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방영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중년의 미학이란 부제로 30년 가까이 끈끈한 우정을 지속해온 안내상, 이문식, 우현을 초대했다. 29년 전 한 연극 무대를 통해서 한결같이 배우의 길을 걸어온 이 세 남자는 연예계에서도 인정받는 명배우들이다. 이문식 같은 경우에는 얼마 전 영화 <미쓰고> 홍보 차 SBS <고쇼>에 출연한 바 있고, 안내상은 KBS <승승장구>의 단독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지만 절친으로 알려진 세 남자들이 뭉쳤으니, 그 재미가 더 배가될 수밖에 없을 것.

역시나 19일 방영한 <라디오스타>는 세 절친에게서 웃음은 물론, 감동, 인생의 연륜을 기대하는 이들의 기대감을 100% 만족시키는 특집이었다. 예상외로 가장 낯을 가장 많이 가릴 것 같은 우현은 아예 테이블 위에까지 올라가 현란한 동작으로 박진영의 <허니>를 열창해 스튜디오를 초토화 시켰다. 특히나 한 때 박진영의 팬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박진영을 좋아했던 우현의 지난날들은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듣는 이의 귀를 쫑긋하게 한다.

우현이 박진영 스타일의 현란한 춤과 노래로 웃음을 잡았다면, 감동은 안내상 쪽이었다. 사실 요 근래 <라디오스타> 방영분에서도 볼 만한 특집에 속해있던 이 절친 특집이 이제야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것은, 예능 출연 자체를 망설이던 안내상 덕분이다. 일찌감치 안내상과 우현의 진지한 얼굴에 숨겨진 예능감을 알아본 매의 눈 <라디오스타>는 오랜 기간 안내상에게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고 구애를 해왔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의 친구들과 함께 <라디오스타>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30년 가까이 연극,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수많은 배역을 맡아온 배우들이기 때문에, 어떤 연예인 게스트보다 할 말 많고, 들을 말 많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는 단연, 안내상의 연기관이다. 문영남표 연속극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안내상은 현실과 싱크로율 100% 생활 밀착형 연기가 돋보이는 배우다. 아쉽게도 정극에서는 도드라지던 안내상의 연기력이 웃음이 앞서는 시트콤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크게 돋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코믹 연기는 다소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시트콤에서도 친구로 출연한 우현 때문에 사업을 말아먹고, 처남들 집에서도 빈대 붙어 살면서도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줬던 안내상의 진상 캐릭터는 하이킥을 날려주고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문영남의 연속극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안내상의 장점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하이킥3>의 진상 아저씨에서, 케이블 드라마 <신의 퀴즈3>에서 형사, <해를 품은 달>에서 훤의 아버지 성조 대왕까지. 어느 하나 겹치는 부분이 없는 극과 극의 캐릭터를 안내상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놀랍게도 안내상은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케이스가 아니다.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시절, 학생 운동에 뛰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안내상은 성직자를 꿈꾸던 독실한 신학도였다. 때문에 그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거나, 혹은 자신보다 일찍 연기에 뛰어든 이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그들보다 더 투철한 노력이 필요했었다. 물론 이전부터 안내상의 몸에는 배우로서의 끼가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오늘날 안내상이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배우로 거듭난 비결에는 자신의 현 상태보다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한 노력들 덕분이다.

일례로 안내상은 노숙자 연기를 잘하기 위해, 실제로 서울역에서 3개월가량 노숙 생활을 했었다. 그가 경험해보지 않은 인생이었기 때문에,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굳이 그러지 않아도, 길거리 노숙을 자처할 정도로 연기와 역할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른 이가 안내상이다. 물론 안내상뿐만 아니라, 요 근래 들어 각광받고 있는 배우들은 안내상의 노숙자 생활 못지않게 피나는 열정이 수반되어 있었고, 오랜 고생 끝에 드디어 결실을 맛보게 된 것 뿐이다.

역할을 위해 노숙자 생활을 자청할 정도로 연기에 미쳐있었던 안내상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있던 배우였고, 경제적인 이유로 드라마,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미 완성형이었던 안내상이 여타 배우들에 비해서 돋보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함께 출연한 이문식, 우현. 그리고 요즘 새로이 스타로 거듭난 이성민, 이희준, 곽도원 등도 매한가지다.

작년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와 <브레인>의 신하균으로 차원이 다른 충무로 연기파 배우들을 접하게 된 시청자들은, 이후 <추적자> 손현주, 김상중, 박근형, <골든타임>의 이성민, <유령>의 곽도원으로 수준 높은 연기의 혼에 매료되게 된다. 그동안 뛰어난 미모만 앞세운 꽃미남, 미녀 스타들에 가려진 배우들이 다시 각광받게 된 배경에는, 배우로서 기본적인 자세도 안 되어있는 무늬만 연기자들에게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황도 한 몫 한다.

그런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나타난 배우들은 발연기가 지긋지긋한 대중들에게 진짜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대중들은 당연히 몰입도 있게 실감나게 역할을 표현해주는 배우들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주조연급으로 시작한 <골든타임> 이성민은 어느 순간 원톱 주연이 되어있으며, 역시나 조연급으로 <유령>을 시작한 곽도원은 방영 내내 연기력 논란에 시달린 이연희를 제치고 소지섭과 함께 투톱을 이루는 스타로 거듭났다.

이제 막 명품 배우로 주목받는 이들보다 먼저 드라마를 통해 얼굴과 이름을 알렸던 안내상은 2012년 새롭게 부는 연기파 배우 전성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안내상을 시작으로 제대로 된 연기의 장맛을 접하게 된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물론 연기를 직업으로 하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안내상, 손현주, 이성민 등 천상 배우들의 맹활약과 별개로 여전히 어딘가 한 편에서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는 스타들이 줄을 잇고 있고, 아직까지도 기본도 안 되어있는 자칭 배우들이 유명세와 스타성에 고액의 개런티를 받고 주연 자리를 꿰차며 시청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매번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는 무늬만 배우들도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곤욕스럽고 끊이지 않는 연기력 비판의 사슬을 타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연기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자기는 이렇게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는데, 그간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대중들에게 속상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연기를 주업으로 하는 배우들이고, 그 연기 대가로 보통 사람들은 평생 만져보지 못할 수억원의 돈을 번다. 이제 갓 연기를 시작하거나 조그마한 역할이 아니라, 한 드라마를 책임지는 주요 인물이라면, 연기를 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애당초 빼어난 얼굴 외엔 연기자나 연예인으로서 끼가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이도 있겠지만 과연 주연급 배우로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을까. 물론 다들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처럼 연기를 잘 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작품과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민폐'는 끼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주연급 배우들이 말이다. 본의 아니게 무늬만 배우들이 귀담아 들어야하는 명언이 되어버린 안내상의 연기 열정이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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