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화룡점정을 찍은 김기덕 감독은 이미 해외에서는 알아주는 세계적인 거장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그는 자신의 주무대이자 고국인 한국에서는 철저히 비주류이고 아웃사이더였다.

단적인 예로 김기덕 감독에게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안겨준 <피에타>는 수상 전부터 베니스 국제 영화제 본선 진출로 홍보되어왔다. 2004년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김 감독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상을 받고 한국에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는 <피에타>에 겨우 한 관도 내줄까 말까였다. 그것도 상영 시간이 띄엄띄엄 있어서 작정하고 시간 맞춰 예매하지 않는 이상, 피에타를 보는 건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기덕이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이란 쾌거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에타>가 무슨 영화인지 궁금해서 당장이라도 영화관에 달려가고 싶었던 관객들은 지척에 있는 영화관에서는 대부분 <피에타>를 상영하고 있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고 좌절하게 된다. <피에타>를 상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오전이거나 심야 시간대가 대다수였다. 직장에 다니는 관객은 도저히 볼 수 없는 시간대이다.

멀티플렉스를 찾는 대다수 관객들은 영화관에 갔다가 시간 맞는 작품을 골라 보곤 한다. 때문에 자신이 정말 특정 영화가 보고 싶어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날 상영관을 많이 가장 차지하고 있는 것, 흥행이 될 만하고 극장까지 차지하는 메이저 배급사가 밀어주는 영화를 보고 나오게 된다. 그래서 한국 영화일수록 배급사, 특히 초반에 상영관을 많이 잡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피에타> 상영 이후 몇몇 관객들의 화살을 받고 있는 메이저 배급사, 멀티플렉스 극장들도 할 말은 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멀티플렉스로선 관객들이 많이 찾을 만한 영화 위주로 상영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관객들이 예전부터 <피에타>나 홍상수 감독 <다른 나라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멜랑콜리아>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예술영화 위주 장르를 선호해왔다면 돈이 되면 뭐든지 다한다는 멀티플렉스들은 그런 영화들을 악착같이 상영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 대다수의 관객들은 표현법이 난해하고 복잡한 영화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액션이나 블록버스터, 코미디 장르를 선호한다. 멀티플렉스를 찾는 목적이 연인과 데이트하고, 친구, 가족들과 여가를 보내기 위함이다. 가뜩이나 삶이 팍팍한데 극장까지 가서 머리 싸매고 심각한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어떠한 메시지도 없이 톱스타들의 향연과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로 한국 영화 최다 관객수 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는 <도둑들>의 흥행은 우리나라 극장 문화를 비추어 봤을 때 지극히 당연할지 모른다.

김기덕 영화는 작품성은 있지만(그런데 그 작품성마저 지나치게 솔직하고 잔인한 표현방식 때문에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극과 극의 평가로 나뉜다) 그의 영화를 찾는 이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이 목적인 대형 멀티플렉스는 당연히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그나마 <피에타>는 이미 베니스 국제 영화제 진출이 예정되어 있었고, 조민수, 이정진이라는 스타의 출연 그리고 요즘 뜨는 배급사 NEW 덕분에 그나마 소수이지만 멀티플렉스에 걸릴 수 있었다. 그 외 대형 배급사 투자를 받지 않은 저예산 예술, 독립 영화가 동네 멀티플렉스에 걸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모 카드의 광고 카피를 빌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오직 수익과 자회사 배급사 작품 중에서도 될 만한 것만 밀어주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횡포? 그들이 제공하는 단맛에 익숙해져버린 관객들? 아님 저예산 독립영화는 설 자리조차 없는 척박하고 얄팍한 대중문화 수준?

김기덕 감독의 일침대로 프랑스에 있는 멀티플렉스는 상영관 13개가 있다면 각각에 저마다 다른 영화가 걸려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형 멀티플렉스는 대형 배급사가 관여되어 있는 신작 영화가 동시에 3~4개 상영관을 차지한다.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답게 관객들의 눈이 우리나라 관객들처럼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편이다. 때문에 프랑스 멀티플렉스는 대형 배급사 위주 영화만 팍팍 밀어주는 악덕 업주(?)가 되지 않아도 여러 영화들에게 골고루 상영 기회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베니스 영화제 수상이란 호재가 있는 <피에타>가 고작 한두 개 상영관을 힘들게 잡았다 해도 그 상영관조차 꽉꽉 채우지 못하는 환경에서, 이윤 창출이 최우선인 대기업 멀티플렉스에서 자회사 영화를 배제하고 여러 영화에 자리를 내주는 배려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관객들이 안 찾을 것이기 때문에 <피에타>의 상영관을 적게 잡은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물론 <피에타>를 향한 관심은 일등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았기 때문에 우르르 몰려가는 국민성에 기반을 둔 덕분도 있다.

여기서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대기업 멀티플렉스에서 밀어주는 상업 오락영화 말고도 <피에타> 정도의 수준 있는 작품을 원하는 관객들이 꽤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들은 시간이 없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집 근처 극장 말고 시내에 숨어있는 극장을 찾을 여력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상업성이 떨어지지만 잘 만든 예술 영화 한 편 보러 가려면 저 멀리 시내에, 그것도 평일 한가로운 시간대에 겨우 한 편 틀어줄까 말까인데 프리랜서나 영화전문 기자가 아닌 이상 일일이 그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가 몇이나 될까? 그래도 서울은 독하게 마음먹으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라도 있다. 지방으로 가면 시내 극장에서도 <피에타>조차 보기 어렵다.

지난 11일 SBS <강심장>, 그리고 11일 당일 열린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김기덕이 연이어 제기한 한국 영화 독과점 문제는 충무로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제공하는 상업 대중오락 영화에만 길들여진 관객들의 가슴을 찔리게 한다.

직설적인 그의 영화 연출법답게 표현이 거칠긴 해도 흥행영화가 무려 4~5개관을 차지하는 다양성 없는 한국 영화의 현주소는 '문화 독재'에 가깝다. 과연 이런 나라에서 제2의 김기덕 같은, 세계가 칭송하는 작가주의 거장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여타 상업 영화들처럼 대기업의 투자 없이 자비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김기덕이 더욱 대단하게 다가온다. 그의 일침은 천만 관객 시대를 넘어 문화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몸에 좋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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