딱지를 제대로 뗄 수 있는 운명적이고도 고마운 프로그램을 만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메뚜기탈'을 쓰고 리포터를 하는 시절도 그때였을 것이다.

<서세원쇼>를 통해 개그 꽁트보다는 토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그 남자는 이후 인지도를 넓혀가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MC로 맹활약하게 되고, 마침내 대한민국 최고의 진행자로 거듭나기 이른다. 이것이 우리도 익히 들여 잘 알고 있는 유재석의 성공담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명언이 있다. 조그마한 도시 국가에서 당시 유럽,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는 강력한 로마 제국이 건립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어쩌면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이 명언을 제대로 입증해줄 수 있는 이는 유재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그에겐 상당한 무명 기간이 있었고, 그 시기에 개그맨을 포기할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연예인 생활을 그만 두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불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리는 '메뚜기탈'도 군말 없이 쓰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해왔다. 유재석이라는 이름을 알린 이후에도, 누구나 인정하는 유명한 MC가 된 이후에도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그는 단순히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는 MC가 아니라, 미래의 트렌드를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질주하는 안목도 있었다. 때문에 유재석이 맡은 프로그램은 여타 예능에 비해 도전 정신과 새로운 시도가 강했다. 그 중 하나가 MBC <무한도전>이고, 오늘날 <무한도전>과 유재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유재석이 촉망받는 MC로 각광받는 시기에는 게임 버라이어티, 연애 버라이어티가 트렌드를 지배하던 때였다. 당시 유행하던 프로그램은 유재석이나 강호동, 이휘재 등 당대 내로라하는 예능인들이 모여 게임을 하는 형식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라인업이지만, 당시에는 그게 가능했다.

그런데 SBS <일요일이 좋다-X맨>, KBS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MC 대격돌 공포의 쿵쿵따> 등 그 당시 유행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잘나갔던 유재석은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았던 포맷. 그러니까 '평균 이하 남자들의 무모한 도전' 콘셉트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 이전에도 KBS <천하무적 외인구단> 등 남자들이 유쾌한 도전을 하는 프로그램을 맡아 왔던 유재석은 그가 원하는 콘셉트에 제대로 부합하는 MBC <무모한 도전>의 진행을 맡게 된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의 시청자 반응은 영 좋지 못했다. 토요일 황금 시간대 방영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늘 한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당시는 유재석, 강호동 등 최고 MC들과 유명한 스타들이 뭉쳐 다녀야 할 때인데, <무모한 도전>에는 예능 시청자들에게 낯익은 얼굴이 유재석뿐이었다. 당시 <무모한 도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예능에 발을 디딘 정형돈과 노홍철은 얼굴도 낯설지만, 당시 기준에서 봤을 땐 예능에 적합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무모한 도전>이 매회 벌이던 무모한 도전은 시대를 상당히 앞서간지라 시청자들이 새로운 예능 형식에 적응하기까지는 꽤나 어려움이 뒤따랐다.

1년 가까이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한지라, 결국 <무모한 도전>은 프로그램 존폐 위기에 놓인다. 그때 한 PD가 "자기가 프로그램을 살려보겠다"면서 자원한다. 그 PD의 한마디가 오늘날 대한민국 예능사에 길이길이 남을 거족의 프로그램 서문을 연 것이다.

김태호PD가 프로그램을 맡은 이후 <무모한 도전>에서 <무한도전>으로 변경한 평균 이하 남자의 기가 막힌 도전은 유재석의 예측대로 대한민국 예능 트렌드를 휩쓸었다. 과연 <무한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팔짱만 끼고 바라보던 사람들도 결국은 그 프로그램에 열광했고, <무한도전> 형식에 착안한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뤘다. <무한도전>의 엄청난 성공 이후 <무한도전> 출연진들은 예능 스타가 되었고, 그 사이 진행을 맡는 족족 성공 궤도에 올려놓는 유재석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최고의 진행자로 우뚝 서기에 이른다.

