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회사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지섭의 간지에 기댄 느와르'로 압축된다. 무엇을 입어도 태가 난다는 소간지에 피범벅을 묻힌 영화는 시종일관 소지섭의 극강 비주얼에 초점을 맞추며 <아저씨> 원빈을 능가한다는 소지섭의 액션 본능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 하지만 <회사원>은 살인청부업자를 회사원에 빗댄 남다른 센스와 신인 감독임에도 스타일리쉬한 연출미가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는 부족함이 없다. 주연배우 소지섭은 원톱 주연으로서 리암 니슨도 울고 갈 정도의 액션 감각을 뽐내는 와중에도 매 장면 화보를 찍는 듯한 미친 비주얼로 보는 이들의 눈을 호강시킨다. 거기에 어린 시절 연모하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소지섭의 진한 눈빛은 숨겨왔던 모성애까지 자극할 정도다. 또한 공교롭게도 <유령>에 이어 소지섭과 투톱을 이루게 된 미친소 곽도원은(드라마 <유령>보다 <회사원>이 먼저 크랭크업되었다) <범죄와의 전쟁>보다 더 때려주고픈 얄미운 역할을 맛깔스럽게 소화한다.

그런데 나무랄 데 없는 배우들의 호연과 <테이큰>, <아저씨>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 액션과 미쟝센에도 불구하고 <회사원>은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기분을 안겨준다.

일단 <회사원>은 형도(소지섭 분)가 그토록 따르던 조직을 배신하게 되는 '개연성' 자체가 떨어진다. 물론 형도가 다니는 회사는 비리 투성이 기업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하루라도 빨리 망해야하는 극악무도한 기업이다. 지금까지 상부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깔끔히 처리했던 형도는 일처리 이후 자기 손으로 죽어야 마땅한 라훈(김동준 분)을 어떤 이유인지 살려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라훈의 어머니는 형도가 어린 시절 남몰래 연모하던 미모의 여가수 유미연(이미연 분)이다. 이제는 잊혀진 가수로 힘겹게 살고 있는 미연을 보고 소년 시절 순수했던 감성으로 되돌아간 형도는 미연과 그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다름없었던 회사에 총구를 겨눈다.

그런데 소년 시절 짝사랑하던 미연이 라훈의 엄마인 것은 형도가 훈을 살려준 이후 알게 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형도는 왜 조직에서 죽이라는 훈을 굳이 살려둔 것일까? 한창 때에 킬러로 들어와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꿰게 된 자신의 10년 전을 보는 것 같아서? 아니면 그동안 모아둔 돈을 어머니께 대신 보내달라는 효심에 감동해서?

형도는 피붙이 없이 자라 지난 10년간 손에 피를 묻히면서도 전혀 '죄책감'따윈 느껴보지 않았을 냉혈한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훈' 때문에 처음으로 조직의 명령을 배반한 형도는 그 이후 '훈'의 엄마를 만남과 자신의 사수를 죽여야 하는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갈등 속에서 조직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마침내 자신의 어버이와 같았던 조직을 떠나고자 한다.

사람 간의 정이 뭔지 몰랐던 '형도'가 '훈', 정확히 말하자면 '미연'을 통해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내용은 이야기 구도상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지만 드라마적으로 충분히 이해 가능한 소재와 맥락들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 형도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조직을 배반해야하는지 이유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물론 <테이큰>과 <아저씨>도 왜 리암 니슨과 원빈이 악당들과 싸우는 명확한 이유가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애초부터 악당들을 응징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주어졌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인신매매범과 맞서 싸웠던 리암니슨 옹은 두 말할 나위 없고, 단지 '아저씨'의 마음으로 아끼는 이웃 소녀를 극악무도한 범죄집단에서 구출하는 전직 특수요원의 활약도 아이돌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삼촌의 자세로 그럭저럭 이해가 간다.

그러나 형도가 훈을 구해준 명확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회사원>은 뒤에 형도가 훈을 지켜줄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 등장에도 불구하고 끝을 모르게 달려나가는 형도의 행동에 계속 물음표만 남긴다. 거기에다가 형도의 변심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나가야 할 로맨스는 비주얼은 훈훈하지만 왜 형도가 목숨 걸고 '미연'을 지켜야하는지 애절한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미연의 가족을 위한 형도의 희생은 <테이큰>과 <아저씨>처럼 가슴 절절한 감동이라기보다 ‘사족'이라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스타일리쉬한 연출에서 두드러지는 소지섭 특유의 간지는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이미 <유령>을 통해서 이연희를 제치고 소지섭과 투톱을 이룬 곽도원의 재회는 심각한 긴장감 속에서도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회사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이는 소지섭이지만,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이는 놀랍게도 '훈' 역할을 맡은 김동준이다.

'제국의 아이들'(이하 '제아') 출신 김동준은 이번 <회사원>이 그의 첫 연기 도전이다. 연기 첫 도전에 대형 배급사 쇼박스가 투자하고 소지섭, 이미연 등 톱배우들이 즐비한 <회사원>에 당당히 이름을 내민 김동준은, 상대가 소지섭임에도 불구하고 신인답지 않은 강렬한 등장과 총격전으로 시선을 제압한다.

사실 '제아'는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 있는 그룹은 아니다. 오히려 탁월한 예능감으로 일찌감치 스타덤에 오른 '황광희'가 그룹 '제아'보다 더 유명할 정도였다. 그동안 김동준도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남자 한가인, 아이돌 육상대회 등을 통해 남다른 달리기 실력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광희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파급적으로 다가갈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광희' 혼자 먹여 살린다던(?) '제아'에 생각지도 못했던 비범한 인물이 나왔으니 이름 하여 올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해를 품은 달>에서 꽃도령 허염으로 단숨에 연기돌로 급부상한 임시완이다. 그 뒤 <적도의 남자> 아역으로 출연 꽃미남 못지않은 뛰어난 연기 신공을 발휘한 임시완은 현재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로 주목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번에는 임시완의 뒤를 이어 김동준이 새로운 연기돌로 관객의 눈도장을 찍기에 이른다.

솔직히 애초 <회사원>의 김동준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소지섭 원톱 주연에, 소간지 비주얼과 곽도원 악역 연기를 보러간 영화였고, 연기로서는 생짜 신인인 김동준이 행여나 작품에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닐지 사뭇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은 기우였다. 차라리 형도와 미연의 어설픈 로맨스가 아니라, 형도와 훈의 감정 교류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더 개연성 있고 납득 가능한 스토리가 완성되지 않았을까. 로맨스 부족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이미연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고, 오히려 '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았을 법한 영화 <회사원>. 차세대 예능돌로 확실히 입지를 굳힌 '황광희'에 이어, 임시완, 김동준 등 퀄리티 있는 연기돌을 계속 배출해내는 제아 멤버들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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