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홍보의 시대입니다. 겉포장이 어떠하든 간에 내실만 좋으면 결국 사랑받는다는 믿음은 너무나도 가끔씩만 보답 받는 것이 사실인 반면, 겉모습만 화려한 전략이 훨씬 더 많은 효과를 얻는 세상이죠. 그래서 일단은 경쟁자들보다 먼저 소비자에게 알리고 보고, 우선은 좀 더 확실한 이미지를 대상들에게 각인시켜주는 것이 중요해진, 지금은 홍보의 시대입니다. 매주 시청률에 일희일비해야 하고,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대중의 관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만 살아남는 TV 속 세상은 더더욱 이런 홍보 전략에 머리를 싸매며 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기간은 너무나도 길고 고통스럽지만, 정작 시청자의 선택은 리모컨 위 손가락질 한 번으로 결정되기에 일단 채널 고정을 보장 받기 위한 홍보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실정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고, 기본적인 예의와 지켜야 하는 선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자극적이고 민감한 것을 짐짓 건드려 놓고도 그 본심을 오해하지 말라며 모른 척하고 그 안에 숨겨진 얄팍한 욕심과 심보를 아닌 척해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호해야 할 것을 보호해야 합니다. 아무리 프로그램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은 존중해주고, 한 사람이 감내하고 있는 상처와 고통을 다시 거론하면서 그것을 흥밋거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상식에 근거한,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매주가 전쟁터인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의 전쟁에서는 이런 암묵적이고 상식적인 룰도 너무나 손쉽게 무시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너무나도 아꼈던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대한 쓴소리입니다.

남자의 자격은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본래 이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던 미덕은 소박함과 친근함에 있었습니다. 해피선데이의 한쪽 날개인 1박2일이 동네 형 같은 이들이 우리네 이웃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방방곳곳을 누비며 해주는 여행이야기였다면, 남자의 자격은 동네 아저씨들이 제안하는 함께할 수 있는 약간의 일탈과 도전을 권유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마라톤이어도 좋고, 합창단이어도 좋고, 조금씩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자격증이어도 좋은 그런 삶의 활력을 소개해주고 같이 하자며 손을 내미는 따스함. 그리고 아저씨들만이 전해줄 수 있는 특유의 넉살과 넉넉함 그리고 약간의 어색함과 쑥스러움. 일요일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보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콘셉트를 가진 프로그램이었던 거죠.

그러나 지금의 남격은 제작진과 멤버들의 잦은 교체, 불미스러운 사건의 연속으로 그 정체가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철인3종 경기처럼 평균나이 40줄에 이르는 이들에게 무리한 과제를 던져 놓고, 별다른 의미도 이유도 찾기 어려운 시내버스로 부산가기를 강제하며 고생을 시킵니다. 갑자기 반공 홍보영상과 같은 탈북 여성과 만남을 갖기도 하고, 또 다시 소개팅을 주선하며 짝 찾아 주기에 나섰습니다. 이래서야 무늬만 남자의 자격일 뿐, 왜 그것이 남자로서 이들 주제 중 어느 것이 남자가 꼭 해야 하는 101가지 일인지 알 수가 없는 별종이 되어버렸어요.

그것까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프로그램은 시간과 함께 변화하기 나름이고, 애초에 시작을 함께했던 제작진의 의도를 굳이 새로운 이들이 따라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변화한 콘셉트에서도 나름의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변화를 기쁘게 즐기며 시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홍보만큼은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의문과 회의를 제시하는 합창단 미션 3의 시작은 바로 이런 개인사를 이용한 홍보 잔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이런 저열한 홍보의 전면에 고 최진실 씨의 두 자녀를 앞세워야 하는 거죠?

물론 모두가 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의에 의한 것이겠죠. 강제로 신청한 것도, 누군가가 합창단에 일원이 되라며 유혹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들 꼭지를 통해 나름의 소득도 있을 것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개인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모든 긍정적인 부분을 감안한다고 해도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홍보의 선이 있는 법입니다. 왜 프로그램이 개인의 아픔까지 구경거리로 만들면서 인기와 호응을 유도하려 하는지 그것을 묻고 싶은 거죠.

제작진은 모르는 일이라고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돕고 싶어서, 아니면 참여를 신청했는데 그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런 선한 의도가 설혹 있다고 해도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이미 도를 넘은 일입니다. 가족애의 복원을 기치로 내세운 남격 합창단3에 이 두 아이를 앞세우다니요. 아무리 그 의도가 좋다고 해도,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된 것이라고 해도 너무나 무책임하고 잔인합니다.

방송은 애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 멋대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고, 이에 따라 영웅과 역적이 수시로 뒤바뀌는 공개적인 돌팔매의 장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대중의 반응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잔혹한 TV 쇼의 최전선에, 그 어머니를 삐뚤어진 추측과 무책임한 소문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들을 세우다니요. 어떤 무책임한 손가락질과 오해, 반발, 비난과 이 때문에 생길 상처를 예상할 수 없는 장소의 전면에 방패막이를 삼다니요. 아무리 홍보가 중요하고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지만 이게 무슨 짓이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그저 좋은 의미로 참가를 촬영했고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추석맞이 연예인 가족노래가랑을 보는 것 마냥 밋밋하기 그지없었던 합창단 시즌3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다음 주를 예고하기 위한 1분을 차지한 이 두 명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의 인연을 말하는 이경규의 떨림도, 담담하고 밝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대답도 너무 마음이 아파 보기 힘든 애처로움과 비극의 어울림이었습니다. 이런 장면을, 그런 분량을 할애하며 연출해놓고, 다음 주까지 시청해야 그 결말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편집해 놓고서 그 의도가 결코 홍보와 관심 끌기에 있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나 나쁜 방송, 불쾌하고 슬펐던 사상 최악의 홍보 전략이자 1분이었습니다. 이 두 아이가 나오는 한, 남자의 자격과 합창단 에피소드가 저의 선택이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가뜩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남격은 얄팍한 욕심으로 너무 큰 부담과 폭탄을 스스로 짊어져 버렸어요. 그 좋던 프로그램이 이렇게까지 망가져 버리다니, 안타깝고 아쉽고, 무엇보다 정말 화가 나는군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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