이 정도 위치에 서면 '올챙이 개구리 적 모른다'는 속담이 나돌 법도 하다. 이제 유명해지고 배가 부르니 마음 느긋하게 쉬어갈 법도 하고 더 나아가 나태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유재석, <무한도전>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유명세를 타기 전이나 후나 한결같았고, 남들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새로운 변화를 향해 질주해왔다. 때문에 유재석과 <무한도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늘 참신한 아이템으로 중무장되어 있다.

그런데 배가 부르다보면 고생보다도 익숙한 것, 쉬운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의 특성상 이제 어느덧 40줄에 다다른 유재석도 때로는 쉬고 싶고 그만한 위치에 서있는 이들처럼 편안한 길만 다니고 싶지 않을까. 게다가 그는 너무 유명해서, 아들과 함께 사람 많은 놀이공원 같은 데는 가지 못하는 말 못할 고충도 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작년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시청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자신을 불러주는 이 없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자신은 행운아다. 때문에 힘들다고 푸념할 수도 없다는 것이 유재석이다. 그리고 그는 <무한도전 300회- 쉼표 특집>에서 숨겨두었던 심경을 털어 놓는다.

"<무한도전>이 없으면 왠지 나도 없어질 것 같다."

그렇다. 유재석에게는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있지만 <무한도전>은 그의 상징이자, 유재석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말해주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으나, 차츰 진정성과 기발함을 인정받으며 만인이 인정하는 최고로 거듭난 과정만 놓고 봐도 <무한도전>과 유재석은 참 많이도 닮아 있다. 유재석뿐만 아니라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길, 하하. 그리고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제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고, 그 누가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누가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을 또다시 볼 수 있을까.

그 <무한도전>을 지키기 위해서 유재석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꼬리잡기' 특집 이후 체력적 한계를 절감한 유재석은 담배도 끊고 체력 강화에 돌입한다. 금연은 엄청난 정신력과 인내력을 요하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러나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위해 그 힘들다는 금연까지 하였고, 이후 그의 엄청난 체력 향상은 SBS <런닝맨>의 '유리스 윌리스'(할리우드 액션 노장 브루스 윌리스를 빗댄 극찬)에서도 발휘하기에 이른다.

<무한도전> 초기 당시 지금처럼 큰 반응이 없었을 때,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힘이 되어준 것도 유재석이었다. 과거 하하와 일면식조차 없었고 녹화가 생각만큼 잘 안 되어 시무룩하고 있었을 때, 친히 하하를 자신의 차에 태워 격려해준 적도 있었고, <무모한 도전> 시절 신인이라 매니저가 없던 노홍철을 위해 바쁜 스케줄에도 기꺼이 운전을 해준 이도 유재석이었다. 7년이 지난 후 당시 자신들에게 따스한 배려를 해준 이유를 묻는 하하와 홍철을 위해 유재석은 그저 "좋으니까. 너네를 보면 내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정이 간다"라며 웃는다.

아무런 이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들었던 무명 시절을 떠올리며 잘해보려고 해도 일이 잘 안 풀리는 이들을 격려하고 힘이 돼 주었던 유재석의 한마디는 수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엄청난 '무한재석교' 신도를 양산한다. 생각만큼 프로그램이 잘 안 되었을 때도 포기하기보다 본인 스스로가 앞장서서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주도해나갔기에 유재석이 맡은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도 당연하다.

언제나 한결같은 성실함과 도전정신을 유지하는 유재석에게 <무한도전>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정상에 오른 이후에도,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재석과 <무한도전>. 참 많이 닮았다.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한 자세도, 새로운 변화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도. 생각만큼 일이 잘 안 풀리는 이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도. 변화를 위해 오래 지속한 습관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그래서 유재석과 <무한도전>이 좋다. 그저 자꾸 마음이 가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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