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가 지난해 3월 31일자로 외주사 측에 보낸 편성의향서 공문.
KBS가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묘사한 드라마 <강철왕> 제작 논란에 대해 "아직 방송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일축한 것과 달리, 이미 지난해 초에 외주사 측에 '편성의향' 공문을 보내는 등 KBS가 대선을 앞두고 <강철왕> 방영을 추진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20일 KBS 새 노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드라마 <강철왕>이 내부 기획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음에도 13일부터 포항에서 <강철왕> 세트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폭로하며 KBS 사측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강철왕>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KBS 측은 "아직 방송 여부를 확정하지도 않았다"며 "(설사 KBS가 방송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방영시기는 내년이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상북도와 포항시 사이에 오간 공문을 배재정 민주통합당 의원이 입수해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KBS의 공식 해명과 달리 KBS측은 내부 회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이미 지난해 3월 31일자로 외주사 측에 '드라마 <강철왕>(가제) 편성의향 통보' 공문을 보냈으며 이 공문에서 <강철왕>의 방송 예정일을 '2012년 상반기'로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공문은 KBS드라마기획국 팀장인 L모씨, EP(부장급)인 K모씨, 국장 직무대행이었던 K모씨의 결재를 거친 것으로 돼 있다.

또, KBS는 지난해 5월 6일 외주사 관계자와 함께 포항시를 직접 방문해 제작비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24일 포항시가 경상북도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KBS는 외주사 측에 편성의향 공문을 보낸 지 한달여 뒤인 지난해 5월 6일 외주사 관계자와 함께 포항시를 직접 방문했으며 이 면담 자리에서 포항시는 드라마 세트장 건립과 제작비 지원 의향을 밝혔다.

배재정 의원은 27일 문방위의 KBS 결산심사를 앞두고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하며 "공식 해명과 달리 KBS 측은 내부 절차를 철저히 무시하고 <강철왕> 제작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며 "이처럼 KBS가 무리수를 둔 것은 방송사 고위층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적극 개입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27일 오전 국회 문방위의 KBS 결산심사 자리에서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강철왕> 제작 의도를 문제삼으며 집중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공문을 폭로한 배재정 의원은 "공식 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음에도 170억원의 대작 드라마 제작이 추진되고 있는 것에 대해 KBS 구성원들은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KBS가 김대중 대통령이나 장준하 선생에 대한 프로그램은 드라마로 기획안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 KBS는 "아직 편성이 확정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포항시 세트 건설장에 내걸린 플래카드에는 'KBS 강철왕'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KBS 측은 "아직 편성이 확정된 게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강철왕> 방송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인규 KBS 사장은 "고 박태준 회장은 대한민국 현대 인물사 중에서 (드라마로) 충분히 다뤄볼 만한 분"이라고 밝혔으며, 전용길 KBS 콘텐츠본부장도 "편성이 확정된다면 <강철왕>은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영탁 KBS 드라마국장은 "편성을 확정한 게 아니다. 편성의향서 공문을 보낸 것은 (공문이 있어야) 제작사가 초기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떼어준 것일 뿐"이라며 "(2011년 5월경에) CP가 포항에 내려간 것은 CP가 서울 출신이라 포항제철을 한 번도 안가봤는데 포스코 관련 드라마라고 하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상황을 살펴보러 내려간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조해진, 박대출 등 새누리당 의원들은 "선진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분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충분히 드라마로 만들 수 있다"(조해진) "꼭 방영해서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박대출)며 <강철왕> 드라마에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차기 KBS 이사장으로 유력한 이길영 KBS 감사가 2006년 지방선거 때 박근혜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관용 한나라당 경북도지사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경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배재정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 정도면 사실상 정치인이 아닌가.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공영방송의 감사가 되고, 차기 이사장까지 되려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강철왕 건으로 김관용 도지사와 연락한 적은 없느냐"고 따져물었다. 이에, 이길영 감사는 "제가 2006년에 김관용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며 "저는 드라마 강철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만 답했다.

윤관석 의원도 "현직 감사가 KBS 이사로 가게 되면 감사 업무의 공백이 발생하는 게 당연하다. KBS 이사직에 신청한 것은 무리한 일 아니었느냐" "이사 신청을 철회할 생각은 없나" "이사장직에 대한 내락을 받은 것인가"라고 집중적으로 질문했으며, 이에 이길영 감사는 "저도 고민이 많았었다. (무리한 신청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사 신청 철회는) 별개의 문제다. 저는 그저 KBS 이사가 되어 KBS에 더 봉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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